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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문화난장] 시민 3104명이 살려낸 안중근의 평화정신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구성이 유별난 책이다. 전체 205쪽, 길지 않은 분량인데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도운 사람들’ 명단이 12쪽에 이른다. 강혜정·강경미에서 시작해 황혜원·황효진까지 3104명의 이름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이른바 보통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다. 단행본·학술지 등 참고문헌만 47쪽이다. 해제·일러두기를 제외한 본문은 51쪽에 그쳤다. 많은 이들의 정성을 모아 책을 꼼꼼히 만들었다는 뜻일 게다.
 

매달 2000원씩 모으며
『동양평화론』 정본 완성
위기에 빠진 한·일 관계
그 바탕을 들여다보다

이 책에는 ‘비판정본’이란 낯선 용어가 달려 있다. 여러 이본(異本)을 검토·교정해 표준이 될 만한 정본(定本)이 나왔다고 알린다. 해당 책은 『동양평화론』이다. 조선의 독립과 평화를 희구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미완성 유작이다. 사형 직전 중국 뤼순(旅順) 감옥 독방에서 한자로 써 내려간 친필 원고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대신 일본인이 옮겨 적은 필사본과 이를 묶은 영인본, 그리고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다. 『동양평화론』 연구서·논문이 수없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정본 비슷한 게 없었다는 사실이 되레 놀라울 뿐이다.
 
새로 나온 『동양평화론』은 그간의 각종 오·탈자를 찾아내고, 잘못된 번역을 바로잡았다. 서양고전문헌학 방법론을 토대로 기존 판본 전문을 한 자 한 자 따지며 읽었다. 신학자·역사학자·한문고전학자 등 전문가 다섯이 지난 1년 6개월 동안 매달렸다. 이렇게 잡아낸 탈자·입력·판독·필사 오류만 121개다. 우리가 그만큼 안 의사의 본뜻을 몰라본 셈이다. 늦게나마 제 얼굴을 찾아줬다는 점에서 반갑다.
 
안중근 의사가 최후를 보낸 중국 뤼순 감옥의 독방 풍경. 10㎡ 크기의 방안에 안 의사 수감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책상 위의 벼루와 먹은 안 의사가 『동양평화론』을 집필할 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포토]

안중근 의사가 최후를 보낸 중국 뤼순 감옥의 독방 풍경. 10㎡ 크기의 방안에 안 의사 수감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책상 위의 벼루와 먹은 안 의사가 『동양평화론』을 집필할 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포토]

또 하나 특기사항이 있다. 총 1억원이 들어간 조사·연구·제작비 전액을 시민들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2014년부터 시민 한 명당 매달 2000원씩 낸 게 쌓이고 쌓여 번듯한 국가기관·학술단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책 발간을 주도한 ‘독도도서관 친구들’ 여희숙 대표의 말을 들어봤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여 대표는 2006년부터 시민 도서관운동을 펼쳐왔다.
 
독도와 안중근, 선뜻 연결이 안 된다.
“독도에 책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다. 분쟁의 섬 독도가 아닌 평화의 상징 독도를 지향한다. 그러던 중 안 의사의 평화사상을 만났다. 안성맞춤이었다. 여태껏 『동양평화론』 정본이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 각계 전문가들의 면밀한 검토를 요청했다.”
 
시민과 학계의 만남이다. 다른 계획은.
“이제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안중근 자서전, 2·8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 정본 작업도 계속 진행할 것이다. 후원자도 조금씩 늘고 있다. 이번 정본에 참여한 역사학자 김은숙씨가 ‘안 의사가 지금 하늘에서 대한민국을 보면 아마도 우리 팀을 가장 예뻐하실 것 같다’고 했다. 뭉클했다. 앞으로 정본 디지털 텍스트를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1909년 결성한 단지동맹(斷指同盟) 직후의 안중근 의사 모습.

1909년 결성한 단지동맹(斷指同盟) 직후의 안중근 의사 모습.

『동양평화론』은 안 의사 사상의 결정판이다. 세계사적 시각에서 한·중·일이 함께하는 그랜드 비전을 제시했다. 총과 칼을 앞세운, 강자만의 이익을 교묘히 숨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극동평화론’을 무너뜨렸다. 유효기간이 지난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종말도 선언했다. 한·중·일 3국 공동은행 설립, 공용화폐 발행, 공동군대 창설 등도 주창했다. 지금 봐도 파격적 제안이다. 약육강식의 국제정치를 떠난 한 평화주의자의 이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오늘날 유럽연합(EU)의 기반이 된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망의 70년 전 ‘하나의 유럽’ 선언에 비춰볼 때 한 도덕주의자의 한가한 소망이 아닌 게 분명하다.
 
안 의사가 떠난 지도 한 세기가 더 지났다. 동북아는 여전히 패권주의 그늘에 갇혀 있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 명분으로 ‘국제평화와 안전유지’를 들었다. 109년 전 조선을 병탄한 이토 히로부미도 겉으론 극동평화를 내걸었다. 어쩐지 일란성 쌍둥이를 보는 듯하다. 음험한 기운이 겹친다. 지금 『동양평화론』이 새삼 도드라지는 이유다.
 
요즘 역사의 반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잦다. 하지만 100여 년 전과 달라진 게 분명 하나 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시민의 힘이다. 모두(冒頭)의 3104명은 그 일부일 뿐이다. “국권을 되찾거든 나의 뼈를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달라”는 안 의사의 유언을 언제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존·공영의 ‘참평화’를 설파한 안 의사의 정신을 반장하는 데는 1년 365일이 따로 없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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