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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반도체 위기, 누가 불렀나

박태희 산업1팀 기자

박태희 산업1팀 기자

소비자들은 반도체를 ‘IT 기기용 첨단 부품’ 정도로 인식하지만 연구·개발자들은 다르다. 반도체인(人)들에게 이 제품은 ‘조용히, 그러나 열심히 개발해 어느날 꽝 터뜨리는 제품’이다. 치밀하게 준비해 개발에 성공한 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제품이란 의미다.
 
실제 삼성전자 보도자료 가운데 반도체 신제품 관련 내용은 대부분 ‘개발했다’의 과거형이다. 이러이러한 반도체 신제품을 ‘개발하겠다’거나, 어떤 스펙의 제품을 개발 중이라는 얘기를 삼성전자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전부 보안사항이다. 메모리 분야에서 27년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외부에 드러나도록 대대적인 행사나 설명회를 연 적도 없다. 그저 조용히, 열심히 개발해 꽝 터뜨려왔을 뿐이다.
 
그런 삼성전자가 지난 4월 30일 이례적인 행사를 열었다. ‘반도체 비전 2030’이라고 거창한 이름도 붙였다. 취임 후 처음 삼성전자 사업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 국내외 언론이 모두 주목한 앞에서 “2030년까지 비메모리도 세계 1위를 하자. 정부도 적극 돕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메모리에 이어 비메모리에서도, 당부하신 대로 확실한 1등을 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일본이 반도체용 소재에 수출 제한 조치를 가하자 업계에는 새삼 이날 행사를 되돌아보는 이들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성공 방정식대로라면 조용히 내실 있게 비메모리 경쟁력을 키웠으면 될 일을, 전 세계에 공표하면서 결과적으로 경쟁자들을 자극하고 말았다”고 했다.
 
전 세계 기술 패권을 재편하려는 미국, 메모리 1위를 내준 채 속절없이 소재만 팔고 있는 일본, “반도체 굴기, 한국 타도”를 외치는 중국, 자국의 세계 1위 파운드리 TSMC가 걱정스러운 대만에게,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는 우리 패를 먼저 보여주고 말았다. 어디를 때리면 정치적, 산업적 타격이 큰 지를 새삼 각인시켜 줬다.
 
굳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최종심,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 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정부는 경제가 처참해진 상황에서 세계 1위인 반도체 행사에 숟가락을 얹어 생색내고 싶었고, 삼성전자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그럴듯하게 치렀어야 했다.
 
그러니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할 때지만, 한가지는 명확히 짚고 넘어가자. 이번 반도체 위기는 온전히 강제노역 판결에 대한 일본의 보복성 수출 제한에만 있지 않다. 국제감각 떨어지고, 산업현장 이해는 부족하면서 경제 위기에 성난 민심을 달랠 쇼가 필요했던 한국의 정치가 큰 몫을 했다.
 
박태희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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