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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말로는 지일·극일…서울대 일본연구소도 지원 끊겼다

일본 연구의 참담한 현실을 보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의 2015년 서울대 일본연구소 초청 강연 모습.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로 한국에서 유명해진 그는 이 강연에서 일본 보수화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 서울대 일본연구소]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의 2015년 서울대 일본연구소 초청 강연 모습.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로 한국에서 유명해진 그는 이 강연에서 일본 보수화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 서울대 일본연구소]

서울대 일본연구소에 전임 교수 6명이 있다. 수업은 맡지 않는 ‘풀타임’ 연구자들이다. 여기에 국제대학원 소속의 ‘일본통’ 교수 3명이 있다. 세 사람 모두 이 연구소의 전·현직 소장으로 사실상 연구소 식구다. 이 9명이 서울대 일본 연구의 핵심이다. 요즘처럼 일본 문제가 국가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면 이들은 정부나 민간 주최의 회의·토론회에 연신 초청된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쇄도한다. 최근의 한·일 갈등에 대한 보도에 수시로 등장하는 김현철(전 청와대 경제보좌관)·박철희·한영혜·남기정·조관자 교수가 그 9명에 속한다.
 

2004년 “일본을 알자”며 문 연 곳
정부 HK사업으로 연 8억원 지급
작년 8월 지원 종료로 연구 차질
금세 식는 ‘반짝 관심’이 늘 문제

서울대학교일본연구소 심볼

서울대학교일본연구소 심볼

이 연구소가 요즘 주목받는 것은 이곳만큼 종합적이고 조직적으로 일본을 연구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10여 개 대학에 일본·일본학 연구소가 있지만, 역사·문학·언어 연구에 집중한다. 서울대 연구소처럼 정치·경제·역사·문화를 아우르는 종합 연구소는 아니다. 정부 쪽에도 제대로 된 일본 연구 조직이 없다. 국립외교원에 일본연구센터가 있는데, 교수급 연구진은 총 2명이다. 외교·안보 전문 민간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에도 일본연구센터가 있기는 한데, 진창수 센터장 말고는 연구진이 없는 1인 기구다. “일본을 알아야(知日), 일본을 넘어선다(克日)”고 외쳐 온 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데 서울대 일본연구소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끊겼다. 정부 지원금이 중단된 것이 지난해 8월이니 벌써 1년째다. 일본 관련 사업을 하는 한국의 한 중견기업(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관련 피해를 우려해 익명으로 표현)에서 지난해 봄부터 매달 1000만원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것마저도 없다. 지난 3월 입금이 마지막이었다. 본래 1년만 계획된 기부였다.
 
서울대 일본연구소가 펴낸 책들. 일본 동향, 한·일 관계, 동아시아 정치·외교 문제 등 최근의 현안을 주로 다루고 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가 펴낸 책들. 일본 동향, 한·일 관계, 동아시아 정치·외교 문제 등 최근의 현안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정부 지원은 왜 멈췄고, 그렇다면 이 연구소는 어떻게 되나. 지난 1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국제대학원 건물 4층에 있는 이 연구소에 가 봤다. 소속 교수와 행정 직원의 말을 종합하면 상황은 이렇다.
 
2004년에 서울대 내의 일본 전문가들이 뜻을 모아 세운 이 연구소는 설립 직후인 정운찬 총장(전 국무총리) 시절에 10억원의 기금을 받았다. “일어·일문 학부 과정도 없는데 연구소가 왜 필요하냐”는 대학 내부의 반발이 있었다.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이화여대에는 일어·일문 학부 과정이 없다. 있었던 적도 없다. ‘민족 정서’와 연관된 부분이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은 “우리나라에 일본 연구가 많이 부족하다”며 밀어붙였다고 한다.
 
2008년에는 정부의 인문한국(HK)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지원서를 냈다.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10년간 매년 8억원의 사업비를 받기 시작했다. 사업 계획에 6명의 연구 전담 교수를 두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계획대로 연차적으로 6명의 교수가 모였다. 타 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 직급 강등을 감수하고 부교수 신분으로 합류한 경우(남기정 교수)도 있었다. 이들의 급여와 연구·사업비가 정부 지원금 8억원에서 나왔다.
 
문제는 HK 계약이 10년으로 정해져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지난해 8월이 끝이었다. 연장을 요청해야 했는데, HK 사업에 대한 서울대와 교육부의 견해가 충돌했다. HK 지원금을 받는 서울대 내 다른 연구소의 인력 운영이 문제였다. 대학과 교육부가 힘겨루기하는 상황에서 일본연구소는 지원 연장 신청도 못 했다. 당시 서울대는 총장 후보자가 성추행 논란 때문에 총장직을 포기해 어수선한 상태였다.
 
그 뒤 전임 교수 6명의 급여는 서울대가 지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구와 학술사업에 드는 비용(연간 약 3억원)을 조달할 방법은 없었다. 조관자 교수(일본 사상사 전공)에 따르면 자료 수집, 번역, 학술회의 개최, 연구서 발간 등의 사업 중 상당 부분이 중단되거나 축소됐다. 연구소에서는 그동안 『질곡의 한일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일본의 한반도 외교』·『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도입과 한반도』 등 한·일 관계 현안에 대한 책을 꾸준히 내왔다. 대부분 제작비도 건지지 못하는 ‘적자 출판’이었지만 정부 지원 덕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지원을 받지 못하면 이런 책들이 계속 나오기는 어렵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소장 김현철 교수, 전 소장 박철희 교수, 남기정 교수, 조관자 교수(위에서부터).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소장 김현철 교수, 전 소장 박철희 교수, 남기정 교수, 조관자 교수(위에서부터).

이 연구소의 소장이자 창설 멤버인 김현철 교수에게 현재 상황과 재정난 타개책에 관해 물었다. 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으로 청와대에서 일하다 지난 3월에 학교로 복귀했다.
 
소장 취임 인사말에 연구소를 ‘싱크탱크’로 키우고 싶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떤 뜻인가.
“예전에는 삼성·LG 등의 대기업에 일본 연구 조직이 있었다. 주로 경제 분야를 탐구하고 분석했다. 그런데 일본 경제 침체기를 거치면서 조직이 줄어 지금은 삼성이나 LG에도 한 사람씩만 있다. 공공 부분에도 제대로 된 연구 조직이 없다. 거시적이고 종합적 관점에서의 일본 동향 파악, 한·일 관계 분석과 전망을 할 기구가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서울대 일본연구소만큼 그런 연구 역량을 갖춘 곳을 찾기 어렵다.”
 
왜 이토록 현안과 관련된 일본 연구를 하는 곳이 드물게 됐나.
“돈 문제가 핵심이다. 1970, 80년대의 일본 연구는 경제·산업에 집중됐다. 그러다 90년대에 일본이 저성장기에 접어들자 별로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퍼졌다. 일본의 고령화·저출산 현상과 청년 문제 등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연구할 게 많았지만 일본 연구자 수 자체가 대폭 줄었다. 소위 ‘돈 되는’ 연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2012년에 한·일 관계가 악화하기 시작한 뒤 일본의 정치·경제·역사·문화를 총체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이 커졌는데 정부나 학계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는 어떻게 이처럼 ‘종합적 접근’을 하게 됐나.
“연구소를 만들 때부터 일본을 다양한 각도로, 유기적으로 연구하는 조직을 만들어 정책적 대안까지 제시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이 시대의 일본을 탐구해 이 시대에 필요한 연구물을 제시하자는 취지에 맞춰 연구진을 구성했다.”
 
정부 후원이 끊겨 연구와 학술 사업이 어렵게 됐는데, 어떻게 타개할 생각인가.
“일단 정부의 HK 사업에 다시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선정되면 연간 3억원을 받을 수 있다. 잘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사회적 관심도 바란다. 서울대 내부의 연구소 평가에서 우리 연구는 늘 최상위권으로 평가받았다. 15년 동안 여기까지 오는 데 여러 사람의 헌신과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이대로 멈춰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일본 연구가 주춤거리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 연구나 중국 연구와 상황이 다르다. 지원받을 길은 열려 있지만, 연구자들이 꺼린다. 일본 쪽 돈을 받는 순간 ‘순수성’ 논란이 불거진다. 일본 기업 미쓰비시가 서울대 일본연구소에 연구비 지원 의향을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연구소가 사양했다.
 
2004년에 이 연구소가 설립되자 경향신문에 이런 내용의 사설이 실렸다. ‘만시지탄이다. (중략) 그간 우리 사회에는 ‘반일이냐, 친일이냐’ ‘일본은 없다’는 식의 감정적·도식적 접근이 앞서는 분위기 때문에 진지한 일본 연구의 토양이 척박했다. 이제는 그들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실상을 객관적이고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15년이 흘렀다. 그런데 마치 어제 쓴 사설 같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일본 연구자들이 청와대, 정부, 언론사로 많이 불려 다닙니다. 그런데 이러다 좀 조용해지면 관심이 싹 사라집니다. 지긋지긋하게 안 변합니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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