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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줄고 경찰행정 늘고…학계에 부는 경찰 바람

대학교에서 법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되고 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법학과의 감소 추세가 가파르다. 그 빈자리를 경찰행정학과와 같은 경찰 관련 학과가 채우고 있다. 이 영향으로 형사법 관련 학계에서도 경찰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다.

"법학 후속세대 양성 안 된다" 지적

 
법학과 223→157개, 행정학과 270→370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법학과와 행정학과 증감 비교. 정진호 기자.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법학과와 행정학과 증감 비교. 정진호 기자.

11일 교육부 교육통계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대학의 법학과는 157개다. 로스쿨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인 2006년엔 223개였던 법학과의 숫자는 매년 꾸준히 감소했다. 전국의 법학과는 로스쿨 1기 학생 입학년도인 2009년엔 209개였고 사법시험 폐지 합헌 결정이 난 2016년엔 171개로 줄었다. 법학과가 남아있는 학교에서도 모집 정원이 급격히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전국 대학의 행정학과는 150% 가까이 증가했다. 법학과 폐지 추세가 학령인구 감소 때문이 아니라는 의미다. 2006년 행정학과는 270개로, 당시 법학과 숫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16년엔 334개, 지난해에는 370개로 늘었다.

 
경찰 채용 늘고 입김 커지자…경찰행정학과 열풍
최근 신설된 행정학과의 세부 학과명을 살펴보면 경찰 관련 학과가 대다수다. 지난해 경찰공무원 선발 인원이 역대 최대인 6599명에 달할 정도로 경찰 채용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경찰행정학과, 경찰공공행정학부, 경찰정보보안학과 등 비슷한 이름의 학과가 대거 생겨났다. 경찰을 포함해 공무원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공공인재학과나 공무원법률행정학과에서도 경찰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실제 백석대 등은 법학과 신입생을 뽑지 않으면서 경찰행정학과를 신설했다. 법학과에 소속돼있던 교수들은 경찰행정학과로 옮겨갔다. 로스쿨을 운영하는 건국대의 경우 본교 법학과 교수들은 로스쿨로 소속을 옮겼지만 지방 캠퍼스 법학과 교수들 상당수는 신설된 경찰학과로 이동했다. 학과 정원을 채우기 힘든 지방 사립대도 경찰 관련 학과에는 지원이 몰려 학내 입지도 커지고 있다.

 
법학계 “학생 눈치 보여 경찰과 척졌다간 큰일”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검경수사권 조정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뉴스1]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검경수사권 조정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뉴스1]

법학과에서 경찰행정학과로 소속이 변경된 교수들은 “학과 입지와 경찰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인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말을 하기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내부에 대규모 수사구조개혁단을 설치하는 등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1차 수사종결권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법학을 전공한 교수라고 해도 경찰의 입장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면 소속 학과에 피해가 갈까 봐 우려하고 있다.

 
최근 법학과가 폐지되면서 경찰 관련 학과로 소속이 바뀐 한 교수는 “학생들은 교수가 경찰 채용 시험에 출제위원으로 들어간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데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면 출제위원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며 “속된 말로 경찰에 찍히면 학생들과 대학 본부에서 모두 눈치를 주는 분위기라서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학생 수급을 위해 대다수 대학의 법학과가 경찰행정학과로 이름을 바꿨다”며 “경찰행정학과 학생은 거의 다 경찰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과 정원이 80명 정도 되는데 70명 이상은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계 관계자는 “경찰청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해 돈을 주고 연구용역을 대거 발주하면서 연구비 때문에 경찰 눈치를 본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형사법 관련 학회서도 경찰 영향력 커져
형사법학회와 비교형사법학회 등 형법 관련 주요 학회에서도 경찰대 출신 교수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문성공 경찰대 교수는 형사법학회 출판위원장을 맡고 있다. 출판위원장은 학회의 학술지에 실을 논문을 심사하는 자리다. 비교형사법학회는 지난해 ‘바람직한 경·검 협력관계 모색을 위한 수사구조개혁 방안’을 주제로 공동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3일 오후 전북지방경찰청 앞에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전북지방경찰청 앞에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이후 형사소송법학회는 성명을 내고 반대 입장을 표했다. 형사법학회와 비교형사법학회는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은 상황이다. 형사법학회 관계자는 “학계가 정책에 대해 꼭 어떤 입장을 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부에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은 많았다”며 “최근 학계에서 경찰 출신 교수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의견을 모으는 게 불가능했다”고 했다.

 
법학 교수들 “이론 연구 후속세대 없다, 법치 무너질 것”
법학과 폐지로 인해 학문을 연구하는 후속세대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학부를 졸업하고 법학 석사와 박사를 거쳐 대학교수로 임용되는 길이 사라져서다. 로스쿨 졸업자는 대부분 학계가 아닌 검찰이나 변호사 업계로 진출해 실무를 담당한다.

 
명순구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이 생기고 법학과가 없어지면서 법학 후속세대 양성이 안 되고 있어 걱정이 크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로스쿨은 법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려는 사람이 없어지자 법학 박사과정 학생에게 학비를 전액 면제하고 월 200만원가량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정책까지 추진중이다.

 
법학과가 남아 있는 일부 학교에서도 후속세대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로스쿨 제도를 한국보다 앞서 도입한 일본은 학부에 법학과를 모두 남기고 후속세대 양성에 신경 쓰고 있다”며 “법학 공부를 위해 해외 유학을 가는 사람도 거의 없고 학교에서 법학을 계속 공부하려는 사람이 이전보다 현저히 줄었다”고 했다.

 
김성룡 경북대 로스쿨 교수도 “이제 법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더는 안 나올 상황까지 왔다”며 “이렇게 되면 법치주의의 근간도 무너지고 법원의 판례가 나왔을 때 이를 이론적으로 비판할 수가 없어 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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