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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열두발자국] 도시 속 장소의 의미

정재승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그 동안 내지 못했던 짬을 내 지방의 동네서점들을 돌며 강연투어를 했다. 부산의 인디고 서원을 시작으로 통영의 봄날의 책방, 광주의 동네 책방 숨, 진주의 진주문고, 군산의 한길문고 등을 돌았다. 한 시간 남짓 무료강연도 하고, 독자들에게 사인도 해드리고, 같이 사진도 찍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책방에선 강연료 대신 더 큰 정성을 담아 지역 특산물을 선물해주기도 하고, 맛있는 지역음식도 대접해 주었다. 책을 출간해 얻는 즐거움 중 최고는 역시나 이렇게 독자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독립서점은 ‘도시의 미래’ 보여줘
미래 도시에서 장소의 의미는
체험과 커뮤니티 제공의 공간

지난 20년 사이 우리나라 출판시장은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책 판매 부수가 현저히 줄어들기도 했지만, 그중 대부분이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되다 보니 동네 서점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학습지를 파는 문방구들만이 근근이 지역의 책 공급을 담당하며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지역에서는 수십 년 전통을 가진 지역거점 서점들과 개성이 담긴 독립 서점들이 약진하고 있다. 지역거점 서점은 대개 건물 하나를 통째로 서점으로 운영한다. 이들에겐 오랜 신뢰를 쌓아 단골이 된 지역주민들의 네트워크가 힘이다. 저자 강연회도 하고, 다양한 주제의 아카데미를 운영하기도 하며, 주민들끼리의 독서모임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독립 서점은 개성이 핵심이다. 생태나 환경, 문학과 예술, 지역문화 등 책방주인의 철학이 담긴 주제들로 책들이 서점을 촘촘히 메운다. 각 코너에는 책을 실제로 모두 읽고 엄선된 책들이 진열돼 있어서, 귀한 책들을 고를 수 있는 확률이 높으며 서점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책 발견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서점은 또 어찌나 예쁘고 개성이 넘치는지.  
 
매출 측면에서 보자면, 지역거점 서점과 독립 서점은 여전히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이들은 ‘도시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미리 준비하고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면서,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현상들이 모두 온라인의 데이터화가 될 것이다. 현실세계가 ‘디지털 트윈’이라 불릴 만큼 통째로 고스란히 온라인의 비트세계로 복제된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일 처리를 온라인에서 할 수 있다. 더 빠르고 비용도 적게 말이다.
 
이제 책만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것이 아니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장을 보는 문화는 점점 줄어들고 로켓배송에 새벽배송까지 가능한 온라인 마켓에서 생활용품이나 먹거리를 구입한다. 옷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한다. 패션취향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옷을 매주 큐레이션 해 배달해주는 시대에, 아직도 우리나라 패션업체는 IT기술을 활용할 여력이 없다.
 
은행 업무는 ‘페이’나 온라인 뱅킹으로 대신하다 보니, 은행 지점에 갈 일이 없다. 주문만 하면 30분 이내에 음식이 배달되어 오는 세상, 필요한 모든 것이 하루면 집에 도착하는 세상, 직장도 재택근무를 권하는 세상에서, 도시는 이제 ‘필요해서 가야하는 곳들’ ‘기능을 수행하는 곳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도시에서 왜 집을 나서고 어디론가 이동하게 될까? 우리에게 물리적 공간이란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디지털 트윈 아래에서, 현실세계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해 있다. 미래 도시에서 장소란 무엇인가?
 
이제 도시는 ‘필요를 제공하는 공간’은 줄어들고 ‘체험과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장소’들이 들어차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경험하기 위해서 그곳을 찾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그곳에 방문하게 된다는 말이다.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사지만, 저자를 만나고 독자들과 독서모임을 하기 위해 동네서점을 찾는다. 개성적으로 큐레이션 된 책장을 살펴보고 차를 마시고 그곳의 향기를 음미하기 위해 독립서점을 방문한다. 서점에서 책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북스테이를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은행의 지점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대형 할인마트는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인간의 사회성을 충족해줄 것인가? 옷가게는 고객들에게 온라인 쇼핑몰이 제공해주지 못하는 무엇을 선사할 것인가?
 
이제 기업과 지자체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발달한 과학기술은 미래 도시를 테크노피아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도시로 바꾼다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시민들에게 기능과 필요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은 이제 테크놀로지가 맡고, 도시공간은 점점 인간적인 관계와 직접적인 체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이 교훈을 빨리 깨닫는 기업과 지자체가 도시의 미래를 앞당길 것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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