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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물자가 국경을 넘지 못하면…

기자
김종윤 사진 김종윤
 “물자가 국경을 넘지 못하면 군인이 국경을 건넌다. ”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역임한 코델 헐이 한 말입니다. 그는 하원의원 시절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파고들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이 전쟁의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다른 국가의 경제를 궁핍하게 만들고 자국의 경기를 살리려는 ‘근린궁핍화(Beggar-my-neighbor)정책’이 기승을 부릴 때였습니다. 무역 장벽을 쌓아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리는 게 사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헐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무역 장벽이 낮아야 세계가 함께 부(富)를 키울 수 있고, 평화도 유지할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자유로운 교역을 할수록 부는 쌓이고 갈등을 피할 수 있다는 통찰이었습니다. 헐의 자유무역 철학을 받아들인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헐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합니다. 헐은 이후 관세를 낮추고 자유로운 교역을 하자는 상호무역협정법 제정에 앞장섭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총리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총리 [연합뉴스]

 
이 결과 34~44년에 미국은 27개국과 무역 협정을 체결합니다. 무역 상대국에 적용되는 관세율은 이 기간에 평균 44% 내려갔고, 미국의 수출은 60% 늘어났습니다. 지구촌에 자유무역의 정신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스며들었습니다.    
 
80여년이 흐른 지금 이 철학, 파괴되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자국 우선주의’ 깃발이 펄럭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일본이 한국을 타깃으로 경제 보복의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이 국제법상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를 단행했습니다. 
 
일본 측은 뭔가 ‘부적절한 사안’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본질은 한일 청구권 협정과 위안부 합의 등에 관한 약속을 한국이 지키지 않았다는 시각입니다. 한국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청와대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WTO 제소 등을 검토한다고 맞섰습니다. 일부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정면 대결은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문제의 뿌리가 정치적 의도에서 뻗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을 쉽게 찾기 힘든 이유입니다. 일본은 21일에 참의원 선거를 치릅니다. 아베 총리는 대한(對韓) 수출 규제를 유세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겁니다. 미국은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표심을 잡기 위해 중국과 전면전을 벌인다는 건 새로운 뉴스가 아닙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 등의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함에 따라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의 타격이 우려된다. 사진은 텔레비전 매장이 모여 있는 용산전자상가.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 등의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함에 따라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의 타격이 우려된다. 사진은 텔레비전 매장이 모여 있는 용산전자상가. [연합뉴스]

정치적 탐욕은 부메랑이 돼 공공(公共)의 이익이라는 가치를 훼손합니다. 특정 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합의를 깼다고 판단했을 때 시정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외교적이고 합리적인 수단을 통해야만 합니다. 무역 보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수단을 동원하면 결과는 공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헐의 시대에는 물자가 국경을 못 건너면 군인이 국경을 건넜습니다. 지금은 군인이 국경을 건너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무기를 앞세워 충돌할 때보다 더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이 보복 카드를 꺼낸들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고 지성과 양심에 호소해봤자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칠 겁니다. 일본에 좌지우지되지 않게 우리의 기술력을 끌어올려야 하겠지만, 이 또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 지혜는 문재인 대통령이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이야말로 외교 실력을 보일 때입니다. 톱다운 방식의 해법 찾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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