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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노인과 병원의 바다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 백발 신사의 시선은 허공을 맴돌았다. 의사는 팔순 넘은 환자의 CT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설명했다. 이해하지 못한듯한 환자의 표정은 안중에 없었다. 짧고 강렬한 불통의 현장. 무척이나 바빠 보이는 의사는-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다음 환자가 걱정돼서인지-마우스를 빠르게 돌려댔다. “여기 보시면 뭐가 보이죠. 검사가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노인은 ‘여기’부터 맥락을 놓치고 있었다. 평생 마우스를 안 쓰고 은퇴한 그는 화면 속 작은 화살표의 의미를 몰랐고, 그 섬세한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진료실을 나선 노인은 “아픈 게 죄”라며 한숨지었다.
 
#.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90% 이상이 민간 병원이어서 공공성이 약하고 환자 유치 경쟁이 심하다. 건강검진이 시장에 맡겨져 과다진단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글이 올라왔다. 국가 차원에서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 1차 의료를 강화하고 과잉진단, 대형병원 쏠림, 환자의 소외감 등을 개선하자는 일부 의사들의 주장이다. “‘의료’라는 넓고 위험한 정보과학기술의 바다 앞에서 타야 할 배와 목적지를 정해야 할 때, 개인이 위험부담을 안고 결정을 한다”(이재호 가톨릭의대 교수)는 지적엔 설득력이 있다. 물론 허점이 있겠지만, 병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게 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불굴의 산티아고도 한국 대형병원에선 번호표를 손에 쥔 채 패배(defeated)했을지 모른다.
 
명의들이 모인다는 ‘큰 병원’은 어쩌다 불평불만의 공간이 됐을까. 몰려드는 환자를 감당할 길은 냉대뿐이었을까. 의술과 인술은 공존할 수 없는가. 최고 인재가 고교부터 ‘의대 입시 사관학교’로 몰린다는 시대에 진지하게 던져보는 질문이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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