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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北 비핵화뒤 개혁개방? 난 그리될 거라는데 회의적"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의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의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북한 비핵화 협상이 타결되면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고들 말한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그려 보인 ‘미래’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비핵화하면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입장이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비핵화 타결의) 뒤를 따라오는, 거의 필연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나는 그리될 것이라는데 회의적이다.”
 

한국 정치학계의 석학이자 진보 진영의 거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처럼 달리 생각한다. 그는 ‘비핵화 타결→북·미 관계 정상화→북한의 개혁개방’의 사고를 거부한다. 대신 “개혁개방의 문제는 자동적으로 이어지는(continuum) 선택이 아니라, 개혁개방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또 다른 선택의 결정이자 결과, 또 다른 체제 능력의 산물”이라고 본다. 최근 이런 요지의 글(‘한국의 베트남 경제 진출과 베트남의 도이머이 그리고 북한의 개혁 개방과 그 가능성’)을 발표하기도 했다.
 
6·30 북·미 정상회담 전인 지난달 26일 최 교수와 서울 광화문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북한이 존망의 위기로부터 안정을 시키는 목표를 이룬 다음에 경제개방을 해서 발전에 진력하는 단계가 뒤따라오지 않을까 이렇게 상상하는 건 합리적이지만 실제 정치는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한 중국의 개혁개방과 1986년 베트남 공산당이 채택한 도이머이(혁신) 정책을 들여다봤다고 했다. ▶각각 마오쩌둥(毛澤東)과 레주언이란 강력한 지도자의 사망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경직성이나 권위주의적, 전제정적 전체주의적 지배체제가 이완되면서 집단지도체제적 현상이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경제발전에 대한 요구가 밑에서부터 올라왔고 ▶전면적 경제개혁의 결과 더 많은 자유에의 요구로 공산당 지배체제가 보다 유연한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되거나 더 나아가 민주화 요구로까지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큰 경제의 변화는 권력의 성격이나 권력의 기반 변화와 병행하고 동반하게 된다”며 “변화가 좋다 나쁘다는 경제적 합리성 이전에 이걸 할 수 있는 정치권력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 정치권력의 기반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가 할 수 없다고 본 이유는.
“일단 가정을 해보자. 먼저 김정은 권력이 절대권력이어서 1인이 결정하면 다 된다는 식의 체제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가정도 가능한데 김정은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부와 아파라치키로 불리는 당 관료, 90년대 핵 개발 과정에서 새겨난 또 새로운 상층계급이랄까 특권계층인 핵 지식 섹터(핵 섹터) 등이 결합해 변화에 저항한다고 볼 수도 있다. 김정은을 컨트롤할 수 있는 비토세력이다. 두 번째 가정이 사실이라면 비핵화에 대한 진전과 정도가 대단히 작을 수 있다. 설사 일정 선에서 협상이 됐다고 해도 이런 ‘보수 세력’이 과연 체제를 완전히 개방하는 개혁개방을 선택하거나 지지할 수 있겠는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도 보수 세력은 개혁개방에 반대했다.”
김정은이 결정할 수 있는 체제라면.
“개혁개방을 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느냐와 덩샤오핑처럼 획기적 사고를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북한 권력은 알다시피 다른 공산체제와 달리 공산체제뿐만 아니라 김씨 수령 체제도 유지해야 한다. 더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절대 권력이 요구된다. 그동안 외부로부터 체제에 대한 위협을 내부 결속이랄까 통제(의 수단)로 활용했다. 그게 북한 체제의 가장 본질적 특성인데 김정은 자신이 외부에 경제를 개방해 경제발전을 선택할 수 있겠느냐. 이 체제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개혁개방을 하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굉장히 많아진다. 미국과 핵 협상이 타결됐다고 해서 김정은이 지금까지 하던 방식과 다르게 180도 전환해 개혁개방을 한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권력자가 바뀌든가, 분위기가 집단지도체제적 형태로 변하는 조건에서 이런 게 나오지, 같은 사람이 있다가 어느 날 굉장한 개혁개방을 하는 걸 역사적으로 보지 못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의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의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최 교수는 “북한의 개혁개방은 정치적 문제이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며 “경제적 문제였다면 핵을 만들기보다 이것(경제발전)을 우선해 선택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왜 그런가.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 존립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이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핵무장을 선택했다. 그렇게 먹고 살기 어려운 궁핍의 극한 속에서도 경제개발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이제 북한의 경제는 거의 절대빈곤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북한이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노선을 바꿔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듯, 한국의 정책입안자나 정치지도자들이 희망하듯 (한국이) 북한에 원조하고 철도·도로 등 SOC(사회간접자본)를 건설한다는 건 이쪽의 희망적 사고일 뿐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심리학 용어인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을 떠올리게 하는 진단이다.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이다.
 

비핵화가 타결돼도 말인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부분적으론 개방하겠으나 그 방식이 베트남이나 덩샤오핑이 했듯, 완전 개방해서 말이 공산주의이지, 시장경제나 세계화된 건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북한으로선 비핵화 협상에서 크게 양보할 이유가 없겠다.
“북한이 비핵화를 완전히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암묵적으로 핵보유 국가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원하는 것일 수 있다. 협상은 일방의 요구를 완전히 수용하는 게 아니라 크든 작든 양쪽이 타협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미국이 처음에 요구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완전하게 관철하긴 어렵지 않겠느냐. 미국의 조야에서 논의되는 방향도 대체로 그 방향으로,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에선 경제협력에 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식량·생필품·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을 해왔다. 할 수 있다고 보고 해야 하는 면도 있다고 본다. 그게 북한의 경제체제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가서 철도·도로 등 SOC를 건설하는 식으로, 한국의 영향력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북한이 개방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력·자본이 들어가면, 그 사람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좁아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북 접근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정책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전에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 좀 더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한다. 우리 희망적 사고를 투영해서 북한을 이해하고 북한의 정책을 예측하면서 대응하는 건 현실적으로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주의적 관점이랄까 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북한이 맞게 될 최대 난제는 최소한의 경제 발전과 인민들의 생존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 
 
인터뷰 직후 6·30 판문점 회담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세 번째 만남을 두고 문 대통령은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규정했다. 최 교수에게 다시 연락했더니 같은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얻으려 하는 건 핵보유국으로서의 암묵적인(tacitly) 내지는 사실상(de facto)의 인정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변 핵시설 파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핵 개발 및 핵시설 동결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미국, 북한 간 협상의 핵심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국가로 탈바꿈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북한을 암묵적인 비핵화 국가로 인정하느냐 아니냐가 본질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망할 수 없고, 그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북한이 직면하게 될 체제 위협은 핵보유 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통해 체제 유지를 하는 과정에서, 그것 때문에 맞게 되는 북한 체제의 안전과 존립이나 체제에 대한 국제 사회에서의 인정 여부 때문에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들이 맞게 되는 최대의 난제는 북한 체제 그 자체가 사회경제적으로 최소한의 경제 발전과 인민들의 생존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능력과 결부된 문제라고 본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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