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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의 시선] 이것은 걱정인가 핑계인가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최저임금 논의가 일단락됐다. 내년에는 시간당 8590원이다. 올해보다 2.9%(240원) 올랐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를 빼고는 가장 적게 올렸다. 최근 2년간 30% 가까이 튀어 오른 데 대한 반작용이다. 불만은 나온다. 한국노총은 “참사”라고 했고, 민주노총은 “총파업 등 전면 투쟁을 조직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소규모 자영업자들 반응은 정반대다. “이미 우물에 독이 가득 찼는데 해독제를 주지 않았다”고 부르짖는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최저임금 삭감이나 업종·규모별 차등 적용이라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업종·지역별 차등화
현장에선 부작용 감수한다는데
정부는 엉뚱한 ‘머슴 업종’ 걱정

이의제기 절차가 남았지만, 정부는 이대로 마무리하려는 태세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어려운 결정을 한 최저임금위원회를 지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최저임금 논의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손도 못 댄 부분이 남아 있다. 업종·지역·규모별 차등 적용과 결정구조 개선이다. 소상공인들이 그걸 원해서가 아니다. 업종·규모 별로 인건비 부담 능력이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한계에 다다른 업종도 있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저마다 다른 게 현실이다.
 
합리적인 제도라면 이런 점을 반영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차등 적용이 ‘언터처블’이다. 알레르기라도 있는 듯,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여당은 질겁하며 고개를 젓는다.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저임금 업종 낙인 효과’다. 최저임금을 낮춰 적용하는 업종·지역은 낙후한 것으로 찍혀 불이익을 당한다는 논리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이를 분명히 내비쳤다. 중기중앙회 간담회에서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화하면 ‘어느 업종은 귀족이고 어느 업종은 머슴이냐’, 이런 사회적 인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좀 이상하다. 낙인의 부작용을 제일 겁내는 건 당연히 해당 업종 관련자들이다. 그들이 견디다 못해 “우리는 최저임금을 낮춰달라”고 했다. 직원 자르고 문을 닫아야 할 판에 낙인 안 찍히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절규다. 업주가 아니라 종사자들마저 “올려주면 좋지만 쫓겨날까 걱정”이라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지역 차등도 그렇다. 어떻게든 일자리를 만들려고 ‘반값 임금’까지 감수하며 광주형 일자리를 성사시키는 과정을 우리는 생생히 목도했다. 이런 마당에 낙인 부작용이 생길까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게 곤란하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엉뚱한 걱정이다. 그래서 헷갈린다. 이것은 걱정인가, 핑계인가. 걱정은 걱정이로되, 나라 경제와 소상공인·지역에 대한 게 아니라 ‘혹시 어디선가 표 떨어질라’일 가능성이 99.999%다.
 
이참에 확 바꾸자. 이번에도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한 최저임금 결정 구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는 회의 초기에 노동계는 1만원을 내걸었다. 이유는 “그래야 짧게 여행이라도 간다”였다. 터무니없는 상상이지만 그대로 됐다면? 절로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법을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이런 취지의 판결을. “피고는 종업원이 여행 갈 만큼 임금을 주지 못했으므로 징역 1년에 처한다. 땅땅땅!”
 
이뿐 아니다. 최저임금액에 따라 일자리안정자금을 비롯해 정부 재정지출이 달라진다. 최저임금이 형벌의 기준과 나라 곳간의 쓰임새를 좌우한다는 얘기다. 그런 결정을 노·사 대표 간 줄다리기와 공익위원의 중재에 맡긴 게 지금의 한국이다. 그나마 ‘논의’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면 나으련만, 우리는 ‘협상’을 한다. 공익위원조차 언론 인터뷰 등에서 공공연히 ‘협상’이라고 하는 실정이다.
 
형벌의 기준점까지 임금협상 식으로 정하는 건 아무래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최저임금 결정권은 정부가 갖는 게 타당해 보인다. 실제 선진국은 대부분 사회적 대화기구와 협의하되,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한국도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마침 결정구조를 바꾸자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나와 있다. 업종·지역·규모별 차등화를 논의할 위원회도 곧 가동된다. 그래도 부족하고 불안하다. 개선안은 여전히 결정을 노·사·공익위원으로 구성하는 위원회에 맡기는 식이다. ‘협상식 결정’ 우려를 씻을 수 없다. 걱정 아닌 걱정에 사로잡힌 정부·여당이 차등 적용을 제대로 검토할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그건 “죄가 있다”(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에 계속 멍에를 씌워 놓는 것일 뿐이다. 이제 걱정을 빙자한 핑계는 벗어던지자. 정말 나라 경제와 고용, 그리고 힘없는 자영업자에 대한 걱정을 바탕으로 최저임금 제도를 다시 짤 때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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