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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포커스] "프로 생활 잘해보려다"…'이여상 불똥' 튄 선수들의 억울함

두산 송승환과 롯데 고승민. 사진=각 구단 제공

두산 송승환과 롯데 고승민. 사진=각 구단 제공


"금지 약물 권유를 받은 적도, 투약한 적도 없습니다."
 
두산과 롯데는 지난 3일 오후 소속 선수의 결백을 주장하는 공식 입장을 잇따라 발표했다. 올해 입단한 신인 선수 가운데 일부가 지난해 말 한 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운영하는 '이루리 야구교실'에서 개인 레슨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뒤였다.
 
문제의 야구교실을 운영한 인물은 15년간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하다 은퇴한 이여상(35)이다. 그는 불법으로 유통되는 금지 약물과 각종 호르몬을 학생 선수들에게 주사하고 판매한 사실이 적발돼 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발표에 따르면, 이여상이 선수들에게 권유한 약물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일종인 스타노조롤 등으로 드러났다. 근육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어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금지약물로 분류하고 있다.
 
이여상은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 선수들에게 "이 약을 맞아야 몸이 좋아져서 좋은 성적을 내고 원하는 프로 구단이나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유혹하면서 약물을 직접 주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발을 피하기 위해 투약 스케줄을 치밀하게 조절한 데다, 1회당 금액이 300만원에 달해 1년간 무려 1억6000만원에 달하는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는 후문이다.
 
이여상은 주전으로 나선 시즌이 많지 않지만, 야구팬이라면 제법 이름을 알 만한 선수였다. 2007년 삼성에서 프로에 데뷔한 뒤 2008년 한화로 이적해 6년을 뛰었고, 롯데에서 선수 생활 마지막 3년을 보낸 뒤 은퇴했다. 프로 통산 경기 수는 478게임. 금지 약물 복용이 프로야구 선수에게 얼마나 치명상을 입히는지 알고도 남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앞길이 창창한 학생 선수들을 악랄한 상술과 편법 속으로 몰아 넣었다는 점에서 야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이제 막 프로 생활을 시작한 신인 선수 두 명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앞서 "결백하다"고 주장한 두산 내야수 송승환(19)과 롯데 내야수 고승민(19)이다.
 
송승환은 구단을 통해 "프로 지명 후인 2018년 10월 말부터 9주 동안 해당 야구 교실에서 일주일에 3번씩 20차례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다"며 "그러나 이 기간 약물 권유를 받은 적도, 투여한 적도 없다"고 했다. 고승민도 "프로 지명 후인 2018년 10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약 두 달에 걸쳐 주 5회 야구 레슨을 받았지만, 약물에 관한 어떠한 제의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도핑 테스트는 피할 수 없다. 둘은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게 됐고, 나란히 "수사 기관의 요청이 온다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송승환은 2차 2라운드, 고승민은 2차 1라운드에 각각 지명된 유망주다. 그런 두 선수가 프로 지명 이후인 지난해 10월부터 12월 사이에 비싼 돈을 들여 이여상 야구교실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이유가 있다. 2017년 신인들까지만 해도 입단 전 11월은 대부분 구단 마무리 캠프에 참가해 프로 코칭스태프, 선배들과 첫 담금질을 시작하는 시기였다. 아마추어와는 차원이 다른 프로야구의 합동 훈련이 바로 이 시기부터 시작됐다. 특히 송승환과 고승민 같은 상위 라운드 지명 선수라면 부상이 없는 한 마무리 캠프에 참가했던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정 농단' 사태의 장본인 최순실 씨가 딸 정유라 씨를 명문대에 부정입학시킨 사실이 드러난 이후 교육부는 학생 체육 특기자들의 학사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2018년 입단한 신인들부터는 학교 출석일수를 채우느라 마무리 캠프에 참가할 수 없게 됐고, 프로 입단이 예정된 고3 선수들은 입단 전 3개월 동안 각기 몸을 만들고 기술을 향상시킬 방법을 따로 찾아 나섰다.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사교육'을 받으면서 프로에 대한 조언을 받는 일도 더 많아졌다. 바람직한 취지로 학사일정 준수 의무가 강화됐지만, 현장에서는 종종 "마무리 캠프에서 신인들을 직접 보고 훈련시킬 수 없어서 답답하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던 이유다.
 
송승환과 고승민 역시 졸업 전 더 확실하게 프로 생활 준비를 하려고 '전직 프로야구 선수'라는 이여상을 찾았다가 불필요한 금지 약물 파문에 얽히게 된 케이스다. 아직 혐의가 없는 두 선수는 이여상 사건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자 일제히 펄쩍 뛰었고, 양쪽 구단은 "함께 훈련만 하지 않았을 뿐 꾸준히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관리를 하던 상위 픽 선수들이다. 금지 약물 복용과 같은 일탈은 없었을 것"이라고 믿음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송승환과 고승민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금지 약물 조사'를 함께 받았다는 꼬리표 자체가 막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어쨌든 이번 사태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은 KBO는 금지 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더 끌어 올리기로 했다. 아마추어 야구도 더 이상 약물 청정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 들이고, 향후 신인 드래트프를 통해 프로에 지명된 선수들을 대상으로도 도핑 테스트를 강화하기로 했다. KBO 관계자는 "야구교실에서 아마추어 선수에게 금지 약물을 투여하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며 "KBO 신인 드래프트를 신청한 선수를 대상으로 무작위 도핑 검사를 하고, 학생 선수들에게도 반도핑 교육을 하는 등의 방법을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악용하고 남용한 이여상. 막 프로에 발을 내딛은 신인 선수들에게 상흔을 남기고, 자신과 같은 길을 꿈꾸던 학생 선수들의 미래를 짓밟았다. KBO의 후속 방지책 마련과 아마추어 선수들의 약물 경각심 강화가 이여상 파문이 남긴 유일한 긍정적 효과다.
 
배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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