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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가 머슴에게 시키면 좋을 운동? 영국 국왕 참관 윔블던은 체통의 경기

[이태일의 인사이드피치] 13·14일 윔블던 결승전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경기에서 공을 받아넘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경기에서 공을 받아넘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윔블던이 절정이다. 13·14일엔 여자·남자 단식 결승전이 열린다. 테니스 팬이라면 물론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윔블던이라는 이름은 전통과 품위의 상징으로 들린다.  
 
윔블던은 1877년부터 영국 런던 머튼구의 윔블던에 있는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리는 테니스 대회다. 142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도 역사지만, 선수들에게 엄격한 복장 규정(위아래 흰색) 적용, 딸기와 크림을 간식으로 먹는 문화로 유명하다. 국왕이 참석하는 전통 등은 윔블던만의 체통이며 품위다. 또한 그 권위를 위해 웜업(warm up) 대회로 불리는 남녀대회가 윔블던 직전에 독일, 네덜란드 등지에서 열려 윔블던의 열기를 뜨겁게 만든다. 어떤 이벤트를 위한 이벤트가 생길 정도의 품위와 전통이 윔블던에 있다.
 
윔블던 하면 생각나는 우리 역사의 어떤 인물이 있다면 고종일 것이다. 윔블던이 시작된 1877년 그 시절, 고종이 조선의 왕이었다. 당시 지금의 영국 대사관저 자리에는 아름다운 잔디 정원과 테니스코트가 있었다. 그곳에서 외교사절이 참석하는 파티가 열리거나 서양인들이 테니스를 하기도 했다.
  
142년 전통 윔블던, 흰색 복장 엄격 규정
 
어느 날 고종이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 치는 서양인들을 보고 “그리 힘든 건 머슴에게나 시키지 뭐하러 직접 하느냐”고 했다는 말이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시절 체통을 중시하는 유교적 문화에서 스포츠에 대한 관점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하는 일화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문명이 교류하고 스포츠라는 덕목이 개념화해 사회에 자리 잡던 그 시절에, 우리의 리더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테니스를 보고 그 목적과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머슴론’은 체통을 중시하는 계급문화에서 나올 수 있는 표현을 상상해 지어낸 말일 수 있겠지만, ‘사회적 스포츠’로서는 비극이다. 역사적으로 수렵과 무예를 즐긴 우리 민족의 리더가 스포츠에 가진 관점을 표현한 이 대목에서, 근대 대한민국 스포츠가 태생적으로 불우하게 출발했음을 느낀다. 영국에서 국왕이 참관하는 윔블던 대회가 출범하던 1877년, 미국은 구조화된 프로야구, 내셔널리그를 출범시켰다(1876년). 영국이 테니스로 스포츠의 문화와 전통을 쌓기 시작했다면, 미국은 야구로 프로 스포츠 비즈니스, 스포츠 산업의 초석을 다듬기 시작했다.  
 
쿠베르탱

쿠베르탱

그리고 이 시기에 스포츠 근대사에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프랑스 교육자 쿠베르탱이다. 그는 1870년대 러시아와의 전쟁 패전 이후 1883년부터 1887년까지 5년 동안 12번이나 영국에 갔다. 그는 그 방문을 통해 국민의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스포츠의 중요성을 벤치마킹해 왔다. 그는 영국에 건너가 사립학교체육을 프랑스에 가져 왔고, 이 교육을 통해 지적, 도덕적, 사회적 시민 형성의 기틀을 다졌다.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지적, 도덕적, 사회적 시민 형성이라니!) 그리고 훗날 쿠베르탱은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를 세계 평화와 연결해 올림픽을 만든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 스포츠에 대한 어떤 국가적 초석이 놓이던 그 시절의 우리 역사는 아주 달랐다. 게다가 우리는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한 번 더 굴곡의 역사를 밟는다. 일본은 우리 민족이 뭉치고 협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당연히 팀 스포츠는 물론 함께 어떤 행동을 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다시피 했다. 우리의 스포츠 철학이나 체육교육은 국가의 주권 상실과 함께 한 번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다. 팀 스포츠는 협동심, 애국심 등을 길러 주는 도구로서 제국주의자들의 눈 밖에 났고, 그러한 마음이 조국애로 성장할 것을 우려해 올바른 스포츠를 정책적으로 만들거나 교육으로 제도화할 수 없었다. 1920년 조선체육회가 출범하고 그 최소한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지만 미약한 힘으로 영국이나 프랑스가 스포츠를 본연의 사회적 장치로, 또는 미국이 스포츠를 하나의 산업적 생태계로 만들 수 있었던 권한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 주권을 되찾은 대한민국은 각 종목에서 국제대회에 참가하거나 그 대회를 유치하며 스포츠를 통해 나라의 위상을 알렸다. 스포츠는 우리의 국가적, 민족적 경쟁력을 과시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됐고, 그 과정에서 극도의 엘리트 위주, 경기력 위주, 결과(성적) 지상주의가 우리 스포츠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윔블던

윔블던

태릉선수촌과 메달 획득에 따른 연금 포상, 병역 면제 등 각종 결과를 위한 제도가 등장했다. 여름·겨울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 축구 월드컵 등 ‘세계 3대 스포츠 메가 이벤트를 모두 주최한 나라’라는 훈장도 얻을 수 있었다. 1980년대 5공화국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각 종목의 프로화가 추진됐다. ‘스포츠 산업’, ‘프로 스포츠 비즈니스’라는 개념과 인식은 자리 잡지도 못했던 때다.
 
그렇게 추진된 스포츠 정책의 결과는 어떤가. 학교에는 운동장이 없어지고, 스포츠인은 사회적으로 그 권리와 책임 등에서 일반인과는 ‘다른 사람들’로 인식됐다. 프로 스포츠 생태계는 적자 산업구조를 가지고 재벌과 대기업의 ‘선심성 사업’의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교육으로서의 스포츠’가 가장 큰 병이 들었다. 결국은 지난 2월 정부가 나서 ‘스포츠 혁신위원회’를 만들었고 그들은 지난 6월 ‘학교체육 정상화를 위한 권고안(2차)’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발표 이후 스포츠 현장에서는 엘리트 스포츠 죽이기라고 반발하고, 학계에서는 지난 4일 체육과 교수 190명이 지지성명을 내는 등 찬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 시절 조선의 국왕이 영국인들이 테니스를 하는 목적을 좀 더 궁금해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힘든 일’이라서 머슴에게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하기 어려운 일’로 생각해 직접 해 보고 그 본연의 목적과 가치를 땀을 통해 얻었다면 어땠을까. 스포츠가 일부의 것이 아니고 국민 모두의 것으로 생각하고 국가의 리더가 강건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졌더라면 외세의 침입을 좀 더 잘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정부, 뒤늦게 병든 학교체육 혁신 나서
 
학교체육 혁신을 위한 권고안의 기본은, 학생 운동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제대로 교육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그 시절 관점에 빗대면 일(운동)만 하는 머슴에게 교육의 기회가 없으니, 제대로 된 학습의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14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후회하는 것은 운동만 하는 머슴의 교육이 아니다. 왕이 테니스를 했어야 하는 거다. 당시로 따지면 양반이 강해져야 하는 거다. 지금 우리 사회의 더 큰 문제는 학생 운동 선수의 학습이 아니고 학생 모두의 올바른 지적, 도덕적, 사회적 시민 형성을 위한 체육이다. 그 시절 양반처럼 기득권이랍시고 스포츠인 머슴으로 보고 교육시키려 들지 말고, 스포츠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갖추고 쿠베르탱처럼 교육과 사회를 건강하게 바꾸어 보라는 거다.
 
그래서 지금의 결과 중심, 숫자 중심의 스포츠와 그 사회를 과정 중심, 가치 중심의 스포츠, 그런 사회로 바꾸어 보라는 거다. 이번 주말 윔블던 남녀 결승을 보며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그려 보자.
 
이태일 전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인터넷 네이버 스포츠실장을 지냈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대표이사로 7년간 재직한 뒤 지금은 데이터업체 스포츠투아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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