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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야근도 금지…티타임이라 적어놓고 일해요”

지난 1일부터 금융·버스운송·방송 등 21개 업종도 주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됐다. 사진은 1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의 한 버스정류장에 주 52시간 단축 근로 시행에 따른 노선 폐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일부터 금융·버스운송·방송 등 21개 업종도 주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됐다. 사진은 1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의 한 버스정류장에 주 52시간 단축 근로 시행에 따른 노선 폐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국내 금융 대기업 IT·개발 부서의 김모(35) 대리는 앞으로 닥쳐올 상황이 걱정이다. 
 

주 52시간제 1년 … 현장에선
법정 근로시간 어기지 않으려
추가근무 때 허위기재 비일비재

탄력근로 단위기간 연장 급한데
관련법안 15건 여전히 국회 표류

김 대리가 근무하는 부서는 2017~2018년 10월까지 1년여 동안 전사 IT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밤샘·주말 근무 등을 하기도 했지만 앞으로는 불가능해서다.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1년 동안 연기됐던 금융업 부문도 지난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대상 기업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올해 초부터 ‘PC 오프제’(근무시간 외에 컴퓨터가 꺼지도록 하는 조치)를 도입했는데 시스템이 멈추는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제조업과 달리 고객 돈을 관리하는 기업이다 보니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에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1주년을 맞았지만 산업 현장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부터 금융·버스운송 등 21개 업종도 주 52시간 근무제 대상이 됐다. 부작용을 경험한 업종을 중심으로 보완 입법에 대한 요구가 거센 상황이지만 국회에서는 관련 보완 입법 15건이 표류 중이다.
조선·철강 등 제조업 현장에서는 탄력적근로시간제 최대 단위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제철 울산공장 강관제조설비. [사진 현대제철]

조선·철강 등 제조업 현장에서는 탄력적근로시간제 최대 단위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제철 울산공장 강관제조설비. [사진 현대제철]

 
현장에선 탄력적근로시간제 최대 단위기간 연장, 정산기간 확대, 인가연장근로 대상 확대 등 지금보다 유연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업보다 1년 앞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석유화학 업종에서는 인가연장근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내 한 정유업체는 올 1분기 생산시설 점검에 나섰다가 낭패를 봤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후 처음으로 시행된 정기보수여서 평소보다 더 많은 '헬퍼'(고숙련 외주인력)를 투입했지만 작업 기간이 원래보다 늘어지면서다. 한 주에 52시간 이상 일할 수 없어 작업의 연속성이 저하된 탓이다. 인가연장근로는 고용부 장관의 허가와 근로자의 동의가 있으면 1주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하는 근로를 허용하는 제도다. 지금은 재난 상황에서만 인가 연장근로제가 허용된다.
 
이 회사 노무 담당 김모(52) 과장은 “1~3년 주기로 시행하는 정기보수는 공장을 멈추고 약 3개월 동안 진행하는데 기간이 늘어질수록 손해가 불어난다”며 “앞으로 예정된 더 큰 규모의 정기보수에 훨씬 많은 외부 숙련공을 투입할 예정이지만 공장을 더 오래 세워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현장에선 온갖 ‘꼼수’가 난무하고 있다. 반도체 관련 기업 이모(35) 연구원은 최근 회사의 근로시간 입력 시스템에 '비근로시간'을 기재하는 일이 잦아졌다. 법에서 정해둔 근로시간 외에 추가로 근무할 수가 없어 근무하지 않은 것처럼 꾸미고 일을 해야 해서다.
 
이 연구원은 “PC를 켜두고 일하면서도 그 시간 동안 ‘차를 마셨다’ ‘흡연을 했다’고 기록하는 등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상황이 늘어났다”며 “딴짓을 한 것처럼 꾸미고 추가근무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털어놨다. 일하면 안 되는 시간에 업무를 하느라 일하면서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주 52시간 도입 1년, 산업 현장에선 보완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주 52시간 도입 1년, 산업 현장에선 보완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전기 부산공장 클린룸 전경.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삼성전기 부산공장 클린룸 전경.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선 탄력적근로시간제 최대 단위기간 연장이 선결 과제로 꼽힌다. 기간을 정하고 기간 내에서 어느 날 근무를 많이 했다면 다른 날 근무시간을 줄여 해당 기간 평균 근로 시간을 근로기준시간(40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현행 최대 단위기간은 취업규칙상 2주다. 노사가 합의하면 3개월까지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반부 한 달 반 동안 주당 60시간 근무했다면 후반부 1.5개월은 주당 20시간만 근무해 3개월 평균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맞추면 된다.
 
정조원 한경연 고용창출팀 팀장은 “벽지·창호 등 건설 기자재 업체는 1년 중 건설공사가 6개월 이상 집중되고, 바이오제약 업계는 임상시험 단계에서 6개월 이상의 집중근로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라며 “최대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미국, 일본처럼 1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택적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사전에 업무량을 예측하기 어려운 산업 현장이 특히 그렇다. 현행 선택적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은 1개월로, 이 기간 근로자는 스스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단, 주당 평균 40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
 
정 팀장은 “게임개발 등 IT 서비스업의 경우 개발 막바지 단계에서 적어도 4개월 이상은 근로자의 집중근로가 필요한데 정산기간이 1개월이면 집중근로 기간이 사실상 보름뿐이어서 문제가 많다”며 “현행 1개월에서 6개월 이상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추광호 한경연 일자리전략실장은 “산업화 시대의 획일적이고 규제 위주의 근로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런 산업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도 공허하다. 관련 법이 국회에서 표류 중인 탓이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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