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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DNA 일깨우는 야구장은 현대판 ‘사바나 초원’

도시와 건축
국내 최초 돔구장인 서울 고척스카이돔. [중앙포토]

국내 최초 돔구장인 서울 고척스카이돔. [중앙포토]

저녁에 야구장에 가는 일이 즐거운 시즌이 됐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야구장에 가서 탁 트인 잔디밭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야구장은 현대사회에서 공간적인 의미가 남다르다. 야구장은 현대도시 속 사바나 초원의 재현이다. 우리는 십만 년 넘게 수렵채집의 시대를 살면서 진화를 해왔다. 사바나 초원에서 사냥감을 쫓아 뛰고 창을 던지고 때로는 사나운 포식자를 피해 도망치며 달렸다. 이 모든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 야구장이다. 야구장에서 선수들은 던지고 뛰고 살기 위해 달린다.
 
이탈리아 신경심리학자 ‘자코모 리촐라티’는 원숭이를 가지고 심리학 연구를 하다가 재미난 현상을 발견했다. 원숭이가 땅콩을 쥐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실험 중의 원숭이가 다른 사람이 손에 땅콩을 쥔 모습을 보고서 자기가 실제로 땅콩을 손에 쥐었을 때와 같은 뇌의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일종의 공감 능력인데 사람도 마찬가지로 바라보는 대상에 자신을 동화시켜서 보는 본능이 있다. 이런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를 ‘거울 뉴런’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농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농구경기 보기도 즐기는 것은 농구선수를 보면서 자신이 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징어·소주서 2002월드컵 이후엔 치맥
 
컴퓨터 게임 속 아바타가 자신이라고 느끼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마찬가지로 야구장에 가면 내가 실제로 뛰고 던지고 달리지는 않더라도 선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실제 운동할 때와  비슷한 뇌의 부분이 활성화될 것이다. 야구장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수렵채집시대 초원을 달리는 사냥꾼이 된다. 그렇게 수렵인이 되면 음식도 당시의 음식이 본능적으로 당길 것이다. 그 시기에 우리의 주요 식품은 사냥이 성공했을 때는 단백질을 먹었고, 농업 혁명 이전이기 때문에 탄수화물 대신 나무에서 열매로 딴 견과류를 주로 먹었다. 1970년대 야구장에서 오징어와 땅콩을 먹는 것은 원시시대의 단백질과 견과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시대가 흘러서 지금은 치킨을 먹는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단백질의 단가가 조금 더 높은 닭으로 바뀐 것이다.
 
‘치맥’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이 된 시기는 2002년 월드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그 이전에는 치맥이라는 말이 쓰이지 않았을까. 답은 우리의 소득수준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닭을 먹어왔다. 하지만 치킨이라는 단어는 70년대 후반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 세대는 닭으로 하는 요리하면 백숙을 떠올린다. 70년대 초에 어린 시절을 보내는 나는 닭을 맛있게 먹은 기억을 생각하면 명동의 전기구이 통닭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77년에 ‘림스치킨’이라는 프랜차이즈에서 튀김 닭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닭요리 하면 자동으로 기름에 튀긴 요리를 떠올리고 프라이드치킨을 줄여서 치킨이라고 부른다. 77년도의 림스치킨은 우리나라 최초의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1호점은 명동 신세계 지하 식품부에서 오픈했다. 당시 치킨 한 마리 가격은 3500원 정도로 그 시절 하루 일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치킨은 엄청난 고급음식이었던 것이다. 이후 우리나라 국민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12층 높이의 아파트들이 70~80년대를 거치면서 강남과 목동 일대에 대거 들어섰다. 아파트 단지 주거문화는 치킨 배달 문화를 활성화했다. 짧은 거리에 여러 세대가 살수록 배달은 사업성이 나온다. 아파트 단지마다 치킨집이 들어섰다. 77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1047달러였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을 치를 때쯤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이 2만 달러 정도까지 올라간다. 산술적으로 20배나 잘살게 됐다. 중산층이 치킨을 먹을 만한 수준으로 우리의 소득수준이 올라간 것이다. 맥주는 70년대에는 값비싼 술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서민들은 맥주 대신 소주를 마셨다. 소득수준이 올라가 2002년쯤 돼서는 맥주가 저렴한 술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운동경기를 보면서 오징어와 소주를 먹던 시절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는 것으로 트렌드가 바뀌게 된 것이다. 치맥의 탄생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중앙포토]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중앙포토]

건축에서 시선이 모이는 곳은 권력자의 공간이다. 고대문명은 독재자의 시대였다. 그래서 고대의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시선을 모으기 위해서 지구라트 같은 높은 신전을 짓고 그 위에 올라가서 섰다. 인간 사회는 진화를 거듭해서 더 많은 사람이 권력을 나누는 민주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스 사회가 그 첫 단추이다. 그리스 사회가 대단한 것 중 하나는 민주주의 정신을 건축공간으로 강화했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원형극장이 그것이다. 원형극장의 무대는 객석들의 시선이 모이는 권력자의 공간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누구든지 올라갈 수가 있다. 원형극장은 시선의 집중을 받는 곳을 시민들에게 돌렸다는 점이 이전 시대의 건축과 다른 점이다. 원형극장이라는 공간구조가 있었기에 그리스의 민주주의 사회는 완성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야구장에서 시선이 가장 모이는 곳은 어디일까. 투수가 서 있는 마운드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되어있는 내야의 가운데에 있고 위치도 다른 야구선수들이 서 있는 곳보다 약간 높게 만들어져 있다. 공간 구조적으로 권력자의 자리다. 야구는 축구나 농구와는 달리 모든 플레이가 투수가 공을 던져야만 시작된다. 따라서 야구장의 모든 관중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는 어느 운동도 한 선수가 이 정도로 장시간 시선 집중을 받는 운동은 없다. 그래서 누구나 투수가 되고 싶어 하고 가장 많은 공을 던지는 선발투수가 가장 선호되는 포지션이다. 마운드 위에 서서 공을 던지는 사람은 야구장의 수만 명의 시선 집중을 받는 권력자가 된다. 재미난 점은 프로야구를 시작할 때 시구는 야구선수가 아니라 일반 시민 누구나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은 연예인들이 시구하지만, 얼마 전 잠실야구장에 갔을 때는 일반인 LG 팬 중의 한 명이 올라와서 시구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사회의 권력은 시민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야구장은 중간마다 키스 타임이라고 해서 일반 관중 중 커플을 대형스크린에 비추어서 키스를 유도하는 이벤트가 있다. 이것 역시 일반시민 누구나 대형 스크린에 비춰주어서 시선 집중을 받는 권력자로 잠시 만들어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 될수록 대형집회시설 실내화
 
삼성동 코엑스 쇼핑몰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 [연합뉴스]

삼성동 코엑스 쇼핑몰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 [연합뉴스]

독재자의 시대인 이집트 문명 때의 피라미드는 한 사람을 위한 건축이었다. 그리스시대는 시민이 다 들어가는 원형극장이라는 건축을 만들어서 시민사회를 완성했다. 사회가 더 민주화가 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그리스 시대가 지나고 로마 시대가 되었을 때 공화정의 로마제국은 콜로세움이라는 더 큰 원형극장을 만들었다. 물론 로마 시대에도 노예가 있었지만 이전의 이집트시대보다는 더 민주화된 시대였다. 거대한 콜로세움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사회가 돈이 많아지면 대형집회시설이 실내화되어간다. 그리스 원형극장은 천장이 열린 공간이었지만 콜로세움은 천막구조를 이용해서 지붕을 덮을 수 있게 만들었다. 수백 년이 지나서 만들어진 교회 공간은 일반 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실내공간이었다.  
 
우리나라도 잘살게 되면서 2015년에 고척돔이라는 실내야구장을 만들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런 추세가 초대형 쇼핑몰의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쇼핑몰은 돈을 쓰는 소비자들을 위한 공간이 대부분이라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쇼핑몰들은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실내공간을 제공한다. 삼성동 코엑스 스타필드몰의 별마당 도서관이 대표적이다. 엄청난 임대료와 공사비를 들여서 거대한 공간을 시민을 위한 공짜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고도의 상술이겠지만 어쨌든 이런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점은 현재 우리사회가 그만큼 일반시민에게 권력이 분배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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