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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선] 진작 삼성 귀한 줄 알았더라면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첫 대선 도전 때인 2012년 9월 경북 구미의 한 화학공장에서 4명의 사망자를 낸 불산 유출 사고가 났다. 문 후보는 사고 열흘이 지나 현장에 내려가서는 방진 마스크를 쓴채 말라죽은 고추를 들여다보는 강렬한 사진을 남겼다. 야당 대선 후보로서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부각한 효과적인 행보였다. 또 트위터에 ‘열흘이 지났는데도 목과 눈이 따갑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무심코 곁에 다가왔다가 기침을 해댔다’고 썼다. 본인은 그렇게 느꼈겠지만 이 짧은 글은 현장 다녀온 사람 옆에만 가도 기침이 날 정도로 위험한 독성이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식의 불산 괴담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국 반도체를 정조준해 수출 규제에 나선 세 가지 핵심소재 중 하나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 대통령의 청와대 호출도 마다하고 일본으로 급박하게 날아가 확보에 나선 바로 그 불산 말이다.
 
구미 유출 사고는 사고와 수습 과정에서 작업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벌어진 후진국형 인재였다. 불산 자체보다 관리감독 시스템의 문제였다. 그런데도 유력 정치인의 과장된 표현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피해 지역 주민은 물론 전국적으로 불산 공포를 조장했다. 불산이 맹독성 화학물질인 건 사실이지만 휘발성이 강해 열흘이나 공기 중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게 당시 전문가들 견해였는데도 말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문 후보가 일조한 괴담 덕분에 불산 공장은 혐오시설로 낙인찍혔고, 실제로 공장 하나가 날아갔다. 사고 7개월 전인 2012년 2월 글로벌 석유화학기업 멕시켐은 3000억 원을 들여 연간 13만t 규모의 불산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기로 여수광양항만공사와 투자유치협약을 맺었으나 문 후보가 속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을 등에 업은 환경단체의 거센 반대로 결국 백지화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듬해 1월,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사망하는 불산 유출 사고가 터지자 민주당은 삼성을 공격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5월 국회 환노위에 출석해 전문가 340명을 고용해 하도급업체에 맡겨온 유해화학물질 관리를 직영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의혹을 캐겠다며 국정감사에 삼성전자 사장 출석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또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을 통과시켜 한국에서 소재산업이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아예 규제로 단단히 옭아맸다. 취급시설 기준을 79개에서 413개로 늘려 삼성이든 중소기업이든 사실상 국내 업체가 투자하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청와대와 여당은 마치 맘만 먹고 돈 좀 쓰면 당장이라도 가능한 것처럼 “소재 국산화”“기술자립”을 부르짖지만 정작 업계에선 “환경규제로 반도체 소재 국산화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법 통과 직후부터 재계는 화관법 완화를 정부에 건의했지만 은수미 의원(현 성남시장) 등 지금의 여당 의원들은 “정부가 시행령 등을 통해 화평법을 무력화시킨다면 박근혜 정부는 국민 생명과 안정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이걸로도 모자라 같은 당 강병원 의원은 2017년 핵심기술 유출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거 국감 때 받은 정부의 삼성전자 종합진단보고서를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언론에 공개해 버리기까지 했다.
 
비단 이 정부 들어서뿐만이 아니라 삼성은 이전부터 이렇게 지금의 여당 인사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렸고, 어차피 공장 설립은 엄두도 못내니 소재는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이 정부 들어 ‘셀프 후원’ 의혹으로 금감위원장에서 낙마한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정부가 쌓아올린 위기를 대신 푸느라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기업을 또 저격했다. 그는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삼성과 하이닉스가 일본 업체의 가격 경쟁력만 생각해 국내 기술 개발과 협력업체 육성을 외면해온 것이 문제”라고 했다. 또 다른 괴담을 유포해 자기 진영의 과오를 덮은 셈이다.
 
대통령 주변뿐 아니라 대통령 본인도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무 힘 없는 국민들도 나라 걱정에 밤잠을 설칠 지경인데 대통령은 기업인들 불러다 일본 타도 결기를 다지는 듯한 분위기이니 말이다. ‘삼성 망해라’ 식의 저주를 퍼붓던 이 정권 사람들이 진작 삼성 귀한 줄을 좀 알았더라면 지금 사정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째 지금도 삼성 귀한 줄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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