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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말리는 금리 전쟁서 나랏돈 120억원 지켜낸 외화 ‘수문장’

정부가 잘한 일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잘했는데도 너무 어려워 외면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공]이 작심하고 뉴스의 이면을 파고들어 가 봤다. 조목조목 해체할 ‘어려운 뉴스’부터 읽어보자.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

‘기획재정부는 15억 달러(1조7700억원) 규모 미국 달러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역대 최저금리 수준으로 발행했다고 13일 밝혔다. 외평채는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조성하는 자금(외국환평형기금)을 마련하려고 발행하는 채권이다.


기재부가 이날(현지시간 12일) 미국 뉴욕에서 발행한 채권은 만기 5년짜리 녹색 및 지속가능 채권과 만기 10년짜리 일반 채권 두 종류다. 발행금리는 5년물의 경우 미국 국채금리에 30bp(1bp=0.01%포인트)를 더한 2.177%, 10년물은 55bp를 더한 2.677%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외평채 발행ㆍ가산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이라며 “해외투자자의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6월 13일 자 B1면>


더 낮은 금리로 파려는 정부와 더 높은 금리로 사려는 투자자가 겨룬 ‘채권 전쟁터’에서 정부가 크게 이겼다는 내용이다. 바꿔말해 나랏돈 120억원을 아낀 셈인데, 그 가치만큼 주목받지 못한 뉴스였다. 승전고를 울린 주역(유병희 기재부 국제금융과장)의 ‘채권 전쟁 난중일기’를 들어봤다.
유병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 [기재부]

유병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 [기재부]

#1. 전쟁을 준비하다

돌아가는 여건은 확실히 우리에게 불리하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0.4%. 잘 풀리는 듯했던 미ㆍ중 무역 전쟁 협상마저 결렬됐다. 두 나라를 주요 수출처로 둔 우리나라가 직격탄을 맞았다. 국채는 곧 해외 투자자가 우리를 보는 ‘성적표’다. 경제 상황이 나쁜 만큼 채권에 낮은 금리를 붙여 발행하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렸던 반전을 제안할 때가 지금이다.
 
“외평채 10억 달러 중 5억 달러를 녹색ㆍ지속가능 채권으로 발행하는 게 어떨까요.”
 
두 채권은 환경보호나 지속가능 성장에 쓰는 조건으로 발행한다. 선진국에선 활성화돼 있지만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건 처음이다. 용처가 제한적이지만 우리에겐 4000억 달러(약 468조원)가 넘는 든든한 외환보유고가 있다. 상황이 어려워도 468조를 바닥내긴 어려운 만큼 최근 수요가 늘어난 분야를 개척해 투자를 유치하자는 논리를 폈다. 선진국이라면 어차피 써야 할 분야이기도 하다. 다행히 위에서 ‘OK’ 사인이 떨어졌다. 출정에 앞서 든든한 무기가 생겼다.

#2. 전쟁하다

기재부 국제금융과 직원들이 포즈를 취했다. 직원들 너머로 주가ㆍ환율 등 각종 실시간 경제 수치로 가득한 모니터가 보인다. [기재부]

기재부 국제금융과 직원들이 포즈를 취했다. 직원들 너머로 주가ㆍ환율 등 각종 실시간 경제 수치로 가득한 모니터가 보인다. [기재부]

국제금융과 출장 일정은 늘 빡빡하다. 3박 5일 동안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을 돌아야 한다. 쉴 새 없이 투자자를 만나 이번에 발행할 채권에 대해 소개하고 마지막 날엔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긴장의 연속인 데다 끼니는 호텔 도시락으로 때우고, 밤을 새우기 일쑤다.
 
육체적인 고충도 있지만 좀 더 높은 금리로 채권을 사려는 투자자를 설득하는 게 더 어렵다. 칼만 안 들었다뿐이지, 조 단위 돈이 오가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영어로, 그것도 전문 용어를 써가며 금리 0.001%를 낮추기 위해 뛰어야 한다.
 
그런데 현지 분위기가 예상과 사뭇 달랐다. 예상보다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투자자가 드물었다. 미ㆍ중 무역분쟁에 대해서도 부작용보다 한국에 돌아갈 ‘반사이익’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투자자를 만날수록 출장을 떠나기 전 정했던 금리보다 낮게 ‘베팅’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채권 발행 규모를 10억 달러에서 15억 달러로 늘리고, 금리는 낮추기로 했다.

#3. 전쟁에서 이기다

뉴욕에서 마지막 밤이다. 오후 9시 30분, 채권 발행을 개시했다. 모니터 숫자가 깜빡이기 시작한다. 회의가 계속됐다. 채권 발행은 ‘눈치싸움’이기도 하다. 금리를 너무 많이 낮추면 투자자를 놓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조금 낮추면 결과적으로 채권을 더 좋은 조건에 팔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다행히 이번에 발행한 녹색ㆍ지속가능 채권에 관심 갖는 투자자들은 가격에 덜 민감하다. 장중에 금리를 한 번 더 낮춰 발행했다.
 
결과는 대승이었다. 예상했던 수요의 6배 규모 투자자가 몰렸다. 최근 3년간 발행한 외평채 평균 발행금리보다 금리를 0.03% 낮췄다. 돈으로 따지면 120억원의 외화 차입 비용을 아꼈다. 파급 효과는 더 크다. 외평채 금리는 한국 기업이 외화채권을 발행할 때 투자자들의 ‘벤치마크’ 대상이다. 연쇄적으로 채권 금리를 낮춰 이자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된다. 밀린 잠이 기분 좋게 쏟아졌다.

#4. 전쟁을 돌아보다

기재부 국제금융과 사무실에 걸린 세계 시계들. [기재부]

기재부 국제금융과 사무실에 걸린 세계 시계들. [기재부]

승전의 기쁨은 잠깐이다. 국제금융과는 국내 외환 대책의 ‘앵커(anchorㆍ닻)’다. 외환 시장은 밤새 지구 건너편에서 일어난 뉴스에도 크게 출렁인다. 새벽마다 뉴욕타임스(NYT)ㆍ월스트리트저널(WSJ)ㆍ블룸버그ㆍ니혼게이자이 같은 외신을 체크해 관계 부처로 전파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 최근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고, 새롭다.
 
나는 국제무대에서 한국 경제를 세일즈하는 최전선에 있다. 한국의 대외 신뢰도를 관리한다는 사명감이 내가 일하는 원동력이다. 지난 6월처럼 뛴다면 다시는 한국에 ‘외환위기’란 없을 것이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세종시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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