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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6·25 때 미그기와 공중전 조종사들, 달나라 우주인 되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6.25전쟁에 항공모함 제트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낙하산 탈출까지 겪은 역전의 용사다. [NASA]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6.25전쟁에 항공모함 제트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낙하산 탈출까지 겪은 역전의 용사다. [NASA]

오늘로 6·25전쟁 발발 69주년을 맞는다. ‘잊힌 전쟁’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한반도 남쪽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70년 가까이 평화를 유지하는 길을 열고 억지력의 영감을 불어 넣어준 전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은 전쟁 참전 용사들이 당시 올바르고 정의로운 결정을 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당시 미국은 엘리트 군인들을 파병해 전쟁을 이끌었다. 초기에는 점령지 일본에 머물며 평화 무드에 젖었던 2급 부대가 참전했지만 이내 최고의 ‘무골’들을 보냈다. 주요 인물의 면면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 파병한 조종사 중에는 60년대 우주시대 개척한 대표적인 우주항공 분야 엘리트들이 여럿 보인다. 이들은 처절한 전쟁터에서 적기와 공중전을 벌였고, 폭격이나 정찰을 했으며, 대공포에 맞는 아찔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달에서 촬영한 동료 우주인 부즈 올드린의 모습. 올드린도 6.25전쟁 참전용사로 미그-15기를 2대나 격추했다. [NASA]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달에서 촬영한 동료 우주인 부즈 올드린의 모습. 올드린도 6.25전쟁 참전용사로 미그-15기를 2대나 격추했다. [NASA]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접근해 달 착륙선 이글 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내렸던 우주인 닐 암스트롱(1930~2012년)은 참전 용사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미 해군 조종사로서 6·25 전쟁에 참전했다. 미군 최초의 항공모함용 제트 전투기인 그루먼 F9F 팬더를 몰고 항모 이식스 함에서 78회 출격했다. 1951년 9월 3일엔 원산 근처로 저공 폭격 임무에 나섰다가 전투기가 대공포에 맞으면서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해군 헬기에 구출됐다.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항공공학을 전공하던 퍼듀대를 졸업하고 미 해군 시험 조종사로 일하다 아폴로 프로젝트의 우주인으로 발탁됐다.  
미국 최초의 우주인인 존 글렌이 6.25전쟁 참전 당시 몰았던 F-86 세이버 전투기. 동체에 '미그기에 미친 해병'이라고 써붙인 게 보인다. 그는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의 이름도 전투기에 적었다. [위키피디아]

미국 최초의 우주인인 존 글렌이 6.25전쟁 참전 당시 몰았던 F-86 세이버 전투기. 동체에 '미그기에 미친 해병'이라고 써붙인 게 보인다. 그는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의 이름도 전투기에 적었다. [위키피디아]

암스트롱과 함께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내렸던 버즈 올드린(89)도 미 공군 소속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 제트기를 몰고 모두 66회 출격했다. 그는 꼬리를 물고 물리는 치열한 공중전을 벌여 2대의 미그-15 전투기를 격추하기도 했다. 웨스트포인트 출신인 그는 귀국한 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항공공학을 공부한 다음 우주 프로젝트에 발탁됐다.  
미국인 최초로 우주 궤도에 올라 미국의 자존심을 살린 존 글렌(1921~2016년)도 6·25전쟁에 참전했다. 미 해병대 소속으로 제트 전투기인 F-86 세이버를 몰고 적군의 미그-15기 3대를 격추하는 전과를 거뒀다. 글렌은 자신이 모는 세이버 전투기 동체에 ‘미그기에 미친 해병’이라고 페인트로 커다랗게 써넣고 다녔으며, 부인과 아이들의 이름도 기체에 적었다. 그는 2차대전에도 조종사로 참전했다.  
존 글렌은 1998년 77세의 나이로 우주왕복선을 타고 다시 우주로 향했다. [NASA]

존 글렌은 1998년 77세의 나이로 우주왕복선을 타고 다시 우주로 향했다. [NASA]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초음속 시험기 비행사로 일했으며 1957년에는 최초의 미 대륙 횡단 초음속 비행에 성공했다. 그 뒤 우주비행사로 발탁돼 1962년 지구 궤도에 오른 최초의 미국인이 됐다. 나사(미 항공우주국)에서 은퇴한 그는 정계에 투신해 1974년부터 1999년까지 민주당 소속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봉사했다. 77세였던 1998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에 올라 다시 한번 우주로 향했다. 최고령 우주인 기록이다. 그의 용기와 도전, 그리고 헌신은 두고두고 기억된다.  
6·25 전쟁 참전 미국 조종사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인물은 제임스 밴 플리트 주니어(1925~1952년) 공군 대위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 겸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1892~1992년) 대장의 외아들이다. 1952년 4월 4일 B-26 폭격기를 몰고 적진 깊숙이 폭격에 나섰다가 실종됐으며 1954년 전사로 결정됐다.  
제임스 밴플리트 주니어 대위. [www.koreanwar.org]

제임스 밴플리트 주니어 대위. [www.koreanwar.org]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으며 6·25전쟁 막바지에 대통령에 당선돼 종전을 이끌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년)의 자식인 존 아이젠하워(1922~2013년)도 중대장으로 참전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영국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연기파 배우 마이클 케인. [중앙포토]

영국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연기파 배우 마이클 케인. [중앙포토]

영국에선 ‘배트맨 비긴즈’ '머나먼 다리‘ ’나우 유 시 미‘ 등에 출연한 연기파 배우이자 영국인이 사랑하는 국민배우인 마이클 케인(86)도 보병으로 참전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그는 참전하기 전까지는 공산주의에 호감을 느꼈지만, 전쟁을 겪고 귀국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6·25전쟁에서 싸운 사람은 유명 인사만 있는 게 아니다. 전혀 모르던 나라의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민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숱한 무명용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숱한 사람이 나섰고, 상당수가 희생됐다. 지금 우리가 공기처럼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언론 자유, 그리고 번영은 이런 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졌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년은 6·25전쟁 70주년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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