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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3병에 황태포 안주가 2만원…'가맥' 즐거운 전주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37)
전주에서는 매년 8월 대규모 가맥축제를 개최한다. 올해는 8일부터 3일간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다. 정통성, 적합성, 역사성, 호응도 등의 평가를 통해 선정된 20여 곳이 참가한다. [사진 전주가맥축제추진위원회 제공]

전주에서는 매년 8월 대규모 가맥축제를 개최한다. 올해는 8일부터 3일간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다. 정통성, 적합성, 역사성, 호응도 등의 평가를 통해 선정된 20여 곳이 참가한다. [사진 전주가맥축제추진위원회 제공]

 
지난주에는 전주의 막걸리 문화가 바뀌고 있어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반대로 요즘 내가 점점 빠져드는 것은 ‘가맥’이다. 가맥 역시 예전 형태에서 많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 옛날 분위기의 가게도 꽤 남아있어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느껴볼 수 있다.
 
그런데 ‘가맥’을 말하면 많은 사람이 “과메기? 그건 포항 아닌가?” 한다. 그걸 보면 아직 전국에서 통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차츰 서울이나 다른 지방에도 등장하고 있어 웬만한 주당이라면 다 알 것 같다.
 
가맥은 ‘가게 맥주’의 준말인데 이제 ‘가게’와는 완전히 멀어졌다. 원래 출발은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구멍가게 평상이나 테이블이었다. 아직 간판은 상회, 슈퍼, 편의점으로 붙어있지만 내부에 가게 흔적이라곤 안주 삼을 수 있는 과자 정도다. 물론 그걸 시비하는 사람은 없다. 시설은 낡고 허름해도 저렴하고 마음 편한, 하루의 피로와 허기를 달래주는 공간이라 변함없이 사랑받는다.
 
가맥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아주 다양하다. 크게 소문난 가맥도 있고(위),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빈 공간에 테이블을 한두 개 놓고 손님이 찾을 때마다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제공하는 곳(아래)도 있다. 이런 곳은 이웃간의 사랑방 구실도 한다. [사진 박헌정]

가맥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아주 다양하다. 크게 소문난 가맥도 있고(위),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빈 공간에 테이블을 한두 개 놓고 손님이 찾을 때마다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제공하는 곳(아래)도 있다. 이런 곳은 이웃간의 사랑방 구실도 한다. [사진 박헌정]

 
타지 사람들은 전주에서 가맥을 접하면 십중팔구 ‘가게 맥주의 원조는 우리 동네 어디어디’라고 주장한다. 나 역시 퇴근 시간마다 아지트였던, 골뱅이무침이 맛있던 회사 근처 구멍가게가 기억난다. 어느 해 정치판에 나선 회장님이 직원들에게 쌀을 한 가마니씩 나눠주었는데 차 없는 직원들은 그 집에 옮겨놓고 몇 날 며칠을 맥주로 바꿔 마셨다. 가게 들어서며 안마당에 쌓인 쌀 포대를 가리키면 주인아저씨는 따져보지도 않고 맥주와 골뱅이를 가져다주었다.
 
가게 앞 테이블도 좋다. 노천에서 시원하게 한잔 들이켜는 추억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 같다. 무더운 퇴근길, 그늘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 지나다니는 행인들… 삶의 분주함과 고단함이 여유로움으로 바뀌던 공간이었다. 이처럼 퇴근길에 가게 안팎에서 맥주 한잔하지 않던 곳이 없었겠지만, 전주에서는 그것이 문화로 발전했다는 게 중요하다. 원조 격인 전주 가맥은 1980년대 초중반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요즘은 현지인이 찾는 가맥, 관광객이 찾는 가맥, 젊은 세대 취향에 맞춘 가맥 등 나름대로 분화한 것 같다. 급기야 시에서는 가맥축제까지 만들었는데 올해는 8월 8일부터 10일까지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다고 한다. 20개 가게가 참가해서 대표 안주를 준비한다는 것을 보니 정말 대학가 축제만큼 흥겹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어 꼭 가보려고 일정표에 적어두었다.
 
전주 가맥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정통성’과 독보적 권위를 인정받게 한 것은 역시 황태포, 계란말이 같은 안주의 힘 아닐까 싶다. 가게에서 팔던 물건들로 솜씨 좋은 안주인이 이리저리 안주를 만들어 내던 것이다. 그중 최고 작품과 중요 비법은 역시 연탄 화덕에 포곤포곤하게 구워낸 황태포, 가게마다 찍어 먹는 간장소스다.
 
가맥의 대표 안주는 연탄불에 잘 구운 황태포다. 가게마다 황태를 구울 수 있는 연탄 화덕을 갖추고 정성껏 굽는다. [사진 박헌정]

가맥의 대표 안주는 연탄불에 잘 구운 황태포다. 가게마다 황태를 구울 수 있는 연탄 화덕을 갖추고 정성껏 굽는다. [사진 박헌정]

 
전주 가맥의 권위가 안주 맛에서 나온다면, 그 경쟁력은 가격에 있다. 맥주는 자기가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고 나갈 때 알아서 계산하면 된다. 한 병에 2500원~3000원, 술집과 가게의 중간 정도다. 약간의 인건비가 포함된 안주는 황태포 1만원 남짓, 계란말이 7000~8000원이다. 퇴근길에 두 명이 시원한 맥주 서너 병에 황태포 하나 먹으면 2만원 정도로 요기하며 하루의 뒤풀이가 가능하다.
 
물론 가맥을 처음 찾는다면 인테리어나 분위기 같은 것에는 마음을 좀 여는 게 좋다. 맥줏집 특유의 퀴퀴한 냄새와 찐득거림, 되는대로 가져다 놓은 테이블과 의자 같은 집기들… 메뉴판도 없고, 워낙 박리다매라 약간의 불편과 불친절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원가 이상의 대접을 요구했다가 무안해지기도 하고, 그런 것을 네티즌들이 성토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가맥도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묵은 때를 벗겨내고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꾸민 곳, 가맥의 심플한 안주에 생맥줏집 스타일로 다양한 메뉴를 보탠 곳, 독일의 호프브로이처럼 대형매장을 꾸민 곳 등이다. 요즘은 ‘치맥’이 대세라 그런지 통닭을 전면에 내세운 곳도 많아졌다. 물론 이런 새로운 곳들은 전통적이고 서민적인 가맥보다 가격대가 높다.
 
실내 가맥은 세련되거나 안락한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시원한 맥주와 왁자지껄한 자유로움 속에서 정신적인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사진 박헌정]

실내 가맥은 세련되거나 안락한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시원한 맥주와 왁자지껄한 자유로움 속에서 정신적인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사진 박헌정]

 
어떤 곳은 ‘가게’의 역사 없이 ‘가맥’이라는 명칭만 가져다 쓰는 것 같다. 이러다간 맥줏집, 호프, 생맥줏집 같은 술집들이 전주에서는 전부 ‘가맥’으로 통일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떻든 내 취향에는 추억의 가맥이 훨씬 편하다.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전주의 술과 음식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끔 ‘전주 음식에 잔뜩 기대했는데 실망’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현지와 별 상관없는 것, 심지어 정반대의 것을 경험해놓고 일반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주에서도 ‘한옥마을 관광지’를 경험해보곤 전주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자가 접하는 것은 관광수입을 겨냥해서 몰려든 외지 자본일 수 있다. 서울사람이 지방에서 돈을 쓰고, 서울 장사꾼이 쫓아와서 그 돈을 벌어 다시 서울로 가져가는데 욕은 그 지방 사람이 먹는 건 억울한 일이다.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는다. 전주에서는 전주사람이 사랑하고 자랑하는 것을 경험해보면 어떨까. 음식문화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미각을 판단하는 혀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그 문화를 만들어낸 배경을 살펴보는 호기심도 필요할 것 같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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