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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선동열 첫 제의 받은지 38년 만에 양키스 간다

선동열과 스티븐 윌슨 양키스 스카우트. [뉴스1]

선동열과 스티븐 윌슨 양키스 스카우트. [뉴스1]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의 이치훈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는 지난 11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년 전 구단 미팅에서 ‘DY SUN’ 같은 선수를 뽑아오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이게 누구를 뜻하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고 밝혔다.
 
이 회견은 선동열(56)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내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리는 양키스 캠프에 합류해 연수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 선 전 감독은 코칭스태프 회의는 물론 프런트 미팅에도 참석한다. 양키스가 한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건 처음이다.  
 
선동열 전 감독은 “배우러 간다”고 했고, 이 스카우트는 “양키스가 선동열 감독님을 모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스티븐 윌슨 양키스 총괄 스카우트는 “양키스는 세계 최고 투수였던 선동열을 초청한다는 사실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27회)을 차지한 양키스는 미국 포브스가 평가하는 MLB 구단 가치에서 22년 연속 1위(2019년 46억 달러·약 5조4000억원)를 기록한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이다. 그러나 한국·일본 선수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LA 다저스와 달리 양키스는 그동안 아시아 시장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치훈 스카우트가 ‘DY SUN’이 누구를 말하는지 즉시 알아차리지 못한 건 38년 전 활약했던 한국 선수를 양키스가 여전히 기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였다.
 
1981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역투하는 선동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캡처]

1981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역투하는 선동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캡처]

양키스는 1981년 미국 오하이오주 뉴어크에서 열린 제1회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선동열의 투구를 처음 봤다. 당시 18세로 광주일고 투수였던 선동열은 몸을 최대한 앞으로 끌고 나와 강속구를 던지는 멋진 폼을 선보였다.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에 오른 선동열에 대해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도 관심 있게 보도했다. 양키스는 선동열을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병역 문제가 걸려있다는 말을 듣고는 뜻을 접었다.
 
양키스는 84년 LA 올림픽(당시 야구는 시범종목)에서 활약한 선동열을 보고 계약금 50만 달러(약 6억원)를 제안했다. 통산 583홈런을 날린 마크 맥과이어(1라운드 전체 10번 오클랜드 지명)도 84년 당시엔 계약금으로 15만 달러(약 1억8000만원) 정도를 받았을 때였다. 그러나 선동열은 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병역면제 혜택을 받아 5년간 국내에서 뛰어야 한다는 병역법 때문에 MLB에 가지 못했다.
 
선 전 감독은 “한국·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메이저리그를 경험하지 못한 게 콤플렉스였다. 지금이라도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 선수들이 물어보면 내가 아는 대로 대답할 것”이라며 “나도 궁금한 게 많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선발투수의 투구 수를 100개로 한정한다. 투수마다 체력과 유형이 다른데 어떤 방법으로 데이터를 만드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야구대표팀을 이끌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던 선동열 감독은 선수선발 문제로 국정감사장에 섰다. 사실로 드러난 의혹이 하나도 없는데, 손혜원 의원으로부터 감독 사퇴압력을 받았다.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도 사실상 손 의원을 도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수모를 느꼈다”는 선 전 감독은 스스로 물러났다.
 
현역 시절 ‘국보’로 불렸던 선 전 감독의 인기와 인지도라면 야구장 밖에서 일을 찾는 것도 쉬웠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지속해서 그를 부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8개월 만에 야구계로 돌아왔다.
 
선 전 감독은 “쉬는 동안 유소년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다. 당장 진학이 급하니까 학생들이 기본기를 다지지 않고 기술 훈련만 하더라”며 “한국 야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훈련법과 장기적인 육성 매뉴얼이 필요하다. 양키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으로 가는 길을 38년 만에 찾았다. 개척자가 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후배들의 동반자는 될 수는 있다. 늦었지만, 늦지 않은 선동열의 새로운 야구 여행이 시작됐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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