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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대통령 관련 낙서범 입건한 경찰, 5공 시대인가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딱 훈방 감이지 입건은 뭔 입건이야. 대통령 물러나라는 내용이 싫은 거지. 이런 게 과잉 충성이야!” 지난 7일 밤 대구의 한 경찰서 지구대 담벼락에 ‘문(재인), 하야’라고 낙서한 60대 남성을 대구 동부경찰서가 ‘공용기물 손괴’ 혐의로 입건했다. 수사 경력 30년 넘은 베테랑 전직 경찰 과장에게 “어떻게 보나”고 물으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낙서는 대개 훈방이다. 기껏해야 경범죄다. 대부분 잡지도 않는다. 공용기물 손괴? 담을 무너뜨린 것도 아닌데….”
 경찰도 뭔가 꺼림칙했는지 “과거에도 관공서 담에 ‘삼천포 사랑’ ‘나 니들 싫어’ 같은 낙서를 한 이들을 입건한 사례가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런 사례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전직 경찰 과장 말이다. "낙서범 잡겠다고 CCTV 찾아 돌리고 인력을 투입할 만큼 경찰은 한가하지 않다. 낙서를 자주 해온 상습범이거나 전과자라면 모르지만, 초범인데 입건했다면 이례적인 일이다. 공용기물 손괴는 핑계고, 대통령에 ‘불경죄’를 저지른 자니까 입건했다고 보는 게 더 상식에 부합한다." 게다가 경찰은 “낙서를 찍은 사진을 달라”는 기자들 요청엔 “민감한 사항”이라며 거부했다. 기자들이 현장에 가자 낙서는 이미 회색 페인트로 지워진 뒤였다. 사진이 보도되면 청와대 심기가 불편해질까 봐 제공을 거부하고, 낙서를 서둘러 지운 건 아닐까.

훈방하면 될 사안 이례적 입건
대통령 비판 학생엔 내사로 압박
인권 강조한 현 정부 방향과 맞나

 지난 4월 3일 민주노총은 탄력 근로제 확대를 막겠다며 국회에 난입해 의사당 담장을 무너뜨리고, 진압에 나선 경찰들의 따귀를 때리는 등 전방위로 폭력을 행사했다. 다친 경찰관만 6명에 달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연행된 노조원 25명을 전원 석방했다. 국회 담장을 무너뜨리고 (명백한 공용기물 손괴다) 경찰을 팬 사람들은 풀어주면서 경찰서 담장에 세 글자 낙서를 한 사람은 입건한 것이다. 친정권 노조의 ‘중범죄’엔 솜방망이로, 정권과 무관한 시민의 ‘경범죄’엔 도끼로 대응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이 인권과 법치를 그렇게도 강조하는 경찰의 현주소인가. 이뿐 아니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에 북한의 선전 기법을 흉내 내 ‘김정은이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으로 문 대통령을 풍자한 대자보를 전국 450곳에 붙였던 대학생 모임 ‘전대협’(1987∼93년 활동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와는 무관한 단체) 관계자들도 보이지 않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은 이들을 수사할 근거를 찾을 수 없어 겉으론 액션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은 물밑에선 여전히 이 사건의 ‘내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사건은 경찰 수뇌부 차원에서 강력 대응 지시가 내려간 중요 사안이다. 하지만 전대협을 수사할 혐의를 찾을 수 없어 경찰이 전전긍긍하는 와중에 전대협이 5월 23일 문 대통령 얼굴을 할리우드 악역 캐릭터와 합성해 풍자한 전단을 전국에 살포했다. 당시 경찰은 (수뇌부로부터) ‘대자보 사태에 제대로 대응 안 한 결과’라며 호되게 질책받았다고 한다. 경찰이 석 달 가까이 내사를 종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전대협 측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 자체가 큰 압박이 되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가 있는 586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 인사들은 학생 시절 "대통령을 얼마든지 비판·풍자해도 되는 민주 세상을 만들겠다”고 외쳤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집권을 한 세상에서 ‘하야’ 낙서를 했다고 범죄 용의자로 입건되고, 대통령 패러디 대자보를 붙였다고 경찰이 집으로 쳐들어오는 사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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