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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날린 자이로 드롭, 마이클 잭슨 즐긴 신밧드의 모험

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장 30주년 
롯데월드가 30주년을 맞았다. ‘지구 마을’을 테마로 한 롯데월드는 그 시절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였다. 중세 유럽풍 성채와 기상천외한 놀이기구가 즐비했다. 올해 6월까지 방문객 1억7300만 명을 헤아린다. 김경록 기자

롯데월드가 30주년을 맞았다. ‘지구 마을’을 테마로 한 롯데월드는 그 시절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였다. 중세 유럽풍 성채와 기상천외한 놀이기구가 즐비했다. 올해 6월까지 방문객 1억7300만 명을 헤아린다. 김경록 기자

롯데월드 어드벤처(이하 ‘롯데월드’)가 개장 30주년을 맞았다. 1989년 7월 12일이 생일이니, 오늘로 꼭 서른 살이 됐다. ‘88올림픽’ 개최로 개발 광풍이 불던 시절, ‘테마파크’란 단어가 국어사전에도 없던 까마득한 그 시절 롯데월드는 태어났다. 앨범을 펴보자. 유년시절 가장 즐거운 순간이 롯데월드 사진으로 남아있을지도. 놀 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80~90년대 어린이들에게 롯데월드는 신세계였다. 여기에 롯데월드 30년을 펼쳐놓는다. 우리 테마파크에 관한 역사이자, 우리네 추억에 관한 이야기다.
 
 상전벽해의 땅
1990년 3월 24일 롯데월드 매직 아일랜드가 개장했다. 지금은 사라진 어트랙션 '고공전투기' '독수리 요격대' 등이 보인다. [사진 롯데월드]

1990년 3월 24일 롯데월드 매직 아일랜드가 개장했다. 지금은 사라진 어트랙션 '고공전투기' '독수리 요격대' 등이 보인다. [사진 롯데월드]

 1930년대만 해도 잠실(蠶室)은 뽕밭이요, 척박한 모래섬이었다. 무엇을 심고 세우든, 떠내려가기 일쑤였다. ‘미 8군사령부 군인들이 한강 물에 잠겨 위기에 처했던 잠실 주민 4천7백30명을 헬리콥터 7대로 공수 구조했다(중앙일보, 1966년 8월 2일)’는 식의 뉴스가 여름이면 들려왔다. ‘서울의 낙도’란 오명이 지겹도록 따라다녔단다. 초라한 역사다. 
 
 박정희 정부는 71년 잠실 남쪽 송파강을 메워 육지로 만들었다. “흙이 모자라 연탄재와 쓰레기를 쏟아붓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강을 메웠다”고 당시 도시계획을 총괄했던 고 손정목 서울시 기획관리관은 회상한다(중앙일보, 2003년 10월 19일). 당시 송파강의 일부로 남은 것이 지금의 석촌호수다. 악취와 모기가 들끓던 이 질퍽한 땅에서 89년 롯데월드가 탄생했다. 축구장 400개(12만6000㎡) 규모의 초대형 단지였다. 당시 유행어를 빌리자면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었다.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된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딱 맞았다. 
1990년 3월 24일 매직 아일랜드 개장식. 왼쪽부터 고 박태준 국무총리, 고 김종필 국무총리, 신격호 롯데 그룹 회장 내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수상 내외,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롯데월드]

1990년 3월 24일 매직 아일랜드 개장식. 왼쪽부터 고 박태준 국무총리, 고 김종필 국무총리, 신격호 롯데 그룹 회장 내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수상 내외,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롯데월드]

 최초의 테마파크
 ‘모로코·아라비아·이탈리아·네덜란드 등 8개 지역의 풍물을 그대로 재현,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에 첨단 오락시설과 장비를 갖췄다(중앙일보, 89년 7월 8일).’ 
 
 ‘지구 마을’을 테마로 한 롯데월드는 국내 최초의 테마파크다. 국어사전에 ‘테마파크’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 롯데월드는 테마파크를 선언했다. 이미 어린이 대공원(73년)과 용인자연농원(76년)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놀이기구 위주의 놀이공원(Amusement Park)이었다. 테마파크는 차원이 다르다. 놀이기구부터 편의시설, 문화 공연까지 테마가 하나로 통일돼야 한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세계를 재현한 디즈니랜드처럼 말이다.
롯데월드가 자랑하는 삼바 퍼레이드. 국내에 퍼레이드 문화를 도입한 것도 롯데월드가 처음이었다. 백종현 기자

롯데월드가 자랑하는 삼바 퍼레이드. 국내에 퍼레이드 문화를 도입한 것도 롯데월드가 처음이었다. 백종현 기자

 가령 롯데월드에서는 다음처럼 놀아야 한다. 스페인 해적선을 타고 비명을 지르다, 제네바 유람선에 올라 호수를 누비고, 중세 유럽풍 건물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고, 멕시칸 요리로 끼니를 채운다. 저녁에는 365일 이어지는 퍼레이드와 러시아·아프리카 같은 먼 나라에서 온 서커스단 공연을 감상하고, 가을이면 옥토버 페스트와 핼러윈 축제도 즐긴다. 이 정도는 돼야 지구촌 테마파크라 할 수 있다. 
 
 롯데월드의 시도는 대개 최초였고, 그대로 역사가 됐다. 특수유리 5144장으로 지붕을 씌운 롯데월드 돔은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올랐다(95년). 당연히 계절이 무색했다. 여름에도 스케이트를 타고, 겨울에도 물살을 가르며 후룸라이드를 탔다. 
롯데월드의 마스코트 로티와 로리도 어느덧 서른 살이 됐다. 여전히 어린이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사진 롯데월드]

롯데월드의 마스코트 로티와 로리도 어느덧 서른 살이 됐다. 여전히 어린이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사진 롯데월드]

 디즈니랜드에 ‘미키마우스’가 있다면 롯데월드엔 너구리 마스코트 로티와 로리가 있었다. 제 이름을 딴 애니메이션 ‘로티의 모험(90년)’이 극장에 걸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89년엔 표절 시비에 휘말려 법정에 올랐다. 저작권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전 국민이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의 추억 
롯데월드 대표 간식 추로스. 30년간 약 2067만개가 팔렸다. 현재 가격은 3000원. 89년엔 700원을 받았다. 백종현 기자

롯데월드 대표 간식 추로스. 30년간 약 2067만개가 팔렸다. 현재 가격은 3000원. 89년엔 700원을 받았다. 백종현 기자

 89년 개장 당시 입장료 어른 4500원, 자유이용권 1만3000원. 지하철 기본 운임이 250원이던 시절이다. 그때부터 롯데월드 먹거리는 짜장면(당시 1500원)과 추로스(당시 700원)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 6월까지 추로스 누적 판매 개수는 약 2067만 개에 달한다. 하루 1888개꼴로 팔린 셈이다. 
 
 민속박물관은 지구촌 테마파크 롯데월드에서 유일한 한국적 공간이다. 가장 역사가 깊은 공간이기도 하다. 첫 개장을 6개월 앞둔 89년 1월 14일 문을 열었고, 92년엔 정식 박물관 허가를 받았다.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도 방문했다. 전통 혼례 인기가 꾸준한데, 지난 10년간 부부 1373쌍이 탄생했다.
1999년 6월 24일 한국 팬과 신밧드의 모험을 즐기는 마이클 잭슨의 모습. 96년에 이은 두번째 방문이었다. [사진 롯데월드]

1999년 6월 24일 한국 팬과 신밧드의 모험을 즐기는 마이클 잭슨의 모습. 96년에 이은 두번째 방문이었다. [사진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한편에 수필가 금아(琴兒) 피천득(1910~2007)을 추억하는 기념관이 있다. 왜 금아 기념관이 롯데월드에 있을까. 가족 사랑이 극진했던 작가를 기리기 위해서다. 생전의 서재를 고스란히 옮겨왔는데, 책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으로 유학 간 딸을 그리며 50평생을 같이했던 인형 ‘난영’도 있다. 
 
 퍼레이드 문화를 도입한 것도 롯데월드가 처음이다. 로티와 로리를 선두로 댄서 수십 명과 고적대가 밤낮으로 행진을 벌였다. 퍼레이드가 배출한 스타도 많다. 퍼레이드에서 발레리나 단원으로 활약했던 배우 심은하가 대표적이다. 국내 최초 뮤지컬 전용 극장도 열었다. 남경주와 최정원이 이곳 1기 출신이다. 
김연아 선수가 2007년 11월15일 ISU 피겨 그랑그리 우승 후 롯데월드 아이스링크를 찾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전용 링크가 없어 롯데월드 아이스링크를 빌려 훈련할 때가 많았다. [중앙포토]

김연아 선수가 2007년 11월15일 ISU 피겨 그랑그리 우승 후 롯데월드 아이스링크를 찾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전용 링크가 없어 롯데월드 아이스링크를 빌려 훈련할 때가 많았다. [중앙포토]

 실내 스케이트장이 드물던 시절. 꼬마들은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걸음마를 뗐다. 피겨 여왕 김연아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 때까지 새벽 시간에 롯데월드 링크에서 훈련하며 올림픽 메달 꿈을 키웠다. 
 
 당대를 뒤흔든 빅 이벤트도 롯데월드에서 열렸다. 유덕화 팬 사인회(90년), 조용필 콘서트(91년), 국제 프로레슬링 대회(92년)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마이클 잭슨은 96년과 99년 두 차례나 방문했고, 그때마다 한국의 어린이 팬과 ‘신밧드의 모험’을 탔다. 
 
 시대를 바꾼 자이로 드롭
 89년 개장 당시 롯데월드 어트랙션은 14개에 불과했다. 현재는 53개나 된다. ‘후렌치 레볼루션’과 ‘스페인 해적선’이 30년 세월을 지키는 터줏대감이다. 30년 전 엄마 아빠가 섰던 줄을, 오늘날 아들딸이 이어서 선다. ‘알라딘 보트’와 ‘로마전차’는 지금은 사라져 이름만 남아있다. 
 
 회전목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롯데월드의 대표 인증샷 명소였다. 수많은 드라마와 뮤직비디오가 회전목마에서 촬영했다. H.O.T가 귀여운 망치춤을 추던 ‘캔디(96년)’ 뮤직비디오의 무대도 회전목마 앞이었다. TV 드라마 ‘천국의 계단(2003년)’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있던 아역(이완)이 갑자기 성인(신현준)으로 돌변하는 일명 ‘공포의 회전목마’ 신은 워낙 유명하다. 30년간 누적 5518만 명이 회전목마를 탔다.
1998년 4월 11일 자이로 드롭이 운행을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효자 상품이다. [중앙포토]

1998년 4월 11일 자이로 드롭이 운행을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효자 상품이다. [중앙포토]

 롯데월드 30년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놀이기구는 ‘자이로 드롭’이다. 100억 원을 들여 98년 4월 도입했다. 자이로 드롭이 대단한 건, 통념과 상식을 깬 놀이기구이기 때문이다. 가령 청룡열차·범퍼카 같은 전통의 놀이기구는 얼마나 넓은 데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타는지를 놓고 경쟁한다. 자이로 드롭은 아니다. 넓은 공간도 필요 없고, 탑승시간도 짧다. 70m 상공까지 수직 상승했다 3초 만에 추락한다. 그러면 끝이다. 다들 옆으로만 몸집을 키우던 때 저 혼자 하늘로 솟구쳤으며, 다들 탑승시간을 늘릴 때 저 혼자 짜릿한 한방으로 승부를 냈다. 공간 제약이 많은 롯데월드에 최적화한 놀이기구였던 셈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IMF 외환위기로 경기가 얼어붙었던 시절, 롯데월드만 테마파크 중 유일하게 20% 이상 매출이 올랐다. 자이로 드롭의 신화 이후 다른 테마파크에도 드롭형 놀이기구가 줄줄이 들어섰다. 지난해 말까지 1462만여 명이 자이로 드롭에서 추락을 경험했다. 
 
 서른 살 롯데월드의 꿈 
2017년 4월 3일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했다. 117~123층에 전망대 서울스카이가 조성돼 있다. 김경록 기자

2017년 4월 3일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했다. 117~123층에 전망대 서울스카이가 조성돼 있다. 김경록 기자

 2014년 5월 롯데월드는 오랜 터전이었던 석촌호수를 벗어났다. 경남 김해에 워터파크를 개장한 것이다. 워터파크도 롯데월드가 만들면 달랐다. 300m의 곡선을 질주하는 초대형 워터코스터는 기본이고, 여름마다 롯데월드 삼바팀을 파견해 퍼레이드를 벌였다. 같은해 10월엔 롯데월드 옆에 아쿠아리움을 열었고, 2017년 4월엔 554.5m 높이의 서울스카이가 개장했다. 모두 롯데월드 형제들이다. 
30주년을 기념해 6월 29일 런칭한 프로젝션 쇼 '미라클 나이트'. [사진 롯데월드]

30주년을 기념해 6월 29일 런칭한 프로젝션 쇼 '미라클 나이트'. [사진 롯데월드]

 디지털 시대, 놀이기구도 시대에 맞춰 진화했다. 2016년 VR기기를 쓰고 놀이기구에 탑승하는 ‘후렌치 레볼루션2 VR’과 ‘자이로 드롭2 VR’을 오픈했다. 원래 시설보다 영상 경사도가 훨씬 심해 실제보다 더 무섭다는 후기가 많다. 올해는 36억 원을 투입해 프로젝션 맵핑 쇼 ‘미라클 나이트’를 내놨다. ‘베수비오스 화산’에서부터 ‘파라오의 분노’까지 길이 약 180m 최대 높이 18m에 달하는 벽면에 화려한 영상이 수놓는다. 13일에는 호러 체험을 위한 ‘미궁X저택’이 개장한다. 서른 살 롯데월드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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