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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의 퍼스펙티브] 탈원전 정책은 국회가 직접 법률로 결정해야 한다

국가 중대사와 국회의 역할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국회가 배제되고 있다.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가 국회를 건너뛰고 탈원전이나 최저임금 등 국가 중대사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률에 따라 행정부가 결정권을 위임받고 있어 법치주의의 겉모습은 갖춘 것처럼 보인다. 국회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결정 책임까지 집행기관인 행정부에 떠넘긴다. 권력이 행정부에 집중된다. 이로 인해 중요한 국가 현안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와 행정부처, 각종 행정위원회만 보이고 국회는 존재감이 떨어진다.
 
이러한 국회의 입법권 포기 또는 결정 책임 회피에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건 사례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5월 27일 결정(98헌바70)에서 “국가 공동체와 그 구성원에게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역(에서는)…행정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 스스로 그 본질적 사항에 대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라고 하면서 TV 시청료를 국회 관여 없이 한국방송공사(KBS)가 정하도록 하는 한국방송공사법은 “법률 유보, 특히 의회 유보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했다.
 
의회 유보(Parlamentsvorbehalt)의 원칙은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중요 사항은 반드시 국회가 직접 법률로 결정해야 하며 행정부에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 원칙이다. 이는 중요 사항(Wesentlichkeit)에 대한 국회의 입법 의무이고 위임 금지이다. 의회 유보의 원칙은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가 1970년대부터 발전시켜 왔고, 학교 관계 등 특별 권력관계에서 시작해서 원자력이나 유전자 분야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국가 중대사
 
탈원전 정책은 국가의 경제와 산업, 환경과 안전은 물론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은 그의 대선 공약에서 출발한다. 그는 신규 원전의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중단,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등을 공약했다.
 
정부는 2017년 6월에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중단시키고 공론화에 부쳤다. 정부는 10월에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건설을 재개하기로 했으나 동시에 탈원전 정책을 포함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이를 반영하여 2017년 12월 말에 작성된 제8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는 신규 원전 6기의 백지화가 들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2018년 6월에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4기의 건설 영구 중단을 의결했다.
 
2019년 6월 4일 국무회의는 탈원전과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를 기조로 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심의·확정했다. 원자력안전법, 원자력진흥법, 전기사업법, 에너지법,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등 원전 관련 법률 어디에도 탈원전 규정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이들 법률은 원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전적으로 행정부의 결정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조적으로 스위스·독일·대만 등은 탈원전 로드맵을 법률에 명시적으로 직접 규정하고 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2013년 에너지법개정안을 포함한 ‘에너지전략 2050’을 제안하였고, 연방의회는 2016년 9월에 에너지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이 개정 에너지법은 에너지 소비 감축, 에너지 효율성 증대, 재생에너지 확대, 신규 원전 금지와 기존 원전 5기의 가동 조건 등을 규정하고 있다. 탈원전에 비판적인 스위스국민당(SVP)을 중심으로 유권자 6만8390명이 서명을 통해서 개정 에너지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청구하였다. 2017년 5월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투표자 58.2%가 찬성하여 탈원전 정책은 법률로 확정되었다.
  
행정부의 탈원전 결정, 민주주의 위배
 
독일에서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영향을 받아 연방정부가 노후 원전에 대한 모라토리엄(가동중단)을 선언하였고, 연방의회는 2011년 6월 30일 압도적인 다수로 탈원전을 의결한 후 7월 31일에 제13차 원자력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개정 법률은 원자력 이용 종료와 에너지 전환 촉진, 8기의 원전 허가에 대한 효력 상실을 규정하였다. 또한 나머지 9기의 원전의 폐쇄 시점을 2022년 말까지 순차적으로 원전마다 각각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
 
대만에서도 이미 2002년에 여야 합의로 환경기본법에 탈핵 국가를 단계적으로 실현하기로 명시하였다. 2017년 1월 11일 입법원은 전기사업법 제95조에 2025년까지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중단시킨다는 규정을 했다. 이 조항에 대해 2018년 11월 25일 국민투표를 한 결과 부결되었다.
 
탈원전 정책과 같은 국가의 중대사를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국가 기관 간에 역할을 분담하면서 서로 견제하는 권력 분립의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다. 국회는 헌법 제40조에 따라 법률을 제정하고, 행정부는 이를 집행하고, 사법부는 이를 적용한다. 헌법은 행정부와 사법부는 국민대표 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그 권한을 행사하도록 국가 운영체제를 설계하였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 기관이고, 다른 국가 기관보다 민주적인 정당성이 높다. 국회는 국민의 직선에 의해 구성될 뿐만 아니라 여당은 물론 야당도 포함하고 있어 직선 대통령보다 대표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회는 공개적인 토론 과정을 통해 전문 지식과 상반된 이해관계를 수렴하고, 여야 간 협상과 타협으로 결정하여 국민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행정부가 국회를 제치고 국가 중대사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에 국민대표 기관인 국회의 국정 선도적인 기능은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된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법률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도록 위임하여 국회의 입법권을 속 빈 강정으로 만든다. 그 가장 큰 원인은 행정부가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핵심적인 중요 사항을 행정부가 결정하도록 규정하는 데 있다. 법률안의 통과를 쉽게 하기 위해 정치적 대립과 논란이 예상되는 중요 쟁점에 대한 결정을 행정부에 위임하는 전략적인 측면도 작용한다.
  
국가 중요 사항은 국회가
 
또 국회가 정치적 책임이나 비판을 회피하기 위해 행정부에 결정을 미루는 법률안을 묵인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국민대표 기관인 국회의 입법 의무 내지 입법 책임을 내팽개치는 것이 된다. 행정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국회의 위상은 추락하고, 국민주권은 실현되기 어렵게 된다.
 
헌법재판소가 의회 유보의 원칙을 적용한 것은 국회가 입법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을 차단하고 행정 전제주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중요 사항을 국회가 직접 결정해야지 행정부에 위임해서는 안 된다.
 
탈원전정책은 헌법재판소가 다룬 TV 수신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중요하고 본질적인 사항이므로 당연히 국회가 직접 법률로 정해야 한다.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탈원전 정책을 행정부의 관계 위원회가 의결하고 국무회의가 결정한 에너지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을 통해 추진하는 것은 헌법 원리에 합치되지 않는다.
 
행정부는 먼저 신규 원전 금지와 기존 원전의 폐쇄 일정 등 탈원전의 중요 사항을 담은 법률안을 발의하고 그 추진 여부는 국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에너지기본계획 등의 행정 계획은 국회가 법률로 결정한 탈원전 정책의 집행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명시적인 법률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은 선후가 바뀌어 적법하지도 않고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개헌특별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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