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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손편지의 추억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쓰걱쓰걱 소리가 날 때도 있다. 펜 끝이 종이를 긁고 지나간 자국 따라 글이 새겨진다. 또박또박 쓰며 간절함을 실으면 마음의 깊이가 받는 쪽에 전해진다. 써 본 사람만이 손편지의 맛을 안다. 엄지로 찍는 단톡방 글에 익숙해진 세상이라 이제 손편지는 추억이 됐다.
 
그 추억 속의 손편지에 매달린 적이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마법을 일으키려 했던 건, 15년 전 창원지검에 발령받고서다. 검사장 근무가 처음이라 꿈에 부풀었다. 종전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직원들이 신명 나게 일하도록 북돋우는 치어리더 같은 검사장이 되고 싶었다. 직원들과 그야말로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해, 일단 편지쓰기에 착수했다. 생일 하루 전날 축하편지를 도서상품권과 함께 보내는 거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수사관, 여직원, 방호원까지 대상자가 230명을 넘었고 닷새쯤의 연휴가 닥쳐 대여섯 통을 몰아 써야 하는 날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초안을 미리 잡더라도 편지지에 만년필로 정서(正書)하는 동안 한 글자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다. 인사기록카드와 자녀 입시합격, 특이 취미 등이 적힌 메모를 보고 초안을 잡았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붙지만 600자 넘는 분량은 개인 신상이나 취미생활 공감 등으로 채우며 감동을 만들어 내야 했다. 단골 메뉴는 역시 고향 얘기였다. 산청을 거쳐 지리산에 올랐다가 산장에서 본 밤하늘의 별,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내려다본 새벽 바다 풍경도 썼다. 자녀들 입시에서 거둔 좋은 소식도 빠질 리 없다.
 
법의 길 7/10

법의 길 7/10

손편지 쓰기로 마음을 열었지만, 상대방이 얼마나 받아줄지 반신반의했다. 다름 아닌 삭막한 업무 분위기 때문이었다. 포승줄에 묶인 사람이 왕래하고, 행정관청 민원 제기로 풀리지 않는 고충을 해결해 달라는 고소인의 아우성을 달래야 한다. 죄를 짓고도 뻔한 거짓말로 우기는 걸 제압해야 한다. 일상이 그렇다 보니 자기 보호 본능 때문인지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직원들을 바꿔보고 싶었다. 민원인이나 고소인을 대할 때, 가까운 친척의 일을 해결해 주는 마음가짐이 되라는 거였다. 업무 자세가 굳은 6, 7급 직원이 문제였다. 사건 관계인 접촉이 많은 그들의 거친 말 한마디는 신뢰 실추에 치명적이니까.
 
손편지의 마법을 처음으로 보여준 건 청사 방호원 김씨였다. 출퇴근 때 짧은 눈 맞춤으로는 큰 체구에 중저음 목소리쯤 기억했을 우리의 인연은, 편지 덕분에 친구처럼 깊어졌다. 해병전우회 회원으로서 주말 봉사활동에 열성적이고 두 해 전 심장 혈관에 스탠트 시술을 한 사실 등이 담긴 편지가 전달된 다음 날 아침, 김씨의 표정 변화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직원들의 표정도 조금씩 바뀌었다. 점심시간 구내식당까지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마주치는 직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처음엔 거의 전부가 눈길을 피했지만 반년쯤 지나서는 대다수가 눈길을 마주치려 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일 년 동안의 근무를 마치고 다음 임지 부산으로 떠났고, 그 후 변호사가 되어 창원지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직원들이 나를 어떤 표정으로 맞을까 궁금했다. 청사 앞 차에서 내리자마자 방호원 김씨와 마주쳤다. 그의 표정에 감전되어 나도 모르게 어깨를 얼싸안았다. 검사장실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 올라가며 몇몇 직원과 눈 맞춤을 즐겼다. 손편지가 만들어낸 그 표정이 몇 년의 시간 간격을 뛰어넘어 살아 있었다.
 
문영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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