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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헨리·승현···'21년 숨바꼭질' 정태수 아들의 신분세탁

해외 도피 중이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씨(55)씨가 두바이에서 체포돼 2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뉴스1]

해외 도피 중이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씨(55)씨가 두바이에서 체포돼 2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뉴스1]

다니엘 승현, 승현, 헨리, 다니엘. 
 
다니엘 승현, 승현, 헨리, 다니엘. 한보그룹 회장의 4남인 정한근(55)씨가 검찰과 경찰, 인터폴을 따돌리기 위해 사용해온 이름이다. 그는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잠적한 지 21년 만에 파나마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돼 조사받고 있다.

검·경·인터폴까지 속여
미국·캐나다·에콰도르·파나마 공조
320억원 해외도피 자산 환수 쟁점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손영배)은 지난해 8월 정씨에 대한 소재 추적을 시작한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씨는 한보그룹 자회사의 자금 323억원을 횡령해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한 차례 검찰 조사를 받고 1998년 해외로 도주했다. 수사기관은 20년 넘도록 그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캐나다 거주 류모씨의 정체 
검찰은 정씨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가족에서 실마리를 잡았다. 검찰은 정씨 아내의 출입국기록을 기초로 캐나다 벤쿠버에 정씨의 아내가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씨 가족이 캐나다 거주를 위해 제출한 서류에는 류모(55)씨의 이름이 스폰서로 기재돼있었다. 당시 검찰은 류씨가 캐나다 시민권자로 등록된 것을 보고 허탕쳤다고만 생각했다. 정씨의 처가 재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류씨의 한국 주민등록과 출입국기록 조회 이후 상황이 반전됐다. 류씨는 지난해 9월 검찰의 소재 추적이 진행되던 당시 국내에 거주하고 있었고 출입국기록상 캐나다에 간 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또 검찰은 국내에 거주하고 있던 류씨가 정씨의 고교 동창인 사실을 확인했다. 모든 증거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캐나다 시민권자이자 유전 사업가 
검찰은 캐나다 시민권자로 등록된 류씨가 사실은 신분세탁을 한 정한근이라고 확신하고 추적에 들어갔다. 각기 다른 4개의 이름이 발견됐다. 정씨가 2007년과 2008년 각각 캐나다와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고 2011년과 2012년 차례로 미국과 캐나다의 시민권을 취득할 때 각기 다른 영문 이름을 등록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정씨가 2007년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펠리즈(멕시코 인근 국가) 등 전 세계를 떠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씨가 류씨의 이름으로 살면서 유전개발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의 가족들이 캐나다에서 살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고 해외 여러 기관이 도와주면서 극적으로 소재 파악에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18일 에콰도르에서 온 연락 "이륙 1시간 전"
정씨의 새로운 이름을 토대로 미국과 캐나다의 출입국기록을 분석한 결과 2017년 7월 정씨가 에콰도르로 출국한 사실을 확인했다. 재입국 기록은 없었다. 정씨를 쫓던 검찰은 에콰도르까지 국제공조 범위를 넓혔다. 대검 국제협력단은 지난 4월 에콰도르로 날아가 현지 경찰·검찰·대법원을 모두 방문했고 정씨의 출국 사실이 확인되면 즉시 한국에 알려주기로 하는 약속을 받았다.  
 
지난 18일 에콰도르 내무부는 정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가기 위해 파나마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는 사실을 한국 검찰에 통보했다. 정씨가 탑승한 파나마행 비행기 이륙 1시간 전이었다. 검찰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 한국지부에 연락해 파나마 이민청에 정씨의 수배 사실을 알렸다. 파나마 이민청은 18일 정씨를 파나마 공항 내 보호소에 구금한 뒤 이를 한국대사관에 알렸다. 그 이후 정씨는 브라질과 두바이를 거쳐 국내에 송환됐다.
1997년 검찰 조사 후 대검청사를 걸어나오고 있는 정한근씨. [중앙포토]

1997년 검찰 조사 후 대검청사를 걸어나오고 있는 정한근씨. [중앙포토]

검찰, 정한근 통해 정태수 찾는다
검찰은 과거 발부된 구속영장을 곧바로 집행해 정씨를 구금한 뒤 관련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조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예세민)는 정씨가 21년 전 어떤 경로로 해외로 출국했는지와 그간의 도피행적을 모두 추궁하고 있다. 정씨는 조사에 상당 부분 협조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정씨의 신병 확보에 집중해왔다면 이제부터는 해외에 빼돌린 수백억원을 되찾아 오기 위해 수사력을 모을 예정이다"고 밝혔다. 
 
검찰은 2008년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이전에 기소해놓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횡령 혐의 외에도 밀항 등 도피 과정에서의 범죄 혐의를 추가해 정씨를 기소할 예정이다. 또 검찰은 정씨를 조사해 2007년 해외로 도주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생사와 소재지 등도 파악할 방침이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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