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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에도 날 세운 크루거 “얼마나 가져야 만족하겠나”

바버라 크루거는 거대한 텍스트를 이용해 강렬한 시각 경험을 선사한다. 큰 전시실 내부를 흑백 텍스트로 채운 ‘무제(포에버)’. 남성우월주의,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바버라 크루거는 거대한 텍스트를 이용해 강렬한 시각 경험을 선사한다. 큰 전시실 내부를 흑백 텍스트로 채운 ‘무제(포에버)’. 남성우월주의,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74세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대규모 기획 전시. 40년간의 작업을 설치·영상 등으로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 그런데 작가는 기자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미술관 측은 “이 작가는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위가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는 작품으로만 관람객을 만나고 싶어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미국의 개념미술가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UCLA 교수) 얘기다.
 

세계적 개념작가 대규모 개인전
소비욕·성권력 등 현대사회 비판
텍스트·이미지 잇댄 메시지 강렬
지난 40년 설치·영상 한자리 모아
한글로 만든 ‘제발웃어’도 선보여

1981년 ‘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your gaze hits side of my face)’라는 도발적인 문구로 시선의 폭력성을 지적했던 작가답다. 비록 그는 자신의 작품 뒤로 얼굴을 숨겼지만, 크루거의 작품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개인전은 올해 국내에서 놓치기 아까운 전시 중 하나가 될 듯하다. ‘미술’이라는 영역에 대해, 남녀의 성 역할은 물론 첨단 과학과 권력관계, 소비지상주의 등에 대해 자신의 독특한 시각적 언어로 도발해온 작품 44점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크루거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바버라 크루거: 포에버’를 위해 총 6개의 대규모 전시실을 기꺼이 열어젖혔다.
 
바버라 크루거는 거대한 텍스트를 이용해 강렬한 시각 경험을 선사한다. 큰 전시실 내부를 흑백 텍스트로 채운 한글 작품 ‘충분하면만족하라’(왼쪽부터). 남성우월주의,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바버라 크루거는 거대한 텍스트를 이용해 강렬한 시각 경험을 선사한다. 큰 전시실 내부를 흑백 텍스트로 채운 한글 작품 ‘충분하면만족하라’(왼쪽부터). 남성우월주의,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충분하면만족하라’‘제발웃어제발울어’=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작가가 세계 최초로 한글로 제작한 신작 두 점이다. 미술관 로비 바깥 거대한 유리에 쓰인 영어 문자 ‘PLENTY SHOULD BE ENOUGH’를 우리말로 번역해 옮긴 ‘충분하면만족하라’가 그 중 하나다. 다른 말로 옮기면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겠니?’라는 질문이 되지 않을까. 그가 자신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쓰고 있는 이 문구는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라는 문구로 소비주의를 비판해온 작업의 맥락 위에 있다. 또 다른 대형 한글 작품 ‘제발웃어제발울어’도 제대로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무엇보다 관람객을 멈춰 서게 하는 것은 각각 6m, 4.6m에 달하는 거대한 글자가 발휘하는 압도감이다. 초대형 크기의 글자는 마치 관람객을 향해 천둥 같은 소리로 ‘명령’하는 것 같다. 김경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큐레이터는 “사실 이 문구는 어떤 입장에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텍스트와 이미지의 힘을 이용해 생각을 자극하고 질문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이 작가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높이 5.7m, 한 면의 길이가 거의 30m, 20m에 달하는 전시실 내부를 흑백의 텍스트로 가득 채운 작품도 이번 전시의 ‘장관’으로 꼽힌다. ‘YOU’라는 글자가 새겨진 거대한 볼록 이미지 속에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는 문장이 들어가 있다.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집 『자기만의 방』에서 인용한 글귀다.
 
1989년 미국이 낙태법 관련 시위로 들끓었을 때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 ground)’라는 문구를 새긴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 도시 곳곳에 붙이고,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영웅이 필요하지 않다’는 문구로 남성우월주의를 비판해온 작가의 페미니즘적 관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 큐레이터는 “이 작품은 크루거가 문학 작품을 차용한 극히 드문 작업 중 하나”라며 “그의 작품은 사회구조, 권력, 욕망에 메커니즘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크루거의 신작 ‘무제’(2018). 성모자상을 배경으로 ‘최신 버전의 진실’이라는 텍스트를 배치하는 손이 보인다.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크루거의 신작 ‘무제’(2018). 성모자상을 배경으로 ‘최신 버전의 진실’이라는 텍스트를 배치하는 손이 보인다.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무엇이 미술인가=크루거는 지난 40년 동안 잡지 등에서 차용한 이미지 위에 텍스트를 얹은 고유한 시각 언어로 세상과 소통해왔다. 잡지사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고, 광고 작업을 해온 경력을 십분 활용해 자신만의 작품 스타일을 구축한 것이다. 잡지 등에서 사진을 고르고 다시 편집한 뒤, 그 위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단어를 선택하는 방식의 작업을 그는 ‘콜라주’가 아니라 ‘페이스트 업’(paste-up)이라고 주장한다.
 
“당신은 제1의 공공의 적이다” “당신의 광기가 과학이 된다” “당신의 돈이 말한다” “당신의 평화는 나의 침묵이다” 등 전시장에서 만나는 많은 문구는 광고·잡지 등의 친근한 이미지를 활용해 날 선 언어로 시를 써온 작가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준다.
 
김경란 큐레이터는 “크루거는 지금 돌아가는 세계에 관해 관심이 굉장히 크다. 한국 유튜브의 ‘먹방’도, BTS(방탄소년단)의 활약도 알고 있다”며 “그는 현대의 가장 상업적이고 친근한 미디어 기법을 활용해 당대의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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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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