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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참전 에디오피아 마라토너, 한국 두 번 살려준 사연

Focus 인사이드 
 
1953년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활동 중인 에티오피아군. 흔히 강뉴 부대라고 불린다. [사진 wikipedia]

1953년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활동 중인 에티오피아군. 흔히 강뉴 부대라고 불린다. [사진 wikipedia]

 

15명 참가 국제대회 열린 한국
올림픽 2연패 우승자 전격 참가
도쿄 올림픽 뺏긴 일본 따라와
6·25 전쟁에서 도왔던 베테랑

이제는 굳이 올림픽·축구 월드컵·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같은 주요 국제대회가 아니어도 국내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를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됐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비즈니스적인 이유로 일부러 우리나라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최고의 스타를 한국에서 본다는 것은 상당히 드물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도 종종 벌어졌다. 예를 들어 지난 1976년에 당시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무하마드 알리가 방한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의 도착 장면이 TV로 생중계되고 김포공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가 벌어졌을 정도였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스타를 직접 보는 것 자체가 커다란 행사였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최초로 2시간 20분대 벽을 돌파하여 우승한 직후의 아베베 비킬라. 그는 4년 후 도쿄 올림픽도 석권하며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이루었다. [사진 wikipedia]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최초로 2시간 20분대 벽을 돌파하여 우승한 직후의 아베베 비킬라. 그는 4년 후 도쿄 올림픽도 석권하며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이루었다. [사진 wikipedia]

 
그런데 6·25 전쟁의 상흔을 제대로 치유도 못 하고 혁명과 쿠데타의 혼란기를 거치며 보릿고개가 일상이었을 만큼 어려움을 겪던 1960년대에 지금까지도 전설로 내려오는 당대의 슈퍼스타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공식 대회도 아닌 그저 그런 삼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민망했던 한국 체면을 살려줬다.
 
주인공은 마라톤 역사의 전설인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였다. 그는 사상 최초로 2시간 20분 벽을 돌파했으며, 올림픽 최초로 마라톤 종목을 2연패(1960 로마, 1964 도쿄) 한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그러한 최고의 인물이 1966년 10월 30일, 당시 국제 스포츠계의 변두리와 다름없는 한국에서 개최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1966년 10월 '9.28 서울수복 기념 제3회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경인가도를 달리고 있다. 아베베 뒤로 일본 선수도 따라붙고 있다. [증앙포토]

1966년 10월 '9.28 서울수복 기념 제3회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경인가도를 달리고 있다. 아베베 뒤로 일본 선수도 따라붙고 있다. [증앙포토]

 
'9.28 서울수복 기념 제3회 국제 마라톤 대회'였는데, 6·25전쟁 당시 서울 탈환의 감격을 기리고자 1964년 창설된 대회였다. 코스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유엔군이 상륙한 레드비치 인근의 인천역 광장에서 출발해 경인가도를 따라 중앙청(현재 철거)에 이르는 코스였다. 하지만 명색이 국제 대회임에도 참가 선수가 15명에 불과했고 외국 선수는 아베베를 빼면 일본 선수 2명, 미국 선수 1명뿐이었다.
 
대회 조직 위원회에서는 여러 나라에 초청장을 돌렸으나 반응이 워낙 시큰둥해서 참가에 응한 이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당시 세계 랭킹 2·4위인 일본의 키미하라켄지(君原健二)와테라사와토루(寺澤徹)도 아베베가 전격적으로 참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부랴부랴 출전했을 정도였다. 덕분에 비록 인원은 적었지만, 세계 최고 수준 선수가 경쟁을 벌인 대회가 되었다.
 
아베베가 1964년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순간. [중앙포토]

아베베가 1964년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순간. [중앙포토]

 
아베베가 이처럼 변방에서 개최된 이름도 없는 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우리나라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1951년 에티오피아군 제2진으로 파병되어 1년간 6·25전쟁에 참전한 용사였다. 당시에 그는 19살이어서 최전선에 투입되지 않고, 부대장 호위병으로 근무했지만 맞은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고 이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런 인연 덕분에 아베베는 초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한국에서 개최된 무명의 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연도에 늘어선 많은 관중의 환호 속에 2시간 17분 4초라는 당시로써는 대단히 좋은 기록으로 우승해 최고 스타임을 입증했다. 그다지 의미가 크지 않은 대회였음에도 이처럼 그는 최선을 다해 달렸다.
 
주한 에티오피아군이 전쟁고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운용한 보화원의 모습 [중앙포토]

주한 에티오피아군이 전쟁고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운용한 보화원의 모습 [중앙포토]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전투병 1개 대대를 한국에 파병해 1965년까지 주둔시켰다. 당연히 에티오피아에서 한국과 그들의 부대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다. 또한 대민 봉사에도 열성적이어서 주둔지 인근에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운영했고,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하사한 컵을 대한체육회에 제공해 빙상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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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런 과거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은 시대가 됐다. 그렇다 보니 종종 우리나라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에티오피아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실이 있었나 하고 놀라는 이들까지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우리의 지난 역사다. 그래서 더욱 기억하고 돼 내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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