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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근의 한반도평화워치] 안보·경제 모두 핵심 이익, 미·중은 한국의 필수 동반자

미·중 경쟁 속 한국의 대응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한국은 3년 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으로 발생한 한·중 관계 악화와 경제 보복에서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화웨이 사태라는 복병을 만났다. 미국 정부가 보안성을 이유로 중국 화웨이의 5세대(5G) 통신 장비 구매를 금지하고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도 공동 대응을 요구했다.
 
사실 미·중 경쟁은 한국뿐 아니라, 미·중 사이에 낀 모든 중간국의 최대 고민거리다. 지리적·경제적·전략적으로 미·중 사이에 놓인 한국은 고민이 더욱 크다. 전문가들은 미·중 문제가 향후 한 세대 이상 한국 외교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미·중 경쟁의 신지정학 시대에 한국의 선택과 대응 원칙은 무엇인가.
 
필자는 한국이 미·중 양자택일의 선택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의 정체성에 기반을 둔 국익과 국제사회의 보편적 외교 원칙을 선택할 것을 제기한다.
 
미·중 경쟁의 근원은 중국의 급속한 국력 신장에 있다. 중국은 2010년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되었고, 2030년까지는 미국도 추월하여 명실상부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될 전망이다. 20세기 내내 압도적 경제력 우위와 이에 기반을 둔 최강 군사력으로 세계 패권을 지켰던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충격받았다. 최근 시진핑 정권의 권위주의 체제 강화와 팽창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은 미국의 견제를 촉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수정주의 국가이자 미국 패권에 대한 전략적 경쟁국으로 규정하고 전면 경쟁을 선포했다.
 
우리 정부는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하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 참석, 사드 배치, 한·미·일 군사 협력, 미국의 남중국해 자유항행작전 참여 등 미·중 경쟁으로 인한 딜레마에 부닥쳤다. 초기 “미·중의 러브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예의 주시하면서 결정을 미루거나, 필요시 최소 반응을 보이는 데 그쳤다. 그런데 사드 사태는 미·중 경쟁의 엄중한 현실을 일깨웠다.
 
화웨이 사태가 새로 불거지자 정부는 사드 사태의 교훈에 따라 조기 긴급 대응에 나섰다. 첫째, 외교부는 기존 조직으로 미·중 경쟁과 같이 복합적 외교 사안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관련 조직을 보강하고 정책 조정 기능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도 미중관계연구팀을 가동하고,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대응 전략의 개발에 나섰다.
 
외교부는 1990년대 초 급변하는 탈냉전기에 선제적 대응을 위해 외교정책실을 설치한 적이 있다.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정착되자 외교정책실을 용도 변경하고, 전략 기획 기능도 대폭 축소했다. 미·중 경쟁이 악화하는 국제 질서 전환기를 맞아 국제 정세 변동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한국형’ 외교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외교전략실을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둘째, 정부는 미·중 경쟁에 대한 대응 원칙을 제시했다. 우선 화웨이 건에 대해 “기업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군사 통신 보안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안을 강구”한다는 대응 원칙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일반적 대응 원칙도 제시했다. 미·중은 한국의 “1, 2위 교역국으로 모두 중요하므로 한 나라를 선택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길 바라며” 다자주의·개방주의  무역 체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중 전략 경쟁에 대해서는 “개방성·포용성·투명성이라는 역내 협력 원칙에 따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는 한국의 미국 인도태평양전략 참여 결정에 대해 중국이 반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정부 입장은 개방성·포용성·투명성 등 국제사회가 동의하는 보편적 원칙을 내세웠고,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해서도 우리 신남방정책과 동조되는 부분에 한해 협력한다는 차별적 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국내 외교정책 공동체는 한국의 대응 전략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미국 편승, 중국 편승, 중립의 소극적 헤징, 미·중 이중 편승의 적극적 헤징, 다른 중간국과 연대하는 합종책, 남북 협력의 자립 노선 등 다양한 옵션이 있다. 실제 한국은 역사적·정치적·지리적 이유로 가용한 옵션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충분한 토론과 국민적 합의 절차를 거쳐 대응 전략을 채택할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미·중 경쟁에 대한 4개 대응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 핵심 국익은 안보와 경제 국익을 포함한다. 다수 전문가가 예상하듯이 미·중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더라도 과거처럼 ‘관대한 패권국’이 될 가능성은 작다. 패한 중국은 위험한 이웃이 될 것이다. 이런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면 한국은 외교·군사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또한 자원·에너지 빈국인 한국에 경제 통상 국익은 안보만큼 중요하다. 부국이 없다면 강병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 평화 번영의 2개 핵심축인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적극적으로 견지한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뿐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한 핵심 수단이다. 미국은 한국 동포의 최대 거주지이고, 주요 수출시장이며 원천·첨단 기술의 공급처이다. 중국은 우리 경제성장에 필요한 거대 시장과 수출 공장을 제공할 뿐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과 통일 과정에도 필수적 동반자이다.
 
셋째,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국제 규범을 지지한다. 한국은 중소 국가로서 강대국과 세력 경쟁에 맞설 수 없다. 따라서 다수의 힘을 빌리기 위해 국제기구와 다자주의를 지지하고 활용한다. 국제 규범도 중소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 장치이다. 이때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국제 규범 창출에도 참여할 수 있다.
 
넷째, 투명성·개방성·포용성·법치의 가치와 원칙을 지지한다. 이 가치들은 국제사회의 진영화와 강대국 세력 정치를 거부한다. 이 가치들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보편적 가치로서 열린 국제 질서를 가능케 한다. 특히 한국은 이런 보편적 가치의 창달을 통해 통상 국가이자 세계 국가로서 국익을 보장받게 된다.
 
미·중 경쟁에 대한 효과적 외교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정체성과 이에 기반을 둔 국익에 대한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못한 외교 전략은 방향성과 추진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아래에 우리 정체성과 이를 반영한 국익을 제시한다.
 
첫째, 분단국가의 정체성을 가진 한국은 통일과 안보가 핵심 국익이다. 한국은 북한과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최악의 안보 경쟁 관계에 있어 안전 보장이 필수적이다. 미·중은 각각 동맹과 전략적협력동반자로서 안보와 통일에 필수적인 국가이다.
 
둘째, 한국은 대외 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하고 교역액이 세계 7위인 통상 국가의 정체성을 갖는다. 또 해외 여행자 1500만 명, 재외동포 700만 명 등으로 개방 국가이자 세계 국가로서 정체성도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적·개방적 국제 질서와 자유무역이 핵심 국익이다. 한국은 자원 확보와 통상 환경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므로 세계 평화와 지역 안정 유지도 핵심 이익이다.
 
셋째, 한국은 국가 규모로 중견국의 정체성을 갖는다. 따라서 중견국 외교에 유리한 국제 질서와 국제 규범을 형성하는 게 유리하다.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5개 중견국 협의체인 믹타(MIKTA, 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터키·호주) 창설을 주도했다. 또 강대국과 약소국, 선진국과 개도국, 핵국과 비핵국을 연결하여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중간국이자, 안보 취약국의 정체성을 갖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 중추국의 국익을 추구한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취약하면 주변 강대국에 침략당했지만, 온전하고 강건할 때는 오히려 전략적 중추국이자 교량 국가로서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미·중 경쟁 시대에 중간국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싱가포르·호주·베트남 등 동아시아 중간국들과의 연대도 필요하다. 북한과 일본도 중간국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 미·중 경쟁에 대한 대응을 목표로 이들과 협력도 가능성이 열려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소장 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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