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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마라도나도 막았는데, 차붐은 도저히..." 차범근·슈마허, 분데스리가 최고 창과 방패 만나다

1980년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를 호령한 최고의 창과 방패가 다시 만났다. 차범근(오른쪽)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하랄트 슈마허 쾰른 부회장은 최근 강남 신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나 40년 전 첫 대결을 추억했다.

1980년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를 호령한 최고의 창과 방패가 다시 만났다. 차범근(오른쪽)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하랄트 슈마허 쾰른 부회장은 최근 강남 신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나 40년 전 첫 대결을 추억했다.


"이 친구 손 좀 보세요. 저 크고 두꺼운 손에 당대 최고 골잡이들 슛이 다 막혔죠.(차범근)"
"내가 마라도나한테도 골을 안 먹었는데, 차붐은 도저히 못 당하겠더라고요.(하랄트 슈마허)"

 
1980년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를 호령한 최고의 창과 방패가 다시 만났다. 1978년 다름슈타트에서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차범근(66)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1979년 프랑크푸르트(1979~1983년)로 옮기면서 당시 유럽 최고 리그였던 분데스리가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이후 7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독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국인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차붐(Cha boom)'이란 별명도 이때 얻었다. 

 
차범근은 ‘Cha Boom’이란 별명과 함께 1989년 레버쿠젠에서 은퇴할 때까지 308경기 출전해 98골을 넣었고 이 기간 UEFA컵 2회와 DFB포칼 1회 우승을 차지했다. 레버쿠젠 시절 차범근의 모습.

차범근은 ‘Cha Boom’이란 별명과 함께 1989년 레버쿠젠에서 은퇴할 때까지 308경기 출전해 98골을 넣었고 이 기간 UEFA컵 2회와 DFB포칼 1회 우승을 차지했다. 레버쿠젠 시절 차범근의 모습.


골로 상대 수비진을 폭격한다고 해서 독일 축구팬들이 붙였다. 최전성기였던 1985~1986시즌에는 레버쿠젠(1983~1989년)에서 총 19골을 넣었다. 그는 1989년 레버쿠젠에서 은퇴할 때까지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넣었다. 이 기간 유럽축구연맹(UEFA)컵에서 두 차례(1979~1980·1987~1988시즌)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에서 한 번(1980~1981시즌) 우승했다.
 
'토니 슈마허'라는 별명으로 더 익숙한 하랄트 슈마허(65·독일)는 제프 마이어·올리버 칸·마누엘 노이어와 더불어 '독일 4대 거미손'으로 불리는 레전드다. 그는 1980년대 독일(당시 서독) 축구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다. 그는 주전 골키퍼로 나선 198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1980)에서 눈부신 선방을 펼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후 1982 스페인월드컵과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멕시코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어 골든볼(MVP)을 수상한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에 이어 실버볼(MVP 2위)에 선정될 만큼 맹활약했다. 승부차기 선방률이 뛰어나 '페널티킥 전문가'로도 불렸다. 현재는 현역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분데스리가 FC 쾰른(1972~1987)에서 부회장으로 구단 전력 강화를 책임지고 있다. 슈마허는 쾰른에서만 422경기(구단 최다 출전 기록)를 뛰었다. 분데스리가와 DFB 포칼 우승은 각각 2회와 3회.

 
슈마허는 198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1982년·1986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에 이어 실버볼을 수상할 만큼 맹활약을 펼쳤다.

슈마허는 198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1982년·1986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에 이어 실버볼을 수상할 만큼 맹활약을 펼쳤다.


차범근과 슈마허는 축구 인생의 정점에 올랐던 6시즌간(1979~1987년) 양보 없는 결전을 펼쳤다. 최근 강남 신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차범근과 슈마허는 40년 전 첫 맞대결을 떠올리며 유쾌한 수다를 펼쳤다.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은 슈마허는 "한국을 찾게 된 건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아 '방탄소년단의 나라'를 가 보고 싶어 한 딸의 공이 크다. 아빠가 차붐을 그리워하는 걸 알았던 모양"이라며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차붐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물론 한 살 어린 나도 괜찮은 외모"라며 농담을 건넸다. 차 전 감독은 "나는 동갑인 줄 알았다"며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라며 슈마허의 손을 꼭 잡았다.
 
- 첫 대결을 기억하나.
슈마허: 1980년대 분데스리가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차붐이 이전까지 분데스리가에서 뛴 선수는 일본 출신 오쿠데라 야스히코(1977~1980년·쾰른)가 유일했다. 아시아 선수는 왜소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차붐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웬만한 독일 선수보다 체격이 더 좋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차범근: 프랑크푸르트 입단 첫 시즌 쾰른(1979년 11월 24일)과 처음 경기를 했는데, 분데스리가에서 처음으로 멀티골을 넣었다. 우리가 3-0으로 이겼다.(웃음)  

 
슈마허는 차범근과의 첫 대결을 회상하면서, 그의 대포알 슛에 손가락이 휘었다고 말했다.

슈마허는 차범근과의 첫 대결을 회상하면서, 그의 대포알 슛에 손가락이 휘었다고 말했다.


- 독일 최고 골키퍼의 자존심을 구긴 것 아닌가.
슈마허: 차붐이 한국에서 대단한 선수였다는 건 프랑크푸르트 선수들에게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차붐이 '대포알 슛'을 가졌다는 건 말해 주지 않았다. 지금 내 손가락은 그날 차붐의 슛을 막느라 다 휘었다(양손을 들어 보이며). 경기 이후 프랑크푸르트 선수들이 원망스러웠다. 한동안 손이 퉁퉁 부어 장갑을 제대로 끼지 못했다.(웃음)

차범근: 이것이 세계 최고 골키퍼의 손이다. 손가락이 부러져도 끝까지 경기를 뛰었을 만큼 투지가 대단한 선수였다.

슈마허: 꼬박 40년 전 얘기다.(웃음)

 
슈마허는 차범근이 완벽한 공격수였다고 회상하며, 현역이었다면 1억 유로를 줘도 아깝지 않았을 선수라고 말했다.

슈마허는 차범근이 완벽한 공격수였다고 회상하며, 현역이었다면 1억 유로를 줘도 아깝지 않았을 선수라고 말했다.


- 차범근은 어떤 선수였나.
슈마허: '페어펙트(Perfekt·독일어로 완벽)'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격수였다. 슛이 좋은 데다 스피드가 폭발적이었다. 첫 대결 이후로도 나를 상대로 많은 골(대 슈마허 통산 6골)을 넣었다. 내가 멕시코월드컵에서 마라도나를 상대로도 골을 안 먹었는데, 차붐은 도전히 못 당하겠더라. 만약 차범근이 지금도 현역이었다면 1억 유로(약 1300억원)를 이적료로 줘도 아깝지 않을 선수였다. 지금 우리팀(쾰른)에 차붐 같은 선수가 있었다면….(웃음)
 
- 독일 국가대표 주전 수문장을 상대로 골을 넣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차범근: 강심장을 가진 공격수도 슈마허 앞에선 긴장했다. 그 당시 분데스리가는 클라우스 알로프스·카를하인츠 루메니게·케빈 키건·위르겐 클린스만 등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활약했다. 승부욕도 워낙 강했다. 승부욕은 세계적인 골키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슈마허가 이끄는 동안 쾰른은 분데스리가와 유럽에서 인정받는 강팀 중의 강팀이었다.
 
- 페널티킥을 잘 막는 비결은.
슈마허: 정보력이다. 내가 상대한 페널티킥 키커는 물론이고 앞으로 상대할 선수, 경쟁팀 전문 키커들의 슛 기록, 습관 등을 메모지에 빠짐없이 적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모두 수작업이었다. 직접 볼 수 없는 경기는 다른 팀 동료들에게 물어봤다. 월드컵이나 국제 대회에서 맞붙을 다른 나라 팀은 대표팀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빼곡히 쌓인 기록은 선수 생활 막판에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책 한 권이 됐다. 그 노트는 지금 쾰른 구단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딸은 차범근에 대해 알고 있나.
슈마허: 한국에 가면 차범근을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축구에 관심 없는 딸이 누구냐고 묻더라. 어떻게 하면 알기 쉽게 설명해 줄까 고민하다, '한국의 프란츠 베켄바워'라고 했다. 베켄바워를 모르는 독일인은 없으니까.(웃음)
 
- 당시 프랑크푸르트와 쾰른, 레버쿠젠과 쾰른의 라이벌전은 얼마나 치열했나.
슈마허: 말그대로 전쟁이었다. 당시 독일은 바이에른 뮌헨·프랑크푸르트·쾰른·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슈투트가르트, 이 5팀이 독일의 '빅5'였다. 분데스리가 우승 경쟁은 물론이고 유럽 클럽대항전 우승과 상위권을 휩쓸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는 차붐이 가세한 뒤 전성기를 달렸다. 라이벌팀과 경기에서 전반전에 밀리기라도 하면, 하프타임 때 라커 룸 분위기는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험악한 분위기였다. 

차범근: '운제레 차이트(Unsere Zeit·독일어로 우리의 시간)'가 프랑크푸르트의 전성기였다. 나와 동료들이 뛰던 시기의 프랑크푸르트는 굉장히 강한 팀이었다.

슈마허: 그때는 스타 선수들이 꾸준히 팀을 대표해 뛰어서 더 흥미진진했다. 차붐도 10년간 두 팀에서만 활약했다. 지금은 우리가 뛰던 시절과 많이 변했다. 2년 정도 뛰면 더 많은 돈을 주는 팀을 찾아 나선다. 돈이 축구를 움직이는 시대가 돼 아쉽다.
 
 
레버쿠젠 시절 UE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는 차범근의 모습.

레버쿠젠 시절 UE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는 차범근의 모습.


슈마허: 레버쿠젠도 차범근이 뛰면서 성적이 좋아졌다.

차범근: 레버쿠젠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중위권 팀이었다. 내가 입단하면서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UEFA컵 우승도 했다. 지난 5월 레버쿠젠 구단의 초대를 받아 독일에서 열린 '분데스리가 40년(40 Jahre Bundesliga)'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레버쿠젠을 포함해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세 팀만이 지난 40년간 2부리그로 강등되지 않고 분데스리가에 머무른 팀이다. 예전 동료들과 악수를 나누는데 옛 생각이 나더라.
 
슈마허: 혹시 아직도 선수로 뛰는 건 아닌지.
차범근: 지금은 보기만 한다.(웃음)

 
왼쪽부터 하랄드 슈마허 쾰른 부회장, 야스민 슈마허, 페를라 슈마허, 오은미,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 차세찌.

왼쪽부터 하랄드 슈마허 쾰른 부회장, 야스민 슈마허, 페를라 슈마허, 오은미,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 차세찌.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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