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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강제징용 소송, 95세 피해자 "나 때문에 큰일이···"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관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한국에 요청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관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한국에 요청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일본이 발표한 수출규제의 영향이 거세다.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발표 이후 지난해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5)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큰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며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변호사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 할아버지는 지난해 대법원 선고 직후 “오늘 나 혼자 나와서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다”는 소회를 말했다. 이 할아버지와 함께 신일철주금(일본 제철)을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냈던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할아버지는 대법원 판결 전 세상을 떠났다. 여 할아버지와 신 할아버지는 한국 법원에 소송을 내기 전인 1997년 일본 법원에도 소송을 냈다. 일본에서 시작한 첫 소송부터 지난해 우리 법원 확정판결까지 20여년이 흘렀지만 실제 배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니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하게 된 셈이다.
 
 
일본법원 패소 판결…다르지 않았던 한국 1·2심
이들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기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8번의 재판이 있었다. 1997년 일본 오사카지방법원은 여운택, 신천수 할아버지가 일본제철과 일본국을 상대로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금과 밀린 임금을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서 할아버지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법원인 오사카고등재판소 역시 2002년 기각했다. 최종 법원인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3년 상고기각 및 상고불수리 결정을 했다.
 
일본 법원은 현재의 일본 제철과 전쟁 전의 일본 제철은 서로 다른 회사기 때문에 원고들이 지금의 일본 제철에 강제징용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일본은 1946년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르면 1946년 8월 11일 오전 0시(지정시)를 기준으로 특정 회사의 회계는 신계정과 구계정으로 나뉜다. 종전 후 앞으로 회사 발전에 필요한 부분은 신계정에, 종전 전 발생한 채권은 구계정으로 분리해 관리한다. 할아버지들이 주장한 손해배상 위자료 청구권은 구계정에 속하니 이를 지금의 일본 제철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그 이후 일본의 후속 조치인 재산권조치법도 근거가 됐다. 청구권 협정에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을 맺은 뒤 국내 후속 조치로 재산권조치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이 가진 일본과 국민에 대한 채권 등을 1965년 6월 22일 소멸한 것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패소한 할아버지들은 한국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일본 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2심 선고에만 몇 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2009년 서울고법이 내놓은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이미 일본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여 할아버지와 신 할아버지에게는 일본 판결이 법리상 문제가 없다며 일본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이춘식 할아버지 등에 대해서 법원은 “구 일본 제철의 강제노동은 불법행위여서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나마 위로할 의무가 있다”고는 판단했다. 하지만 “구 일본제철과 신 일본제철은 다른 회사고 할아버지들이 강제노동을 당한 날로부터 10년 이내 소송을 내지 않아 위자료를 청구할 권리가 소멸했다”고 봤다.
 
2012년 첫 승리…확정판결까지 또 6년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손을 흔들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손을 흔들고 있다. 김상선 기자

2012년 5월 대법원은 1ㆍ2심과 완전히 다른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일본 판결은 우리 헌법 규정과 정면으로 충돌해 이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고 ▶신일본제철은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ㆍ임원ㆍ종업원을 그대로 계승해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고 ▶한일청구권 협정은 국가가 아닌 개인의 청구권 소멸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원고들이 소를 제기한 2005년까지는 한일수교 단절ㆍ청구권 협정 문서 비공개 등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어 시효가 끝났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일본제철ㆍ미쓰비시ㆍ후지코시 등에 청구권 소송을 내고 있던 시민단체들은 대법 판결 이후 추가 소송도 냈다. 2013년 사건을 받은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따르며 ”일본제철은 피해자들을 강제로 동원해 가혹행위를 했고 불법성의 정도나 고의성, 50여년간 책임을 부정한 태도를 볼 때 위자료 액수는 적어도 1억원 이상이다“며 원고 1명당 1억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파기환송심 이후 조만간 확정될 줄 알았던 소송은 몇 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2012년 같은 날 대법원 판결을 받은 미쓰비시 소송은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3년 확정판결을 받았는데 일본제철 소송은 결론이 나지 않았다. 2018년 10월 30일에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서울고법 판결을 확정했다. 첫 승소 이후 6년 만이었다. 최근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법관 해외 파견 자리 등을 확보하려고 당시 박근혜 정권이 부담스러워했던 강제징용 사건 확정판결을 미뤄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재판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강제징용소송에 대해 ”개망신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전 청와대 수석의 증언도 나왔다.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고령의 피해자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정치적 해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 엇갈리는 진단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대법원 확정판결이었지만 일본은 ”국제법에 어긋나는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올 1월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일청구권협정 분쟁을 해결하자며 ‘외교적 협의’를 요청했고 5월에는 중재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6월 우리 정부가 한일기업이 출연한 재원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고 일본에 제안했지만 일본은 하루 만에 거절했다. 양국의 갈등은 이달 1일 일본이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발표하며 경제문제로 번졌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리해 법정 싸움을 이끌어온 법률가들은 이제 법적 해결이 아닌 정치적 해결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 최고재판소는 중국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개별 청구권을 부정하지 않았다“며 ”일본과 우리 법원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없는데 일본 정치인들이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장인 장완익 변호사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것보다 외교적ㆍ정치적인 해결이 바람직하다”며 “이 건이 제소의 요건이 될지, 양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 충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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