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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세 설치작가 오계숙 “바늘과 실로 삶의 흔적 잇는다”

베트남전 참전 간호병의 군복으로 만든 오계숙의 ‘푸른 해먹’(2010). [사진 갤러리 아트링크]

베트남전 참전 간호병의 군복으로 만든 오계숙의 ‘푸른 해먹’(2010). [사진 갤러리 아트링크]

서울 삼청동 정독도서관 인근의 아담한 갤러리.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뜻밖의 설치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누군가 입고 버린 낡은 군복을 재료로 조각조각 꿰매어 이어 만든, 가녀린 해먹이다. 그 낡은 천들 아래로 늘어뜨려진 수많은 실이 흔들리고 있다. 작품 제목은 ‘푸른 해먹(Green Hammock)’. 여성들의 삶과 경험을 자신만의 섬유 설치작업으로 표현해온 오계숙(78)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미국 캔사스대 스펜서미술관의 소장품이다.
 

중고 옷·손수건·행주 등으로 작업
갤러리 아트링크서 18일까지 전시

서울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열리는 오 작가의 개인전에 ‘푸른 해먹’이 걸려 있다. ‘삶이 지나가는 자리’라는 제목 아래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바늘과 실로 작업하는 작가가 이 세상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헌사의 메시지로 채워져 있다.
 
‘푸른 해먹’은 베트남 전쟁터에서 쓰던 미국 여군 간호병의 제복으로 만든 작품으로, 여러 전시작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 간호병의 군복이지만 이것을 보며 저는 아홉 살 때 제가 목격한 6·25가 떠올랐어요. 전쟁이 남긴 상처도 어루만져주고 싶었고, 그 가운데서 상처를 입은 병사들을 보살핀 여성들의 흔적을 작품으로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팔순의 작가는 소녀처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전쟁터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의 숨겨진 사연을 ‘군복에서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흘러나오는 것들’, 즉 늘어뜨린 실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경은 갤러리 아트링크 대표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작업하면서도 ‘동양’ ‘여성’이라는 화두에 천착해온 오계숙 작가의 작품엔 ‘여성의 연대’라는 강력한 주제가 녹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엔 ‘푸른 해먹’ 외에도 ‘그녀의 손’ ‘과일 자루’ ‘태반’ ‘여행’ 등의 설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재료는 옛 여성들이 입었던 옷이나, 국적을 초월해 여성들의 손 자수 흔적이 남아 있는 천과 실이다. 작가는 이들을 조각조각 다시 잇고 꿰매는 방식으로, 생명을 품고 꽃피워낸 이 세상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1963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리 주립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그림을 그렸던 그가 붓을 내려놓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83~84년부터다.
 
“유화 작품으로 큰 상을 받았지만, 내 그림에 ‘한국 여성’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담겨 있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내 경험과 이야기,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녹아 들어간 작품을 해야 한다고 결심하면서 더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그는 유화 관련 화구를 모두 불태웠다. 긴 방황의 시간 끝에 할머니한테 배웠던 바느질이 떠올랐다. 그의 ‘바느질 드로잉’은 그렇게 시작됐다. 중고시장에서 사 온 ‘이름 없는’ 여성들의 손수건, 행주, 뜨개질 레이스 등을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한지에 자신이 직접 자수를 놓고, 이것을 이름 없는 여성들이 남긴 작품과 함께 이었다.
 
오 작가는 “할머니의 유산을 현대 예술에 담고 싶었다”며 “세계 여성들의 노동 흔적이 남아 있는 천 조각으로 작업할 때 나는 시공을 초월해 이 세상의 여성들과 협업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8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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