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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라길∼송해길∼힙지로, 딱 한잔씩 ‘선술집 로드’ 순례

박찬일의 음식만행(飮食萬行) - 부활하는 선술집
서울 순라길의 선술집 '뚱순네'. 모든 안주가 공짜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양껏 먹으면 된다. 술은 소주, 막걸리 한 잔에 1000원씩. 내부가 비좁은 데다 손님이 수시로 들락거려 오래 있을 수도 없다. 김경빈 기자

서울 순라길의 선술집 '뚱순네'. 모든 안주가 공짜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양껏 먹으면 된다. 술은 소주, 막걸리 한 잔에 1000원씩. 내부가 비좁은 데다 손님이 수시로 들락거려 오래 있을 수도 없다. 김경빈 기자

‘술청 앞에 서서 간단히 서서 마실 수 있는 술집.’ 
국어사전에서는 ‘선술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경재 선생이 쓴 『서울정도 육백년』은 목로주점이 선술집이라고 한다.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 초입에 만들어져서 1960년대까지 활발하게 장사한 것으로 나온다. 
 
선술집은 크게는 목로주점처럼 서민적인 대폿집을 의미하지만, 원래는 ‘서서’ 마셔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서서 마시는 진짜 선술집은 거의 명맥이 끊겼다. 지방 도시나 소읍에나 가야 간혹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은 유명해진 전남 구례의 ‘동아식당’도 선술집이었다. 가게 입구 술청에 서서 막걸리나 소주 한잔을 컵으로 마실 수 있었다. 동네 구멍가게가 그나마 선술집 몫을 했다. 번데기 통조림이나 벽에 붙어 있는 마른안주를 북 뜯어서 목을 축였다. 
 
 국내 최초 타치노미 을지로 ‘전기’
요즘 을지로는 '힙지로'로 불린다. 젊은이의 힙한 문화를 즐길 수 있어서다. 최근 을지로 3가 인쇄소 골목 2층에 일본풍 선술집 '전기'가 문을 열었다. 김경빈 기자

요즘 을지로는 '힙지로'로 불린다. 젊은이의 힙한 문화를 즐길 수 있어서다. 최근 을지로 3가 인쇄소 골목 2층에 일본풍 선술집 '전기'가 문을 열었다. 김경빈 기자

서울 을지로 3가의 인쇄소 골목. 1층에는 인쇄 기계가 철커덕거리며 돌아간다. 2층에 선술집이 있다. 정갈한 인테리어가 보통 선술집 같지는 않다. 생긴 지 한 달. 벌써 팬이 생겼다. 선술집 장르의 재등장이라고나 할까.  
“열에 일곱은 ‘의자가 없다’고 하면 도로 나가십니다. 대신 셋은 단골이 되시는 거죠.” 
주인 김현기(39)씨의 말이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다가 자유로워지고 싶어 퇴사하고 전 세계의 술집을 돌아다녔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서서 먹는 술집 문화의 매력에 빠졌다. 
 
“우리 술 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끝장을 보는 것이라고들 하잖아요. 외국 나가 보니 의자 없이 서서 간단하게 마시는 문화가 있더군요.” 
결정적으로 일본에서  ‘타치노미(たちのみ)’라는 장르를 체험했다. 누구나 편하게 들러서 싼 안주에 한두 잔 마시는 재미가 있었다. 
“오사카(大阪)에 가보니 타치노미 천국이더군요. 혼자 마시는 사람도 많고요. 무엇보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분위기가 새로웠어요.” 
 
그의 말대로 ‘국내 최초의 타치노미’라는 가게를 차렸다. 상호는 ‘전기(電氣)’다. 아시아에 전기가 처음 들어왔던 시기에는 ‘전기’라는 말이 새로운 충격의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한국에 선술집 문화를 들여온 충격적인 집으로 알려지고 싶다는 뜻이다. 
을지로 선술집 '전기'의 소힘줄 된장조림. 김경빈 기자

을지로 선술집 '전기'의 소힘줄 된장조림. 김경빈 기자

‘힙지로(힙한 을지로라는 뜻의 조어)’가 된 요즘, 그의 가게는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중식과 양식이 절충된 안주가 맛있는데, 희한한 요리도 많다. 이를테면 이베리코 돼지고기로 만든 짜장면을 판다. 주인이 자부하는 마파두부 같은 중식이 인기다. 스테이크도 있고, 심지어 여수 갓김치도 판다. 
“음식에 경계가 어디 있나요, 맛있는 건 다 팔고 싶어요(웃음).”
 
선술집이라 근처 시세보다 술값이 싸다. 혼자 와서 얼른 두어 잔 마시고 가는 직장인이 꽤 보인다. SNS를 보고 찾아온 젊은 여성팀도 많다. 서울에서 선술집이 부활하는 것일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가게의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선술집 원조 신촌 서서갈비 
연남서식당은 의자가 없다. 드럼통 앞에 서서 고기를 구워 먹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중앙포토]

연남서식당은 의자가 없다. 드럼통 앞에 서서 고기를 구워 먹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중앙포토]

원래 선술집이 조선 후기부터 있었는지, 아니면 일제강점기의 영향인지 정확한 연구는 없다. 현재까지는 일본식 타치노미가 도입되면서 서울에 선술집이 늘었다는 게 정설이다. 타치노미는 문자 그대로 서서 마신다는 뜻. 60년대까지는 명동·을지로·무교동 등에서 어묵과 정종(청주)을 파는 선술집이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어쨌든 서울에서 선술집이 부흥의 시기를 맞은 듯하다. 
 
‘전기’가 힙한 을지로의 산물이라지만, 오랜 선술집이 서울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 곳으로 이른바 ‘서서갈비’가 있다. 전국에 동명의 상호가 수백 개 있는데, 원조는 신촌에 있다. 공식 상호는 ‘연남서식당’으로, 보통 ‘신촌 서서갈비집’이라고 부른다. 이 집은 서서 드럼통에 고기를 구워 먹는 대폿집으로 시작했다. 전후에 생겨난 문화가 그대로 이어져 서서갈비라는 독특한 업종을 만들어냈다. 물론 요즘은 서서 마시는 대폿집의 느낌은 아니다.  
 
 선술집 로드 순례
서울 종로2가 파고다극장 앞 포장마차 선술집. 김경빈 기자

서울 종로2가 파고다극장 앞 포장마차 선술집. 김경빈 기자

‘송해길’로 명명된 종로 2가의 한 골목길로 들어서면 옛 파고다극장 앞에 선술집이 있다. 정식 가게는 아니지만, 구청에 사용료를 내고 들어선 포장마차 여덟 대가 모두 선술집이다. 점심 무렵에 문을 열어서 밤까지 영업한다. 멍게 해삼과 제철 해산물을 파는데, 특이하게도 삼겹살과 과일 안주가 이 포장마차의 주요 안주다. 고깃집보다 싸게 파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하고 과일로 입가심하는 식이다. 삼겹살은 그야말로 대세인 술안주이고, 과일은 변화된 ‘웰빙’ 풍조의 상징이랄 수 있다. 이런 음식이 포장마차 안주의 주력이 된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포장마차 선술집 내부 풍경. 여느 포장마차와 다를 게 없는 풍경이다. 의자만 없을 뿐이다. 김경빈 기자

포장마차 선술집 내부 풍경. 여느 포장마차와 다를 게 없는 풍경이다. 의자만 없을 뿐이다. 김경빈 기자

포장마차에서 한 잔 마시고, 다시 선술집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종로 3가 단성사 뒤쪽 순라길에 진짜 서서 마시는 선술집이 둘 있다. ‘도레미잔술집’과 ‘뚱순네’다. 커다란 탁자에 무료 안주가 놓여 있고, 잔술을 마신다. 소주나 막걸리를 종이컵에 가득 따라서 단돈 천 원 받는다.
 
이 일대가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노인 특화구역이라 뭐든 싸지만, 술값과 안줏값은 파격적이다. 세 마리에 만 원 받는 통닭에 1인분 5000원 하는 삼겹살, 2000원짜리 해장국이 있는 동네다. 이발과 염색 포함해 9000원 받는 이발소도 여럿 있다. 거의 천연기념물이 된 선술집이 이 동네에 아직도 성업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경제 사정과 무관치 않다. 선술집은 원래 가볍게 마시고 빨리 자리를 회전시켜 먹고 사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술꾼은 싸서 좋고, 주인은 회전을 잘해서 매출을 올리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이다.
순라길의 '도레미 잔술집'. 바로 옆 '뚱순네'처럼 소주, 막걸리 한잔에 1000원씩 잔술을 판다. 김경빈 기자

순라길의 '도레미 잔술집'. 바로 옆 '뚱순네'처럼 소주, 막걸리 한잔에 1000원씩 잔술을 판다. 김경빈 기자

코스를 잡아서 이 일대를 쭉 돌았다. 딱 한 잔씩 마시면서 순라길과 송해길, 을지로 3가로 이어지는 ‘선술집 로드’를 개척(?)했다. 둘이서 마신 술값이 총 5만원. 더 푸짐하게 먹어도 7만, 8만원이면 된다. 이런 음주 방식을 서양에서는 ‘바 호핑(Bar Hopping)’이라고 한다. 일본은 ‘사다리 타기’라고 부른다. 사다리를 올라가듯 다른 가게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한국은 선술집 순례가 되려나. 요즘 유행하는 말로 도장 깨기? 그렇게 마시다 보니 본래 선술집의 미덕인 가볍게 마시기는 틀렸다. 
 
복고풍은 술집 문화에도 찾아온 모양이다. 선술집은 옛 어른의 술 문화였다. 다리는 좀 아프지만, 이 흥미로운 음주법은 나름 유행할 것 같다. 뭐,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마시는 집도 좋겠고. 
 
박찬일 chanilpark@naver.com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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