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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마트폰은 잠수중"···30만 '공시' 출제자 희로애락

줄여서 ‘공시’라고 불리는 5ㆍ7ㆍ9급 공무원시험. 지난해 응시한 인원만 30만명에 달한다. 이 시험 때문에 서울 노량진은 ‘공시촌’이 됐을 정도다. 선진국에서도 특이한 현상으로 주목한다. 그래서 공시 필기ㆍ면접시험 문제를 만드는 ‘출제자’를 만나봤다. 서유진(38) 인사혁신처 시험출제과 사무관이다.
서유진 사무관. [인사혁신처]

서유진 사무관. [인사혁신처]

서 사무관 역시 삼성증권 인사팀에서 일하다 2015년 경력 공채로 공직에 입문한 경우다. 지난 1일 출제 합숙소에서 퇴소한 뒤 24일 재입소를 앞둔 사이 그를 인터뷰했다. 그러니까 이 기사는, 서 사무관 스스로 업무에 대해 평가한 ‘채점기’다. “제 점수는요?”
합숙, 또 합숙…. <0점>    
출제 과정은 ‘보안’의 다른 말, 합숙의 연속이다. 공시 필기시험 문제는 경기도 과천 국가고시센터에서 만든다. 공시가 연중 이어지기 때문에 1년 중 140일은 여기서 출제위원 포함 200여명과 합숙하며 지낸다. 입소할 때 출제위원이 가장 먼저 받아드는 서류는 ‘보안 각서’다.
 
‘시험에 관해 알게 된 일절 사실을 누설하지 않겠다. 누설에 대한 모든 책임은 출제위원에게 있다.’
 
그만큼 보안에 민감하다.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전자제품 소지를 일절 금지한다. 누군가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한 ‘템플 스테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올 초엔 어머니가 맹장 수술받은 사실도 합숙장에서 나와서야 알았다. 답답해서 ‘0점’ 준다.
합숙에서 낙을 찾는다면? <20점>
짧으면 2~3일, 길면 보름까지 이어지는 합숙. 출제위원과 함께 문제를 내고, 풀고, 검수하고…. 합숙 내내 일찍 끝나면 오후 10시다. 일이 많을 땐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그나마 잠자리에 누워도 ‘문제에 오류는 없을까, 띄어쓰기는 맞았을까, 인쇄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느라 잠을 뒤척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출제위원도 비슷한가 보다. “방금 문제에 틀린 점을 찾았다. 고쳐야 한다”며 새벽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기도 과천 국가고시센터 전경. 공시 출제위원은 이곳에서 합숙한다. [인사혁신처]

경기도 과천 국가고시센터 전경. 공시 출제위원은 이곳에서 합숙한다. [인사혁신처]

유일한 낙? 과자다. ‘배달의 민족’도 없어 군것질하는 게 전부다. 가끔 합숙 중 출제위원 생일이 있을 때도 케이크를 구할 수 없어 초코파이 케이크로 파티한다. 그러니 합숙 마지막 날 “여기서 있었던 일 모두 잊으시고 바깥에서 행복하세요. 여러분을 기다리는 스마트폰이 있습니다”라고 퇴소를 공지하면서 꼭 나 스스로 하는 얘기로 들릴 때가 있다. 군 생활은 못 해봤지만, ‘전역’의 낙을 자주 느낀다는 것은 장점(20점)!
부담스러운 기대. <40점>
공시에 거는 국민의 기대치는 정말 높다. 정확하면서, 공정해야 한다. 신속하면서, 불편은 없어야 한다. 민간기업에서 채용할 땐 이의 제기 자체가 없었다. 응시자들이 떨어진 이유를 모르더라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공시는 다르다. 문제 자체에 대한 항의부터 시험 진행 과정에서 느꼈던 작은 불편함까지 국민 신문고를 수시로 두드린다. 다만 합숙하면서 꼼꼼히 챙긴 덕분인지 큰 문제 없이 넘어갈 때가 대부분이다. ‘악플’보다 나쁜 게 ‘무플’이라고 하지 않나. 높은 기대는 애정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40점 준다.
촘촘한 면접. <60점>
5급 공무원 시험 면접 문제를 확인하고 있는 서유진 사무관. [인사혁신처]

5급 공무원 시험 면접 문제를 확인하고 있는 서유진 사무관. [인사혁신처]

특히 면접 질문을 준비하면서 출제자로서 희열을 느낀다. 공시 면접은 철저히 시스템에 의해 굴러간다. 면접위원 상당수가 모의 면접을 시행한다. 면접관으로서 연습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질문도 굉장히 촘촘하게 짠다. 응시자의 1차 예상 답변에 대한 2차, 3차 후속 질문까지 시나리오를 만든다. 직무를 잘할 수 있느냐보다 공무원으로서 기본 자질과 소양, ‘공직 마인드’가 있는지 가려내기 위해서다. 공시와 민간 채용이 가장 다른 점이기도 하다.  
 
‘관리의 삼성’조차 면접은 면접관의 자율성+전문성에 기댄다. 공시는 최소한 면접에 관해선 민간보다 ‘복불복’일 경우가 적다. 이렇게 촘촘하게 만들기에 떳떳하지만, 그만큼 준비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라 60점 준다.
'공시'의 의미. <80점>  
공무원시험 필기시험을 감독하기 위해 입장하는 감독관. [인사혁신처]

공무원시험 필기시험을 감독하기 위해 입장하는 감독관. [인사혁신처]

대중이 공시를 바라보는 시선은 참 양면(兩面)적이다.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장이라며 ‘배우자감’ 직업 1순위로 선호한다. 공무원 하겠다는 자녀를 뜯어말리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자신과 관계없는 공시생을 두고선 “민간보다 비생산적인 일에 뛰어든다” “팔딱거리는 꿈이 없다”고 낮춰보기도 한다. 세계적인 석학, 투자자조차 한국을 방문해 청년들이 공시에 매달리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으니까.
 
그런 우려가 서운하기도 하다. 공무원을 뽑는 내 일의 의미엔 100점을 주고 싶지만, 아무 생각 없이 공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에 대한 우려는 이해하기에 80점으로 내린다.
‘좋은 세상’ 만드는 출발점. <100점>
공시를 출제ㆍ관리하는 일을 한다고 하면 종종 주변에서 장난스럽게 “문제 좀 알려줘” 묻기도 한다. 물론 알려줄 수 없지만, 속으로 으쓱하기도 하다.
 
하지만 보람은 좀 더 묵직한 데서 온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란 건 옛날얘기다. 시키는 일만 하는 공무원, 변화하지 않는 공무원은 살아남을 수 없다. ‘사명감’을 촌스럽게 여기는 시대에 아직도 사명감 갖고 일하는 공무원이 많다. 그런 공무원을 뽑는 일에 어찌 나 또한 사명감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도 합숙소 짐을 싸며 스스로 되뇐다. ‘어떤 사람이 공직에서 일하느냐는, 우리 사회가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느냐 결정짓는 출발점이다’. 그래, 역시 내 일은 100점짜리다.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세종시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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