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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 신성모, 유엔에 한반도 원자탄 투하 간청” 소문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585>
미 공군의 포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신의주 쪽을 바라보는 중국의 동북변방군. 1950년 10월 말, 단둥(丹東). [사진 김명호]

미 공군의 포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신의주 쪽을 바라보는 중국의 동북변방군. 1950년 10월 말, 단둥(丹東). [사진 김명호]

인간은 핑계를 명분으로 포장할 줄 아는 동물이다. 남에게 덮어씌울 줄도 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다. 6·25 전쟁도 양측 모두 명분이 그럴듯했다. 먼저 밀고 내려온 북쪽은 조국 해방전쟁을 주장했다. 유엔군과 함께 반격에 나선 남쪽은 북진통일을 소리높이 외쳤다.
 
전쟁이다 보니 파괴와 인명피해는 당연했다. 유사 이래 최대의 인구이동도 피할 수 없었다. 제 발로 올라가고 내려온 사람도 있지만, 살기 위해 내려온 피란민이 더 많았다. 신중국의 참전과 원자탄 때문이었다. 긴장이 계속됐다.
 
긴장은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냈다. 전후 회복 속도가 빨랐다. 평화와 풍요가 길다 보니 지난 일을 까먹었다. 온갖 망측한 일이 벌어졌다. 재치와 삼류 말장난이 지혜와 지식으로 둔갑했다. 무지와 막무가내 앞에 사실은 빛을 잃었다. 인간성 파괴는 덤이었다.
 
유엔은 미국의 독무대였다. 1950년 12월 7일, 미국과 다수의 유엔 회원국 대표가 중국 특파대사 우슈취안(伍修權·오수권)이 제안한 미국의 한반도 침략안을 총회에 상정키로 의결했다. 우슈취안은 반발했다. “미국이 유엔조직을 농단한다. 흑백이 전도됐다”며 회의장을 떠났다.
  
우슈취안, 총회 연기되자 장외 투쟁
 
항미원조 기간, 북한과 중국은 중조 혈맹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런 유형의 선전용 사진을 많이 배포했다. [사진 김명호]

항미원조 기간, 북한과 중국은 중조 혈맹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런 유형의 선전용 사진을 많이 배포했다. [사진 김명호]

12월 15일, 유엔 총회는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다. 3일 후 유엔 정치위원회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우슈취안의 회고를 소개한다. “총회의 결정은 취소나 마찬가지였다. 유엔 강단을 이용해 미 제국주의와 투쟁하려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장소를 회의장 밖으로 이전했다. 성공호(成功湖·Lake Success)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기자들 앞에서 우슈취안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유엔에 왔다. 미국의 조종을 받는 안보리는 우리의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건의를 묵살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소리를 전 세계가 듣도록 유엔정치위원회에서 할 발언도 준비했다. 미국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해 유감이다. 여기 원고가 있다. 읽어 주기 바란다.”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우슈취안은 일류 선전가였다. 미국인에 대한 호감도 빠뜨리지 않았다. “여러 방법으로 우리를 반겨 준 미국인이 많았다. 충심으로 감사 드린다. 우리는 중국과 미국의 인민들이 미국 통치집단의 침략정책에 맞서 승리하리라 믿는다. 양국 인민의 우호 증진을 고대하는 우리의 뜻이 미국국민에게 전달되기 바란다.”
 
영문으로 번역한 자료 뭉텅이도 배포했다. 국·공전쟁 시절 중공 야전군이 국민당 군에게서 노획한 미국 무기 사진첩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미국 비행기가 중국 영토 포격하는 사진 수백장 열거한 책에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중국대표단은 유엔의 서방국가 대표들과 활발히 접촉했다. 미국 내 진보적 인사도 직접 방문했다. 흑인 가수 폴 로브슨(Paul Robeson)은 미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였다. 중국국가 의용군행진곡을 부른 친중 인사였다. 대표단 일원 궁푸셩(龔普生·공보생)은 컬럼비아대학 재학 시절 가까이 지낸 로브슨을 방문했다. 중국을 대표해 안부 전하며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의 초청장도 전달했다. 미국 정보기관의 물밑대화 제안은 거절했다.
  
중공군 야습 피해 미 10군단 혈로 후퇴
 
폴 로브슨(왼쪽)은 컬럼비아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가수이며 인권운동가, 연극인이었다. 경극배우 매이란팡(梅蘭芳·오른쪽)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가운데는 할리우드에 처음 진출한 화교출신 배우 황류샹(黃柳霜). 1935년 3월, 뉴욕 브로드웨이. [사진 김명호]

폴 로브슨(왼쪽)은 컬럼비아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가수이며 인권운동가, 연극인이었다. 경극배우 매이란팡(梅蘭芳·오른쪽)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가운데는 할리우드에 처음 진출한 화교출신 배우 황류샹(黃柳霜). 1935년 3월, 뉴욕 브로드웨이. [사진 김명호]

미국 정부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 은행에 예치된 중국인의 예금을 동결시켰다. 대표단 고문 차오관화(喬冠華·교관화)는 경호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동결 발표 전날 여성 경호원 한 명이 차오관화에게 정보를 흘렸다. 대표단은 은행 마감시간 직전에 예치했던 자금을 인출했다. 12월 24일 14시 36분 장진호에서 후퇴한 국군과 유엔군이 흥남 부두에서 철수작전을 완료한, 바로 그날이었다.
 
11월 하순 장진호 지역에 도달한 미 10군단은 방심했다. 중국 지원군의 공격을 받고 나서야 모든 거점이 포위된 것을 알았다. 11월 30일 밤 군단장 알몬드가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라고 선언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에 줄을 잇는 철수 행렬은 장관이었다. 중국 지원군은 낮에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밤만 되면 미군을 공격했다. 유담리(柳潭里)에서 하갈우리(下碣隅里)까지는 22㎞였다. 1시간에 이동한 거리가 평균 286m에 불과했다.
 
뉴욕 헤럴드가 해병 1사단 장교의 푸념을 소개했다. “우리는 혼 빠진 망령과 다를 바 없다. 인천에 상륙할 때와는 딴사람이다. 다섯 주야를 악몽에 시달리며 혈로(血路)를 돌파했다. 일분일초가 미 해병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순간이었다. 매일 밤 내 인생에 내일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 중인 나라의 백성은 소문에 약하다. 세상이 뒤숭숭하다 보니 사실 같은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12월 2일, 국방 장관 신성모가 한반도 북부에 원자탄을 투하해 달라고 유엔에 간청했다.” 유엔에 원자탄이 있을 리 없었다.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이름도 빠지지 않았다. “맥아더는 우리의 은인이다. 한반도 북부와 중국의 단동, 심양, 북경, 상해, 천진, 남경 등 6개 도시에 투하할 원자탄 26개를 미 합동참모본부에 요구했다. 일본도 원자탄 두 발에 손을 들었다. 북한과 중공은 망했다.”
 
한반도 북부의 민간인들은 원자탄 투하 소리에 기겁했다. 우선 살고 보자며 피란 보따리를 꾸렸다.  <계속>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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