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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 한국에도 컨트롤 타워와 전략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달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 일행을 만났다. 루이지애나의 석유화학에 31억 달러를 투자한 데 대한 ‘장사꾼 대통령’다운 통 큰 보답이었다. 국내 일부에선 ‘신 회장은 30분, 문재인 대통령은 2분’이라며 트럼프와 면담 시간을 비교하는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면담에서 정작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긴 호흡으로 롯데 면담한 트럼프
사드 보복 위로와 대중 무력시위
한국의 정책은 내년 총선에 초점
“경제현실 외면하는 정부가 문제”

트럼프 옆에 배석한 미국 측의 유일한 인사가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란 점이다. 경제 참모가 아니라 왜 외교안보 최측근이 배석했을까. 그 비밀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있다. 롯데는 성주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내주면서 중국으로부터 조(兆) 단위의 피해를 본 대표적 기업이다. 또 미·중 보복 관세로 이날 전 세계 증시는 2~3% 급락했다. 트럼프의 신 회장 면담은 사드 보복에 대한 위로이자 중국에 대한 경고나 다름없다. 전 세계 기업을 향해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압박하는 고도의 무력시위다. 사소한 사진 한장에도 미국 컨트롤 타워의 치밀한 전략과 큰 그림이 어른거린다.
 
롯데는 2012년부터 유화 공장 증설을 검토했다. 오랜 고민 끝에 셰일가스 혁명이 일어난 미국을 점 찍었다. 에틸렌 생산원가가 40%나 내려가고 거대한 판매시장을 품고 있어 기대수익률이 가장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롯데는 2016년 루이지애나의 엑시올(Axiall)을 인수하려다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한국 검찰이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비자금 증거를 찾는다며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서자 모든 금융기관의 대출 창구가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좌절됐던 대미투자가 올해 3년 만에 다시 이뤄진 것이다. 한국에는 이처럼 3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도 없다.
 
외교 안보도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가 있는지 의문이다. 오사카 G20을 앞두고 한·일 정상회담을 물밑에서 추진해온 인사들은 일본의 강경 반응에 놀랐다고 한다. 일본 측이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 이후에도 두 가지 대목에 상당한 실망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하나는 일본의 레이와(令和) 시대가 개막하는 잔칫날에 한국 측이 강제 집행을 신청한 것이다. 또 하나는 이낙연 총리가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의 세계무역기구(WTO) 항고에서 승소한 공무원들을 불러 “쾌거의 주역”이라며 공개적으로 오찬을 한 것이다. 조용히 비공개로 격려하고 포상해도 될 일인데 상대방의 쓰라린 상처에 소금을 뿌린 셈이다. 이 총리는 도쿄 특파원과 한일의원 연맹 수석부회장을 지낸 지일파이자 정부의 강제징용 태스크포스(TF)의 총책임자다. 일본 측은 “한국의 최고위층 컨트롤 타워답게 패소한 일본 정부에도 좀 더 전략적으로 신경을 써주었다면…”이라고 꼬집었다.
 
경제 쪽의 컨트롤 타워도 허울 뿐이기는 마찬가지다. 1분기 마이너스 0.4% 성장에 이어 2분기 전망도 캄캄하다. 당장 4월 수출부터 전년동기대비 2% 감소, 5월엔 9.4%나 줄었다. 반도체 가격은 날개 없이 추락 중이다. 이런 마당에 “하반기나 내년에는 좋아질 것”이라는 마취 주사에다 재정투자만 확 늘리면 경제가 좋아질까?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반으로 끌어내리면서 내놓는 공통분모가 있다. 보고서 맨 앞의 “수출과 투자 부진으로…”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수출과 설비투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경제 회복도 어렵다는 뜻이다. 수출이야 글로벌 수요에 좌우되는 만큼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투자 역시 청와대가 대기업 CEO들을 불러 약속어음을 받거나 제조업 르네상스 같은 이벤트를 벌인다고 늘어나는 게 아니다. 투자는 기대수익률과 리스크에 의해 좌우되는 법이다. 상장기업들의 1분기 영업이익이 37%나 감소했고 올해 예상 수익률도 20~30%씩 쪼그라드는 판에 누가 용감하게 설비투자에 나서겠는가?
 
제대로 된 경제 컨트롤 타워가 있다면 왜 1분기 해외 직접투자가 사상 최대이고 국내 설비투자 감소율이 21년 만에 최악인지부터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기업가 정신의 위축이 아니라 국내 경제환경이 나빠진 것이다. 경제 회복의 첫 단추도 최저임금·주 52시간제 등 경제에 부담을 주는 잘못된 정책의 철회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 의욕과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트럼프가 집무실에서 롯데 회장을 만나는 시대에 한국에선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만나겠다”는 게 뉴스가 되고 있다. 김 실장은 자신의 발탁 배경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을 국민께 잘 설명하라는 뜻”이라 전했다. 또다시 정책 실패의 원인을 홍보 실패에서 찾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실제로 요즘 정책들은 내년 총선에 맞춰진 분위기다.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며 국익을 따지는 컨트롤 타워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기야 얼마 전 조사에서 국내 경제학자들의 84%가 “지금은 위기 또는 위기 직전”이라며 “경제 현실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정부의 존재 자체가 더 큰 위기”라고 진단했을 정도이니….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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