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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큰 사건 따라 널뛰는 것이 권력 사정기관의 숙명

국정원 댓글 사건, 엇갈린 운명들
선거는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종종 마약에 비유된다. 출마하면 반드시 이기고 싶어한다. 거기에 독이 있다. 편법·탈법은 물론 때론 불법도 동원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한 2012년 대선 직전엔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에 의한 댓글 조작 사건’이 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한 2017년 대선 전엔 ‘드루킹 사건’(민주당원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이 있었다. 각각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연루돼 있다. 이런 대형 사건들은 나라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검사의 운명도 순식간에 뒤흔들고 뒤바꾼다. 국정원 댓글 사건 처리를 둘러싼 청와대·법무부와 검찰 수뇌부 간 갈등이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축출하는 사건을 불렀고,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항명 사태 이후 좌천된 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최근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에 이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많다. 칼잡이 채동욱·윤석열과 이들을 지휘했던 검사 선배 황교안·곽상도를 중심으로 큰 사건에 따라 널뛰는 사정기관 인사들의 엇갈린 운명을 쫓아가 봤다.
  
반복되는 대선 여론 조작의 유혹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곽상도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대국민 토론회 참석 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곽상도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대국민 토론회 참석 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25일 오후 수소문 끝에 찾아간 서울 역삼동 스타우스 오피스텔 607호 앞은 고즈넉했다. 문 앞엔 ‘택배 문앞에 두고 가주세요’라는 쪽지가 무심히 붙어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우편물을 확인해보니 시민 박모씨가 실 거주자였다. 인근 부동산에 문의했더니 607호실과 구조가 같은 다른 방을 보여줬다. 17평 규모이고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5만원 정도가 시세라고 했다. “이런 작은 데서 그런 큰 일이...”라고 혼잣말하며 부동산 직원에게 “이 오피스텔이 예전에 시끄러웠던 데 아녜요”라고 살짝 물었다. 퉁명스럽게 “아 그거 뭐” 하곤 그만이다.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 지절대듯이.
 
여기가 바로 6년여 년 전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밤 전국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607호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로 심리전단 소속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씨가 선거 여론 조작 활동을 벌이다 적발되자 40여 시간 ‘셀프 감금’을 하며 경찰의 오피스텔 진입을 막았던 그곳 말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았던 이 소동은 추후 경찰·검찰 수사를 거치며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 개입 사건의 단초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 벌어진 댓글 사건의 여파가 잠복해 있다가 집권 3년 차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한다. 이 사건으로 감옥행 급행열차를 탄 이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행안부장관을 거쳐 국정원장에 발탁된 그는 2013년 3월 말 퇴임식도 없이 슬그머니 물러났다. 재판에선 1심 국정원법 위반 유죄, 공직선거법 무죄(2014년), 2심 둘 다 유죄(2015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하급심에 오류 있다”며 파기환송했으나 정부가 바뀐 지난해 법원은 징역 4년 실형과 선거법 유죄를 확정했다.
  
오늘의 윤석열 만든 건 국정원 댓글 사건
 
채동욱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이 2006년 12월 ‘론스타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이 윤석열 검사. [중앙포토]

채동욱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이 2006년 12월 ‘론스타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이 윤석열 검사. [중앙포토]

댓글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수사를 거쳐 넘어온 원 전 원장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하고 적용할 범죄 혐의와 구속·불구속 기소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했던 이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다. 그에게 물었다.
 
당시 상황이 어땠나.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데 윤석열이 팀장인 특별수사단과 대검 수뇌부의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반대했다. 자신이 공안 검사 출신으로 선거법 전문가라서 잘 안다면서다. 검사들을 설득해 선거법 위반은 적용하되 불구속기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공소시효 만료 며칠 전에 재가를 받았다. 그런데 50여일 뒤 혼외자 사건이 터졌고 나는 검찰을 떠났다. 그때 청와대가 국정원을 개혁하는 게 정도였으나 거꾸로 갔다.”
 
채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던 2017년 5월 말 변호사로 개업해 일하고 있다. 현 정부 및 윤석열 후보자와의 친밀한 관계가 소문이 나면서 수입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고 한다.
 
“오늘의 윤석열을 만든 9할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었죠. 거기가 발화점이었어요. 그 사건 수사 도중 국정원 직원을 승인 없이 체포한 것을 두고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갈등을 빚었고, 그게 그해 10월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에서의 이른바 항명 사태로 번지며 ‘검화(檢禍)’가 된 거죠. 만약 항명과 좌천이라는 키워드,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단진 발언이 없었더라면 문재인 대통령의 눈에 띄어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2년 만에 검찰총장 후보자까지 오르는 초(超)스피드 발탁이 가능했을까요. 그가 지나온 궤적을 되짚어보면 그 또한 지독한 운명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검찰 고위 간부)
  
‘때가 되면 윤석열을 총장 시키겠구나’
 
윤석열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두텁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에 잠시 몸을 담았던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여당 중진 의원이 전화해 ‘대통령이 검찰총장 자리에 윤석열을 보임하겠다고 하는데 괜찮은 거냐’고 물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고검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하면 검찰 조직이 붕괴할 것이라며 반대 이유를 댔다. 나중에 그 의원이 ‘당시 대통령이 몇번이나 정말 안 되느냐고 묻더라’고 말해 ‘때가 되면 윤석열을 총장 시키겠구나’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윤석열은 칼잡이, 강골·강성 검사로 알려져 있다. 그를 잘 아는 검찰 간부들은 의외의 평가를 한다. “마음이 여리다”는 것이다. 물론 약한 것과는 다르다는 전제를 달아서다. 상사의 부당한 압력에는 굴복하지 않지만 부하 검사 의견은 잘 들어주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윤석열은 기억력이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하다고 한다. 채동욱 전 총장은 “아주 치밀하고 해박한 법이론가”라고 평한다. 다른 지인은 “한번은 미국의 긴즈버그 대법관 얘기를 하는데 살아온 여정, 요소요소에 등장하는 법무부 차관·대법원장 등의 영어 이름을 술술 기억하고 얘기해 깜짝 놀랐다”며 “긴즈버그 책을 세 번 읽고 영화까지 본 내가 부끄러웠을 정도”라고 말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정농단 사건 때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올해 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표가 됐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수위를 달리며 대권을 노리는 잠룡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기자가 ‘윤석열의 총장 지명을 보고 옛날 생각(국정원 댓글 사건)이 나서 전화했다’고 하자 황 대표는 “건강 괜찮아요, 지금은 어디에 있어요”라고 근황을 묻더니 곧 회의장에 들어가야 한다며 끊었다. 예의 신중한 스타일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원세훈 사건을 원칙대로 수사하라”며 박 대통령의 의중을 채 전 총장에게 전달했던 곽상도 전 민정수석에게서 들어야 했다. 댓글 사건 후 2개월 만에 허태열 비서실장과 함께 전격 교체됐던 그는 “그해 6월 중순 윤석열 수사팀의 발표문을 보면 선거 개입에 관여한 댓글 60여 개뿐”이라며 “황 장관은 그 정도로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세 차례 보완지시를 했고 나도 선거법 적용과 구속은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씨 건은 1심 무죄, 2심 유죄, 3심 무죄 취지 파기환송으로 엇갈린 것도 그 때문인데 그 사이 정권이 바뀌고 원씨의 선거 개입 자료가 나오면서 유죄가 최종 확정된 것”이라며 “처음 수사 때보다 기소 후에 더 많은 증거가 확보된 특이한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인 곽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다. 문 대통령 아들과 딸의 비위 의혹을 줄기차게 추적, 폭로하며 저격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곽 의원은 윤석열에 대해선 “칼잡이는 원래 권력이나 재벌에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수사를 할 때 쓰는 표현인데 지금은 (적폐수사의) 앞잡이 아닌가”라고 날을 세웠다. 경찰 단계에서 수사를 맡았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수사과정에서 축소와 은폐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현재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이다. 김 전 청장은 1·2·3심 모두 무죄를 받고 재기를 모색중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모양새만 달라져 현재도 진행형이다. 친문(親文) 핵심인 김경수 지사는 댓글 조작을 통한 여론 조작 가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보석으로 풀려나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마약같은 대선 여론 조작의 치명적 유혹, 비장한 각오로 끊어야 한다. ‘내로남불’,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오피스텔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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