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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중기 상속세 장벽에 한국도 ‘폐업 시대’ 먹구름

대기업에 섬유 원단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박모(72) 대표는 요즘 부쩍 자책하는 일이 많아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를 털어 넣을 게 아니라, 서울 강남에 부동산을 샀어야 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가 자책하는 근본적 원인은 상속세에 있다. 1980년대 초 사업에 뛰어들어 회사를 연 매출 50억~60억원대로 건실하게 키웠지만, 장성한 아들들에게 물려주기에는 10억원이 넘는 상속세가 큰 부담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두 아들 역시 상속세와 업종 등 때문에 회사를 물려받는 데 시큰둥하다. 박 대표는 경쟁사든 사모펀드든 적당한 인수자가 나타나면 회사를 팔 생각이다.
 

일본 2025년엔 73만개 폐업 예상
일자리 650만개 날아가버릴 우려

CEO 4명 중 1명이 60세 이상인데
‘승계 경영’ 3.5% ‘계획 없다’ 84%

차등세율 구간 확대해 탈세 막고
중소기업 마음껏 일하게 지원해야

1970~80년대 고성장기에 회사를 세운 창업자들이 60~70대로 접어들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2세들이 가업을 물려받는 세대교체가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고율의 상속·증여세 벽에 막혀 기업 승계를 엄두도 못 내거나, 회사를 팔려는 중소·중견기업인이 늘고 있다. 상속·증여세 낮춰 기업의 혁신을 지원하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 때문이다.
 
한국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내놓은 ‘기업생멸행정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활동 중인 기업 중 60대 이상이 CEO를 맡고 있는 기업 수는 139만8364개로 전체 활동 기업 중 23.11%에 달했다. 2012년 같은 조사 때보다 기업 수는 29만527개, 비중은 2.52%포인트 커졌다. 한국기업데이터 자료에서는 창업자가 CEO인 국내 기업 5만1256개 중 33.2%(1만7021개)의 CEO 연령이 60대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잠재적 승계 수요가 있는 기업이 전체의 20~30%에 이른다는 의미다.
  
실효세율 한국 28.09%, 일본 12.95%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정이 이런데도 창업자들은 아직 승계 방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 ‘승계’를 받아 회사를 운영하는 CEO는 전체의 3.5%에 불과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2018년 중견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의 84.4%가 ‘가업 승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가장 큰 이유로는 ‘상속·증여세 부담’(69.5%) 비중이 가장 컸다.
 
한국의 상속·증여세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에서 기업을 승계할 때 최고세율과 최대주주 보유주식(경영권) 할증평가를 적용할 경우 65%(명목세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 실효세율로 따져도 28.09%로 미국(23.86%)·독일(21.58%)·일본(12.95%) 등보다 높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부담이 큰 것은 부의 집중화와 대물림을 방지해 계층 간 이동을 가능하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과도한 상속세가 폐업 등 일자리를 줄이고 기업가 정신을 저해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한국보다 앞서 ‘대폐업 시대’에 접어든 일본은 2025년 전체 중소기업의 60%인 245만 개 기업의 CEO가 70세가 넘을 전망이다. 이 중 절반에 이르는 127만 개 회사가 후계자를 찾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를 방치하면 2025년 중소기업 73만 개가 폐업해 약 65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22조 엔(약 238조원)의 국내총생산(GDP)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자 세대교체를 앞둔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국내 산업 가치사슬의 중추를 맡고 있는 중견기업(3년간 평균 매출 3000억원 미만) 346개 중 237개(68.5%)의 CEO 나이가 60세 이상이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 가업승계 현황 분석’ 보고서에서 “1세대 기업 3개 중 하나는 10년 안에 세대교체 가능성이 크며, 기업의 폐업·매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며 “30년 이상 기업의 자산·매출·고용은 10년 미만 기업의 4~5배 규모라 기업의 영속성이 단절되면 국가 경제의 손실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속·증여의 부담을 줄이는 것은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끌어내는 한편 산업 전환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가업 상속공제제도의 사후관리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는 한편 지난해 특례를 도입해 10년간 비상장 중소기업 공제 금액을 자산의 80%에서 100%로 늘리기로 했다. 미국은 지난해 상속세 면제 한도를 549만 달러(약 63억원)에서 1120만 달러(약 128억원)로 올렸다. 독일은 상속세 실효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가업 경영 횟수나 상속자의 종사 기간 등 상속 공제 조건이 느슨하다. 스웨덴·오스트리아·노르웨이·포르투갈·멕시코 등은 2000년대 들어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14개국은 상속세가 없다.
 
한국도 상속세를 일부 공제해주는 ‘가업승계 지원제도’가 있다. 다만 매출·자산 규모와 최대주주 지분, 업종, 피상속인 10년 경영 등 요건이 까다롭다. 중소·중견기업 가운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회사는 27.2%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7년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기업은 91건, 공제액은 2226억원에 불과했다. 홍성규 가루다IPS 세무총괄 대표는 “경영자는 기업을 운영하며 이미 소득세·법인세를 냈기 때문에 상속세는 이중과세 소지가 있고 상속세 과세표준 구간도 1999년 만들어 지나치게 낮다”며 “차등 세율 구간을 확대해 일부 대기업의 탈세와 불법 증여를 방지하는 한편 미국처럼 중소·중견기업이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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