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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자격 매인 이주여성, 집 나갔던 절반이 폭력 남편 곁으로

지난해 12월 경남 양산시에서 필리핀 출신 이주 여성 A씨(당시 38세)가 21세 연상의 남편 손에 살해된 채 발견됐다.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2011년 부부의 연을 맺은 지 7년 만이었다. 남편은 환청과 환각에 따른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수출업체 공장에 다니며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졌다. 7년이나 한국에 있었지만, 공장과 집만 오갔을 뿐 주변과 교류가 전혀 없었다. 남편의 통제가 심했다고 한다. 친구나 가족과 연락도 끊긴지 오래였다. 낯선 땅에서 고독하게 살아온 그는 결국 고통 속에 눈을 감았다.
 

폭력 피해 쉼터 입소 작년 877명
한국 귀화하려면 남편 협조 필수
이혼 못하고 계속 폭행 시달려
5년간 사망 확인된 것만 9명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최근 베트남 이주 여성이 남편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A씨처럼 결혼 이주 여성의 비극은 죽음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여성가족부가 2013~2017년 5년간 가정폭력 등의 사유로 이주 여성 사망 사건을 조사했더니 9건에 달했다. 2017년 경남 창원에선 당시 40대 초반의 중국 출신 이주 여성이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의 상습 폭행에 시달리다 결국 숨졌다. 10대 자녀 둘은 한겨울에 찬물 욕조에서 엄마가 학대당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 의원은 “실제 여가부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망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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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정폭력에 더 취약하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결혼 이주 여성 920명을 조사했더니 심한 욕설과 성행위 강요 등의 가정폭력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이 10명 중 4명(42.1%)이었다. 이런 여성이 상담센터나 쉼터에 도움을 청한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에는 하루 평균 7명(1~5월)이 찾는다. 전화 상담을 포함하면 월평균 1000건 이상이다. 최현진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팀장은 “더 심한 사례가 많아서 이번 베트남 여성 사건이 전혀 놀랍지 않다”며 “다리가 기형이 될 정도로 남편에게 맞은 피해자도 있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남편이 처벌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77명(동반자녀 포함)이 여가부의 쉼터(32곳)에 입소했다. 30~39세가 39.7%이고, 베트남 출신이 46%로 가장 많다. 쉼터에선 최대 2년을 머물 수 있는데 체류 문제 등으로 결국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여성이 많다. 지난해 퇴소자 514명 중 269명(52%)이 결혼 관계를 지속하는 길을 택했다.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면 외국인등록증과 결혼 비자를 받게 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주권이나 귀화자격 취득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과정에서 남편의 협조가 필수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는 “이주 여성들이 안정적으로 국내에 체류하려면 귀화를 해야하는데, 이때 배우자들의 조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혼할 경우 한국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남편의 귀책사유가 명백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가 없다면 체류 연장이 어려워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이 양육권을 뺏길 것을 우려해 폭력 남편을 묵인하는 여성도 많다. 신영숙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 회장은 “현장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체류 자격의 불안정성”이라며 “미국 등에서 폭력 남편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등 일정한 체류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결혼 이민자를 옭아매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수연·윤상언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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