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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영변 핵시설과 개성공단의 거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끄는 이벤트를 벌였다. 김정은의 친서에 이은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으로 우호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더니 판문점에서 짧지만 강렬한 깜짝 만남을 가졌다. 이는 본격적인 차기 정상회담의 전주곡인가. 열린다면 언제일까. 과연 북한 비핵화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무는 시점이다.
 

북한의 진전된 협상안이 나와야
북·미 정상회담 열리고 성공 가능
비핵화 정의, 핵신고 확실히 하면
영변과 개성공단 교환 고려해야

북·미 정상회담은 또 열릴 듯하다. 분위기보다 제재 효과 때문이다. 제재가 지속되는 한 김정은은 협상 외에 대안을 찾기 어렵다. 올해 연말을 넘기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그는 이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북한이 다시 핵 무력을 과시하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재개한다면 이는 미국의 군사 공격까지 초래할 수 있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도 새로운 길이 될 수 없다. 외교적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이 두 나라도 유엔 안보리 제재를 무력화시킬 의지와 힘은 없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정부 자원을 투입한 것으로 보이는 미국도 협상을 그만 둘 이유가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를 자신의 중요한 외교적 치적으로 삼길 원한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조만간 열릴 것 같지는 않다. 분위기는 좋지만 그 구조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우선 두 정상은 ‘노딜(No deal)’ 가능성이 큰 회담은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에게 노딜의 재연은 악몽이다. 하노이 회담의 충격이 반복된다면 그의 통치력은 약화되고 북한 내부가 더 불안정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하노이 회담 때 내놓았던 ‘영변 핵시설 폐기와 2016년 이후 채택된 모든 제재 해제’라는 제안에서 쉽게 물러서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반면 미국은 제재 충격이 쌓여서 북한의 비핵화 호가(呼價)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공산이 크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성급히 추진했다가 노딜로 끝나면 2020년 대선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계산을 할 법하다.
 
차기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려면 사전에 북·미간 실무협상을 통해 호가 차이를 크게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이 진전된 협상안을 제시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다. 이 협상안엔 다음 세 부분이 포함돼야 한다. 먼저 완전한 비핵화의 정의다. 완전한 비핵화가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뿐 아니라 핵과 ICBM, 그리고 핵물질의 완전 폐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인돼야 이를 실천하는 방법에선 미국이 북한 입장을 감안하는 유연성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핵과 미사일 시설, 기수(機數), 그리고 핵물질의 신고다. 이 신고가 있어야 거래 대상이 확정되고 비핵화 로드맵이 구상될 수 있다. 이 로드맵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응해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즉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 안전보장의 단계를 맞추고 그 끝을 일치시키는 작업이다. 만약 북한이 세 종류 모두에 대한 조기 신고를 거부한다면 종류별로 나누어 단계별 신고하는 방안도 차선책으로 고려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로드맵 1단계에서는 시설의 신고와 폐기, 2단계에서는 기존 핵과 미사일의 신고와 폐기, 3단계에서는 핵물질의 신고 및 폐기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상에 합의한다면 동시적·병행적 실천이 가능해 질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미국과 국제사회는 각 단계마다 북한에 제공할 인센티브를 협상안에 적시해야 한다. 이는 거래 대상에 적절한 가격을 매기는 작업이다.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해제는 이상적이나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최초의 비핵화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영변 시설의 폐기 대가로 어떤 제재를 해제해야 할지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기준은 그 제재를 풀었을 때 북한 경제와 정권에 미치는 효과이다. 긍정적 효과가 너무 크면 다음 단계의 비핵화를 추동할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 외화수입의 확장성(expandability)이 높은 제재를 조기 해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의 대가로 개성공단 재개를 허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단 조건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게 지급되는 총 외화규모가 제재 이전 수준을 넘지 않아야 하며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폐쇄 직전 북한이 개성공단으로부터 얻은 외화수입은 연 1억 달러 정도로서 연간 전체 외화수입의 10%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변이 북한 전체 핵·미사일 역량의 5%라고 해도 대략적으로 등가 교환이다. 개성공단은 북한 내 산업과 분절돼 있어 산업의 전후방 연관효과가 없으며 어떤 제재보다 외화수입의 확장성이 낮은 것도 장점이다. 더욱이 임금을 직불하면 장기적으로 북한 시장화에도 도움이 된다.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는 한 비핵화 입구로 들어갈 동력은 살아 있다. 입구가 열린 후엔 제재의 과학과 외교의 기술을 단계별로 잘 결합해야 성공할 수 있다. 비핵화를 이룰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는 한 이보다 더 나은 길은 없을 것 같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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