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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나요, 재독 간호사들이 눈빛으로 전하는 얘기가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 사진작가 김옥선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재독 간호사들의 초상 사진전을 연 김옥선 작가. [신인섭 기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재독 간호사들의 초상 사진전을 연 김옥선 작가. [신인섭 기자]

사진작가 김옥선(52)의 시선은 늘 ‘변방과 주변’에 머문다. 독일인 남자와 결혼한 한국인 여자로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살아온 사반세기의 기저에는 ‘이방인으로서의 불안감’이 짙게 깔려있다. 현실에서 ‘차이와 차별’을 몸으로 겪어낸 그의 렌즈는 자연스레 다른 ‘이방인’들의 삶과 공간으로 향했다. 백인 남성과 아시아 여성 부부의 사는 모습(Happy Together·2002), 집을 나선 주한 외국인들의 자기 표출(Hamel’s Boat·2008), 제주에 거주하는 다양한 외국인들의 다채로운 삶(No Direction Home·2010)을 무표정한 초상 사진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가의 화면은 진솔하고 담백하다. 심지어 제주 종려나무마저 외래종 식물이라는 이유로 주인공이 됐다(The Shining Things·2014). 평론가들은 “김옥선의 ‘주변’은 중심지향적 구도 속 변방에서 바깥-외부와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로 전환된다”(이영욱) “김옥선의 사진은 인물과 주거 공간을 동등하게 보여줌으로써 집은 인간의 영혼이 깃든 몸의 확장임을 역설한다”(신수진)고 말한다.
 
그런 그가 독일로 간 한국 간호여성들의 이야기에 꽂히게 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2017년 서울역사박물관 전시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참석차 한국을 찾은 세 할머니의 강연은 그에게 카메라를 들고 베를린으로 가게 했다. 두 차례에 걸친 두 달간 작업의 결과가 서울 도산대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는 ‘베를린 초상’(28일까지)이다.
 
“제 입장에서 여자로, 이민자로, 그들이 살아온 삶이 너무 궁금했어요. 알고보니 서베를린으로 간 분들은 한국 남자를 만날 기회가 적어 독일인과 많이 결혼했다 하더라고요. 외국인 남편을 둔 한국인 여성으로, 외국인 간호사로 어떻게 차별을 이겨냈는지, 혼혈 아기를 가진 불안함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독일로 꿈 찾아 떠난 ‘손님노동자’들
 
1966년부터 76년까지 해외개발공사를 통해 독일로 간 간호사는 약 1만 1000명. 가난을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돈을 벌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손님노동자(Gastarbeiter)’들이었다. 당시 신문 공고문에는 ‘만 20세~만 38세 미혼 또는 독신여자로 면허증 소지자. 3년 계약에 월 627마르크(약 157불) 지급’이라고 적혀있다.
 
“다들 하는 말씀이 ‘파독 간호사’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어요. 국가가 보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독일에 온 것이었다며. 그냥 ‘재독 간호사’가 맞다고요.”
 
독일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이들은 76년 들어 귀국·제3국 이주·현지 잔류라는 세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했다. 남기로 결정한 이들은 “우리는 독일의 병원이 간호원을 필요로 해서 이곳에 왔으며 당신들을 도와주었다. 우리는 상품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가겠다”라고 주장하며 똘똘 뭉쳐 서명운동을 벌이고 사회단체와 연대했다. 결국 독일 정부는 78년 새로운 행정법을 통해 체류권을 인정해주었다.
 
“파란만장한 사연을 한 장에 담아내야 하지만 뭔가를 요구하거나 연출하지는 않아요. 삶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찍으려 하죠. 화장도 편한 대로, 의상도 편한 대로.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촬영하는데, 다만 시선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봐달라고 주문하죠. 카메라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그럼 표정들이 다 진지해져요.”
 
그는 4×5 사이즈 필름 카메라를 쓴다. 옛날 사진관에서 암막천을 뒤집어 쓰고 찍던 그 기종이다. 주로 거실 아니면 서재나 부엌에서 방향을 조금씩 돌려가며 12장에서 15장 정도 찍는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도 사용하지만, 디지털의 무한성이 주는 편안함과는 또 다른, ‘곧 찍히는구나’ 느끼는 피사체의 긴장감과 집중도를 즐긴다고.
  
카메라 보고 눈으로 말하라고 주문
 
“잡지 표지나 연예인 화보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맘에 안 든다는 분도 계시죠. 주름도 지워달라 하고. 너무 슬퍼보인다 하기도 하고. 하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그들의 치열했던 삶의 서사를 사진만으로 느끼실 수 있도록 말이죠. 사진 찍는 현장의 순간을 얼렸다가 전시장에서 다시 녹이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시장을 둘러 보았다. 해동된 그들의 눈빛이, 얼굴이, 옷과 신발이 말을 걸고 있었다. 의자 뒤로 보이는 낡은 첼로와 오래된 카세트라디오와 커다란 지구본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없는 전시장이 무척 시끄러웠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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