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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30곳 남대문 3곳 … 등산장비 라이벌전 게임 끝?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남대문시장 퇴계로 방면의 한 건물. ‘등산용품’이라고 적힌 간판 번호대로 전화를 걸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원래 등산장비점이 있던 곳에는 액세서리 가게가 들어섰다. 이곳에서 ‘동양산악’을 30년 넘게 운영해온 김춘한(59)씨는 “버티다, 버티다 지난 3월 가게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동대문 등산 장비점은 90년대 중반부터 전문장비에 주력하며 남대문 장비점과 차별화에 나섰다. 이 차별화로 양쪽 시장의 장비점들 20년 뒤 운명이 갈리게 됐다. [김홍준 기자]

동대문 등산 장비점은 90년대 중반부터 전문장비에 주력하며 남대문 장비점과 차별화에 나섰다. 이 차별화로 양쪽 시장의 장비점들 20년 뒤 운명이 갈리게 됐다. [김홍준 기자]

남대문과 쌍벽을 이룬 동대문의 등산 장비점 골목. 이곳의 등산 장비점은 30여 곳에 이르는 반면 남대문에는 3곳만 남아 있다. [김홍준 기자]

남대문과 쌍벽을 이룬 동대문의 등산 장비점 골목. 이곳의 등산 장비점은 30여 곳에 이르는 반면 남대문에는 3곳만 남아 있다. [김홍준 기자]

몇 년 전 한 아웃도어 월간지에서 ‘잘 나간다’며 소개한 남대문시장의 등산장비점 11곳 중 5곳은 전화번호가 아예 사라졌다. 2곳은 번호를 가져간 호텔·보험사에서 각각 받았고 1곳은 기존 장비점과는 완전히 다른 물품을 취급하는 아웃도어업체 직원이 받았다. 

  
퇴계로에 3곳. 대한민국 산행 용품의 보급창고로 군림해 왔던 남대문 등산장비점은 이만큼 남아있다. 한때 20곳 훌쩍 넘었던 시절이 무색하다. 김춘한씨는 “회현고가 공원화,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남대문시장에 유동인구가 많아졌지만 등산장비 수요와는 상관이 없었다”고 말했다.
 
남대문과 반세기 라이벌인 동대문 장비점들은 예전만 못해도 아직 성업 중이다. 동대문에는 현재 30여 곳의 장비점이 있다. 재고 등산의류만 파는 상설할인점까지 합하면 40곳이 넘는다. 동대문과 남대문 장비점의 운명이 이렇게 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남대문 시장 건물 모퉁이 등 좋은 자리에 자리 잡으며 한때 20여 곳이 넘었던 남대문의 등산 장비점은 퇴계로 쪽에 3곳만 남았다. 사진은 퇴계로 방면의 등산 장비점을 비롯한 가게들. [김홍준 기자]

남대문 시장 건물 모퉁이 등 좋은 자리에 자리 잡으며 한때 20여 곳이 넘었던 남대문의 등산 장비점은 퇴계로 쪽에 3곳만 남았다. 사진은 퇴계로 방면의 등산 장비점을 비롯한 가게들. [김홍준 기자]

① “시장 구조가 다르다”  

김춘한씨를 비롯한 등산장비점 사장들은 “2014년 들어서자마자 유난히 장사가 안됐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월평균 가계 소비지출은 2006년 181만4533원에서 2018년 253만7641원으로 40% 늘었다. 하지만 의류·신발 지출액은 2013년 14만9203원을 기록한 뒤 2016년 13만5895원으로 급격히 줄었다. 아웃도어 시장 규모가 2014년 7조1600억원에서 2017년 4조5000억원까지 추락했다는 삼성패션연구소와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의 분석과 상당 부분 겹친다. 
 
의류·신발 지출은 2017~2018년 예년 수준을 회복했지만 의류·등산화를 주로 파는 등산장비점들은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 섬유산업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불경기에 접어들면 소비자들은 의류 지출부터 줄이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문 닫은 남대문 등산장비점 '동양산악' 자리에 액세서리 가게가 들어섰다. 위의 '등산용품' 간판의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다. [김홍준 기자]

지난 3월 문 닫은 남대문 등산장비점 '동양산악' 자리에 액세서리 가게가 들어섰다. 위의 '등산용품' 간판의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다. [김홍준 기자]

돈은 덜 들어오는데 나갈 돈이 많아졌다. 임대료 때문이다. 남대문의 한 등산장비점 사장은 “불경기에 임대료도 올라 버티기 힘들다“며 ”직원 2~3명 모두 내보내고 아내와 둘이 가게를 돌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임대료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남대문 근처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정필성(58)씨는 ”남대문과 동대문의 등산장비점은 같은 역세권(회현역·종로5가역)인 데다 임대료 상승폭도 비슷하다”며 “남대문에는 등산장비점을 대신할 업종이 언제라도 있는 반면 동대문에서는 대신할 업종이 드물다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공인중개사 A씨는 “남대문 시장에 비해 동대문이 구조상 넓게 퍼져 있어 불경기, 근처 공사 등 외부 요인을 완충할 여력이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② “타깃이 달랐다”
남대문과 동대문 등산장비점의 영업전략이 다른 점도 한 요인이다. 남대문은 워킹(walking·걷는 산행)을 주로 하는 등산 동호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즉 텐트·코허(코펠)·스토브(버너)를 주무기로 내세워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이때는 ‘야유회=산’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여름 휴가철은 대목이었다. 60년대부터 산행을 해온 이종록(74)씨는 “남대문 시장의 등산장비는 당시 신문에 물가동향을 알려주는 지표로 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동대문은 일반상품도 팔았지만 전문등반(클라이밍)에 필요한 고가의 장비에 주력했다. 일반상품을 싸게 팔아 고객을 확보한 뒤 비싼 전문장비까지 소비하도록 하면서 마진을 키웠다. 동대문에서 디딤돌이라는 장비업체를 운영하는 서명수(53)씨는 “전문등반가들은 워킹에서 시작해 클라이밍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대문 등산 장비점은 90년대 중반부터 전문장비에 주력하며 남대문 장비점과 차별화에 나섰다. 이 차별화로 양쪽 시장의 장비점들 20년 뒤 운명이 갈리게 됐다. [김홍준 기자]

동대문 등산 장비점은 90년대 중반부터 전문장비에 주력하며 남대문 장비점과 차별화에 나섰다. 이 차별화로 양쪽 시장의 장비점들 20년 뒤 운명이 갈리게 됐다. [김홍준 기자]

91년 산에서의 취사·야영이 금지됐다. 등산장비점들에 1차 쇼크였다. 98년 외환위기는 위기이자 기회였다. 국민들의 주머니는 다소 홀쭉해졌지만 돈이 적게 든다는 등산에 사람이 몰렸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로 다시 기회를 잡았다. 이해를 전후로 아웃도어 시장은 급격히 몸을 불렸다. 7년 동안 한해 평균 30~40% 성장했다. 어떤 업종도 이루지 못한 성장세였다. 너도나도 아웃도어에 뛰어들었다. 그 거품은 2차 쇼크가 됐다. 지방과 동네에 장비점이 들어서면서 3차 쇼크, 온라인몰이 커지면서 4차 쇼크로 이어졌다. 불경기가 5차 쇼크였다. 

 
남대문의 일반상품은 안 팔렸다. 소비자들은 굳이 남대문까지 가지 않았다. 동대문의 전문등반장비는 큰 변화 없이 소비됐다. 한 등산장비점 관계자는 “동대문에는 단골, 남대문에는 뜨내기가 간다는 선입견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③ “교통 여건도 다르다”
영화 ‘히말라야’에서는 엄홍길(황정민) 일행이 박무택(정우)의 시신 수습을 놓고 다툰다. 장소는 동대문의 한 닭한마리집이다. 예전보다 뜸해졌지만 동대문은 여전히 산악인들의 ‘집회’ 장소다. 산악인들은 산악회 모임을 집회로 부른다. 남대문보다 전문장비점이 많은 데다 북한산·도봉산과의 접근성도 좋기 때문이다.
남대문과 쌍벽을 이룬 동대문의 등산 장비점 골목. 이곳의 등산 장비점은 30여 곳에 이르는 반면 남대문에는 3곳만 남아 있다. [김홍준 기자]

남대문과 쌍벽을 이룬 동대문의 등산 장비점 골목. 이곳의 등산 장비점은 30여 곳에 이르는 반면 남대문에는 3곳만 남아 있다. [김홍준 기자]

동대문에는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고속버스터미널이 현재의 JW 메리어트 자리에 들어섰다. 예전 12번, 13번 버스도 이곳에서 도봉산으로 향했다. 산행객을 싣고 지방으로 떠나는 전세버스가 주말마다 동대문에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도 리무진들이 동대문-양재-사당 코스로 등산객을 실은 뒤 설악산·지리산·월출산 등으로 향하고 있다.

 
지방의 장비점들은 서울역이 있는 남대문에서 물건을 가져갔다. 그러나 2000년대 아웃도어의 급작스러운 활황은 남대문 장비점에 의외의 타격을 가하게 됐다. 20년간 부천에서 등산 장비점을 운영한 전병민(58)씨는 “지방 장비점은 취급 물량이 많아지면서 남대문을 거치지 않고 아웃도어업체와 직거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⑤ “개발·혁신이 살 길”  
블랙야크·K2는 모두 동대문·종로에서 가내 수공업 형태로 출발한 뒤 최근 수년 간 아웃도어업계 톱5에 포진해 있다.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은 “남대문이 침몰한 이유는 기존에 물품을 납품받고 그대로 파는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개발과 혁신도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 남대문은 1세대 경영 이후 2세대에서 가게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남대문 등산장비점의 몰락은 불황과 아웃도어 거품, 차별화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대문 시장 건물 모퉁이 등 좋은 자리에 자리 잡으며 한때 20여 곳이 넘었던 남대문 시장의 등산 장비점은 퇴계로 쪽에 3곳만 남았다. 사진은 퇴계로 쪽 남대문 시장 전경. [김홍준 기자]

남대문 시장 건물 모퉁이 등 좋은 자리에 자리 잡으며 한때 20여 곳이 넘었던 남대문 시장의 등산 장비점은 퇴계로 쪽에 3곳만 남았다. 사진은 퇴계로 쪽 남대문 시장 전경. [김홍준 기자]

장비점 뿐 아니라 아웃도어업체도 특색이 없으면 여지없이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한국의 아웃도어 소비자들은 선진국처럼 암벽등반·서핑·스쿠버다이빙·백패킹 등 다양하면서도 전문적 분야에 몰입하는 만큼 이에 따른 전략을 짜야할 것”이라며 “아이디어와 정체성이 없으면 장비점도, 아웃도어업체도 살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장비점 직원을 거쳐 아웃도어업체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B씨는 “아웃도어는 혼란기를 거쳐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며 “모두가 찾는 게 아닌, 꾸준히 찾는 브랜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남대문·동대문, 60년대 미군 코펠·텐트 손질해 팔며 성장
남대문과 동대문의 등산장비점은 1960년대에 본격 등장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장비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등산장비점들은 미군이 쓰던 텐트·코펠·스토브 등을 살짝 손질해 시장에 내놨다. 불티나게 팔렸다.
 

남대문 시장 장비점들은 남창동 일대에서 남대문로·퇴계로까지 세력을 넓혔다. 남대문 등반장비점의 주력은 캠핑장비였다. 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캠핑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남대문 장비점은 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코오롱스포츠 1호점이 이곳에 문을 열었고 ‘유명레저’ ‘아리랑산맥’ 등 명소들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동대문 시장 장비점은 사실 동대문보다 종로5가·청계5가에 뿌리를 내렸다. 역시 미군용품을 취급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종로산악’이 전문등반장비를 취급하면서 주변 가게들도 따라 나섰다. 이곳의 ‘동진레저’는 후일 ‘블랙야크’로 성장했다. ‘청산산방’은 ‘다나’라는 우모 전문제작업체로 변신하며 해외원정대에 침낭·우모복을 댔다. 남대문=캠핑용품, 동대문=전문등산장비라는 공식은 결국 수십 년 뒤 양쪽의 운명을 가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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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