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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취임뒤 "여사라 불러달라"…영부인 거부한 '활발한 정숙씨'

지난달 29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 만찬에서 “멜라니아는 당신이 환상적인(Fantastic) 여성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루 뒤인 30일 한·미 소인수 회담과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김정숙 여사는 훌륭한(Great) 여성이다”“특별한(Special) 분”이라고 추켜세웠다.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여민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여민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뉴시스]

공식 외교 행사에서 상대국 ‘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언급을 여러 차례 하는 건 이례적이다. 김 여사는 그동안 직접 만든 음식이나 해외 순방 중에 보여준 패션으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그런데 정상회담이란 굵직한 외교무대에서도 주목받게 된 것이다.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는 보통 지도적 지위에 있는 여성을 의미하지만, 요즘에는 대통령이나 총리 등의 부인을 특정해서 쓴다. 한국어로는 보통 영부인(令夫人)이라고 쓴다. 사전적으로 영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퍼스트레이디를 정확히 표현하자면 ‘대통령 영부인’이라 해야 맞다.
 
대통령 영부인에게 법률이 명시한 권한이나 임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말 자체가 특정한 지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영부인의 경우 초대 이승만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오스트리아 출신)에서부터 김정숙 여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행사에 동행하거나 별도의 단독 행사를 주관하는 등 대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영부인 행사는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실이 전담한다. 행사 성격에 따라 청와대 비서실의 다른 비서관실과 업무 협력을 하기도 한다. 김 여사는 연설과 통역을 담당하는 직원도 따로 있다. 통역은 필요시마다 외교부 지원을 받는다. 김 여사가 외국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동행하는 통역은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독일어 등이 가능하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영부인은 개인성향에 따라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청와대에서 내조에 집중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2001년 1월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펄벅 인터내셔널'이사회장 피터 콘 박사로부터 `2000년 올해의 여성상' 상패를 전달받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2001년 1월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펄벅 인터내셔널'이사회장 피터 콘 박사로부터 `2000년 올해의 여성상' 상패를 전달받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활동가형=해외순방에 동행하거나 청와대에서 내·외빈을 맞을 때 대통령과 나란히 행사에 참석하는 것 말고 독자적으로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한 대표적인 영부인이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였다. 지난달 작고한 이 여사는 2002년 5월 6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남편을 대신해서였다. 대통령 영부인이 직접 외교무대에 나선 것이다. 이 여사는 방미 이틀 뒤 유엔본부에서 열린 총회에선 의장국 대표로 임시의장을 맡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기조연설을 하는 기록까지 남겼다.

 
한국의 1세대 여성·인권 운동가였던 이 여사는 김대중 정부가 ‘여성부’(현 여성가족부)를 설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 외에도 복지 분야 등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도 활동이 활발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두 번째 방북했다. 첫 방북은 김대중 대통령 재임 중인 2000년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때였다. 이 여사는 2015년 8월에 다시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방북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도 교육·복지 분야에서 독자적인 활동이 많았다. 육 여사는 특히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 ‘육영재단’을 설립하고 ‘어린이회관’을 짓는 등 아동복지와 관련한 분야의 일도 많이 했다. 한센병 환자 등 소외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곤 했다.

 
UN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는 2009년 9월 21일(현지시간) 뉴욕 인근에 거주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초청, 한식 요리를 대접했다. 뉴욕인근 롱아일랜드에 있는 레오날즈 연회장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참전용사 56명과 가족들이 참석했다. 김 여사는 이날 해물파전을 직접 만들어 참전용사들에게 일일이 접대했다. [중앙포토]

UN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는 2009년 9월 21일(현지시간) 뉴욕 인근에 거주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초청, 한식 요리를 대접했다. 뉴욕인근 롱아일랜드에 있는 레오날즈 연회장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참전용사 56명과 가족들이 참석했다. 김 여사는 이날 해물파전을 직접 만들어 참전용사들에게 일일이 접대했다. [중앙포토]

 
◇조용한 내조형=노태우 전 대통령 영부인 김옥숙 여사나 김영삼 전 대통령 영부인 손명순 여사는 퍼스트레이디로서 단독활동이 많지 않아 조용한 내조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김옥숙 여사의 경우 복지기관 방문 등의 일정을 수행하더라도 무조건 비공개였으며 인터뷰도 거의 한 적이 없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반으로 행사에 참석했을 때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였고, 내·외빈을 맞이할 때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2005년 한국에서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등을 맡아 대외 활동에 나선 적이 있다. 하지만 단독활동이 많지 않아 대외적으로는 조용한 행보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활발한 정숙씨=김정숙 여사는 굳이 분류하자면 전자에 가깝다. 김 여사는 처음에는 전통적인 ‘내조형’인 듯했다. 지난 2017년 5월 문 대통령 취임 직후 마련된 5당 원내대표와의 회동 때 직접 쓴 손편지와 함께 인삼정과를 만들어 선물했을 때만 해도 그런 평가가 우세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임기가 지나갈수록 활동폭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 취임 초 주변에 자신을 ‘영부인’이 아닌 ‘여사’로 불러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부인’이라는 명칭보다는 ‘여사님’이 독립적 인격으로 보는 의미가 있다”는 게 당시 청와대 설명이다. 김 여사는 2017년 7월 21일 충청도 호우 사태로 큰 피해를 입은 충북 청주시를 찾아가서 수해복구 작업을 도왔다. 퍼스트레이디가 수해복구작업 현장에서 일을 도운 것은 이례적이다. 2018년 평창 겨울 패럴림픽 때는 개회식부터 폐회식까지 대회기간 10일 중 3일을 숙박하고 6차례 경기를 직접 관전했다. 그래서 패럴림픽 성공의 숨은 주역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인도를 방문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4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공군2호기에 올라 손을 흔들며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인도를 방문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4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공군2호기에 올라 손을 흔들며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외교무대의 전면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3박 4일 일정으로 인도를 다녀온 뒤부터였다. 영부인이 단독 해외 순방에 나선 것은 2002년 이희호 여사 이후 16년 만이었다. 김 여사는 공군 2호기를 타고 순방에 나서 당시 나렌드라 모디 총리 등을 면담하고 허황후 기념공원 기공식 등에 참석했다.

 
김 여사는 청와대 경내로 노인이나 아동 등 소외계층을 자주 초청했는데 근래에는 대상 폭을 넓히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 2일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127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했다. 청와대는 1998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초청 오찬을 한 이후 20년 만이라고 밝혔다. 김 여사가 문화계에 관심이 많은 것은 모친이 서울 종로에서 수십 년간 포목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성악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김 여사는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문 대통령과 결혼 전까지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했다.
 
최근 행보는 정치적 논란도 불렀다. 지난달 20일에는 삼성전자와 SK·롯데 등 10여개 기업의 고위 임원들을 초청해 비공개 오찬을 했다. 오찬에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 오성엽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장 등이 참석했다. 그러자 야권에서 강한 비판이 나왔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본인이 대통령인 줄 아느냐”는 글을 SNS에 올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5월 김 여사가 참석한 행사, ‘세상 모든 가족 함께’를 후원했던 기업들이 함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인도 방문을 위해 탑승한 공군 2호기에 대통령 휘장을 가리지 않은 것을 두고도 야권에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VIP(대통령)께서 탑승하는 것이 아니기에 비행기에 부착된 대통령 휘장을 가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에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표단 성격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어 떼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2017년 11월 14일 오후 필리핀 마카티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행사도중 필리핀 현지 활동 개그맨이자 평창홍보대사로 위촉된 라이언방이 강남스타일을 개사해 노래를 부르자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11월 14일 오후 필리핀 마카티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행사도중 필리핀 현지 활동 개그맨이자 평창홍보대사로 위촉된 라이언방이 강남스타일을 개사해 노래를 부르자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 여사의 성격은 활달하기로 유명하다. 즉석 행동으로 인해 돌발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김 여사는 2017년 11월 필리핀 동포간담회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췄다. 올해 4월 미국을 방문해 초등학교 케이팝 수업을 참관한 자리에서 “여러분 나이 때 춤을 춘 적이 있다. 지금도 춤을 추려 하는데 춤을 추면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며 웃었다. 2017년 11월 인도네시아 국빈방문 때는 인도네시아 궁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려다 펜이 안 보이자 주저 없이 옆에 서 있던 문 대통령의 주머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뒤져 화제가 됐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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