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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정치판이 막말 대향연인 이유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손이 하나만 있는 경제학자를 모셔올 분은 없습니까.”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1884~1972)의 말이다. ‘이쪽 손의 측면에서 보면… 다른 쪽 손의 측면에서 보면…(on the one hand… on the other hand…)’라고 말하는 경제학자들이 하도 많아 화가 난 것이다. 그래서 어느 쪽이 옳다는 것이냔 말이다.
 

증오가 정신질환은 아니지만
공공보건 해치는 건 분명해
분노 정치인을 중시한다해도
공동체 이익 먼저 생각해야

‘한편으로는··· 다른 한편으로는’이라는 화법은 경제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학자가 비슷한 수사를 공유한다. 한편으로는 커피가 몸에 좋다… 다른 한편으로는 몸에 나쁘다는 식이다. 정신적 건강을 다루는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분노와 증오는 자연스러운 인간 감정이다. 증오는 분노보다 더 농도가 높고 보다 장기적인 감정이다. 온라인·오프라인 세계는 분노와 증오로 펄펄 끓는다.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이 분노·증오의 표출이 더 심각한 것 같다. 익명성 뒤에 숨은 사람들이 온라인을 분노와 증오의 하수구·비상구·탈출구로 삼는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기 살기로 공격한다.
 
미국 최대의 의료 전문가 협회인 미국내과학회(ACP)를 포함해 점점 더 많은 건강 전문가가 증오 언설(hate speech)을 공공보건(public health)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오 언설이 공공보건을 해친다는 얘기다. 학자들은 증오 언설과 증오 범죄(hate crime)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지 찾고 있다. 관계가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올해 3월 15일에 발생한 참극이 증오 언설에서 싹 텄다고 분석한다. 혐오성 말과 글이 과격화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 종착역은 테러라는 것이다.
 
선데이 칼럼 7/6

선데이 칼럼 7/6

분노가 몸에 해로운 건 분명해 보인다. 심혈관계 질병의 가능성을 높인다. 고혈압·두통·불안감을 악화시킨다. 따라서 심호흡을 하건 명상을 하건 분노를 통제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분노·증오 역시 반드시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건설적인 경우도 있다는 시각이 있다. 분노가 오히려 사람을 낙관적이고 자신감 넘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를 비롯해 많은 정치·비즈니스 지도자들이 ‘화난 척 하기’라는 협상술을 구사했다. 히브리대학의 마야 타미르 교수는 2017년 8월 “분노하고 싶을 때 분노하고, 증오하고 싶을 때 증오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실험 심리학 저널(JEP)’에 발표했다.
 
분노 예찬은 이 밖에도 의외로 넘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하는 사람은 가능한 목표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며,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즐겁다”라고 말했다. 부부카운슬링 전문가들은 부부싸움을 전혀 안 하는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 부부보다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래선지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댓글에는 증오와 분노가 넘친다. 다행히도 학자들은 증오가 우울증이나 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은 아니라고 말한다. 인종주의 같은 증오는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지만, 정신질환의 바이블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은 증오를 정신질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악플 달기’가 오락에 불과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증오와 분노가 부추기는 갈등은 위태롭다. 우월감으로 무장한 프로파간다의 전위대는 상대편이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확신한다. 아예 ‘박멸’의 대상으로 본다. 저쪽 진영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처럼 포장한다.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촛불혁명을 성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다음 단계로 다음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우리 정치사에서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촛불 혁명가도 있다. 반면 태극기 시위 참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 하야’가 포함된 ‘태극기 혁명’을 희망한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로 포장되는 분노와 증오의 댓글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의 리더인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정치 지도자들이 증오 유발 언행을 흔히 정략적 도구로 삼는다. 스크립스칼리지 라리사 티덴스 총장이 2001년 1월 ‘성격·사회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슬픔이나 죄책감과 같은 감정보다는 분노를 표출하는 정치인들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판이 쉽게 ‘막말의 대향연’이 되는 이유다
 
분노·증오가 공동체의 정치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학자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모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이건 한국이건 정치인들이 당파적 이익에 앞서 국가라는 공동체의 이익이나 민생을 걱정하고 고민해야 한다. 정치인들 스스로 부귀영화를 더 누리고 싶다면 특히 명심할 일이다. 외양간이 있어야 소를 지킬 수 있듯, 건강한 공동체가 있어야 부귀영화도 존재할 수 있는 까닭이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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