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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악마입니다" 자녀와 죽으려던 부모···판사는 기회 줬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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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 미친 듯 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굳은 손을 펴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구급차를 기다린 그 순간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외로이 떠난 아이가 떠오를 때마다 제가 악마가 아니었나 하고…”

 
옥색 수의 차림의 엄마는 피고인석에서 반성문을 읽으며 하염없이 흐느꼈다. 지난 14일 서울고법에서 살인·살인미수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부부의 항소심 첫 재판이 열렸다. 이들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세상을 등지려다 한 아이를 잃었다.  
 
빚에 눌린 부모의 잘못된 선택
평범했던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빚’이었다. 남편 A씨는 사업 실패로 수억 원대 빚더미에 앉게 됐다. 좌절감에 깊은 무기력증에 빠진 남편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아내 B씨는 생계를 위해 마트 직원, 세신사 등으로 일하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남편이 투자자로부터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되자 절망에 빠진 부부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말았다.

 
12월의 어느 날. 부부는 자녀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했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아이들 약에 수면제를 넣어 먹였다. 아이들이 잠들자 부부는 문틈에 테이프를 붙이고 안방에 연탄불을 피운 채 방에 함께 누웠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잠들었던 막내가 깨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 것이다. 잠들었던 B씨가 눈을 떴을 때 아이들의 코에서 피가, 입에서는 거품이 나고 있었다. 놀란 B씨는 119에 신고한 뒤 아이에게 응급조치하고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막내가 문을 연 덕에 부부는 목숨을 건졌지만 아이들 중 한 명은 끝내 깨지 못했다. 1심 재판부는 “부부의 행동은 어린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으로 엄중히 처벌해 동반자살을 기도하는 행위를 막아야 할 필요가 크다”며 아빠에게 징역 5년을, 엄마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판사의 제안 “한 달간 달라진 삶 보여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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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맡은 항소심 재판부는 고심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들 가족의 사례가 빚에 허덕이는 또 다른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빚에 못 이겨 어린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으려 한 사람들의 사례는 적지 않다. 올해 어린이날 경기 시흥의 자동차에서 발견된 가족이나 얼마 뒤 의정부 아파트에서 비극을 맞은 일가족이 모두 그랬다. 학계에서는 이런 사례를 가장 극단적인 아동학대로 간주하기도 한다. 아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뜻에 따라 생긴 결과이므로 자살이 아닌 살인에 가깝다며 ‘자녀 살해 후 자살’로 불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A씨 부부의 죄명도 살인과 살인미수였다.  
 
재판부는 이날 법정에서 “부모도, 살아남은 자녀도, 다른 가족들도 다 마음이 아픈 사건”이라며 검사와 피고인 측에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고 재판을 시작했다. 제안은 한달 가량 엄마 B씨를 재판부 직권으로 보석하는 것이었다. 보석은 구속된 피고인을 법원이 특정 조건을 걸고 임시로 석방해주는 제도다. 조건을 어기면 보석이 취소될 수 있고 보석이 곧 무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부부가 죄를 모두 인정하는 점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 ▶남은 어린 자녀 등을 고려해 보석을 제안했다. 사건 이후 보호관찰소는 “부부가 같은 잘못을 다시 할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을 했다. 재판부는 부부에게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나며 큰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의 안정과 양육, 미래”라고 말했다. 재판부 제안에 검사 측은 “사정을 참작해 아이들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해달라”고 답했다. B씨는 이날 절차를 거쳐 석방됐다.

 
보석 결정 배경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회복적 사법'
법원의 결정에는 ‘회복적 사법’의 관점이 녹아있다. 회복적 사법은 법원이 피고인들의 형량을 정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당사자들이 피해를 진정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법이다. 전통적인 법원이 양측 당사자들의 주장을 고려해 형을 선고했다면 회복적 사법의 관점에서는 선고 전 피고인들이 변화된 행동과 계획을 직접 재판부에 보여야 한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2013년 인천지법 부천지원장일 때 검찰ㆍ전문가 기관 등과 함께 3개월간 10건의 형사재판에서 회복적 사법을 시범 실시하기도 했다. 
 
B씨는 수차례 낸 반성문에서 “달라진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재판부가 기회를 준 것이다. 재판부는 B씨에게 ▶보석 보증금 없이 서약서를 쓰고 ▶자녀와 함께 지내되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는 떨어져 있고 ▶빚 청산의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구직활동 및 자녀 양육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매일 활동 내용을 작성해 주 1회 법원에 보고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한 달 후 이런 결과를 살펴 선고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아이들에게 돌아간 B씨는 그간 활동 보고서를 25일 법원에 제출했다. 아이들과 함께 전문 기관에서 심리 치료도 받았다. 아이들은 조부모, 고모와 생활하는데 B씨는 재판부가 지정한 시간에 다른 집에서 생활하며 조건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한다. 한 달간 이어진 재판부의 실험 결과를 들을 수 있는 B씨의 다음 재판은 7월 19일 열린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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