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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 우슈취안에 “한국전 정전 담판하겠단 말만 하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582>
유엔 사무총장 리(가운데)에게 전권증서를 전달하는 우슈취안(왼쪽 둘째)과 차오관화(오른쪽 둘째), 1950년 11월 26일. [사진 김명호]

유엔 사무총장 리(가운데)에게 전권증서를 전달하는 우슈취안(왼쪽 둘째)과 차오관화(오른쪽 둘째), 1950년 11월 26일. [사진 김명호]

이런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중공은 선전술로 대륙을 석권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혁명 시절 중공에는 빼어난 선전가들이 많았다. 한결같이 트집 잘 잡고 자신들의 실책은 얼렁뚱땅 뭉개는 능력이 뛰어났다. 1950년 11월, 유엔은 신중국의 선전장이었다. 장진호 인근에 도달한 미 해병대가 쑹스룬(宋時輪·송시륜)의 요상한 전략에 허둥지둥할 때였다.
 

중국인민군 압록강 도강 나흘 후
유엔, 중국의 특파대사 파견 수락

저우 “전 세계가 대표단 주목한다
누굴 만나건 호전적 용어 피해라”

우슈취안 일행 체코 거쳐 뉴욕 도착
‘대국답게’ 스위트룸 9개 5주 임대

1950년 10월 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도강했다. 4일 후인 10월 23일, 유엔은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의 특파대사 파견 제안을 수락했다. 저우는 대표단의 미국 입국에 도움도 요청했다. “대표단은 중화인민공화국 외교관 여권을 소지했다. 미국은 우리의 수교국이 아니다. 프라하 소재 미국 대사관에 입국사증을 요구할 예정이다. 미국 측과 협의해 주기 바란다.”
 
중국 특파대사 우슈취안(伍修權·오수권)의 회고를 소개한다. “미국은 유엔의 결정에 반대했다. 겉으로만 그랬다. 속으로는 우리와 외교적인 접촉을 희망했다. 소련 일변도였던 우리의 외교정책을 흔들어 보려는 속셈이었다. 미국이 끝까지 반대했다면 총회 참석은 불가능했다. 반대하면서 방관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미국은 대표단이 유엔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의 한국전 참전을 성토했다. 소환할 것을 제안하며 우리를 모욕했다. 소환은 식민주의자나 제국주의자들이 노복들에게 쓰는 용어다. 인구 수억인 주권국가에 합당한 말이 아니다. 미국의 제안은 부결됐다. 대만으로 쫓겨 간 장제스(蔣介石·장개석) 측의 대표와 쿠바만 지지했다.”
 
유엔 제1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우슈취안(왼쪽 첫째)과 차오관화(뒷줄 오른쪽 첫째), 1950년 11월 27일.

유엔 제1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우슈취안(왼쪽 첫째)과 차오관화(뒷줄 오른쪽 첫째), 1950년 11월 27일.

미국 유엔대표는 중국 대표단의 권한 제한을 제안했다. "연합군사령부의 한국전쟁 관련 특별 보고 토론에만 참석을 국한시키자.” 저우언라이가 발끈했다.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전문을 보냈다. "미국의 대만 침략을 피해 가려는 음모다. 대만과 한국 문제는 병합시켜야 한다. 우리는 미군이 설치한 연합군사령부를 연장할 수 없다. 그 사령부는 불법단체다. 특별 보고도 불법이다. 관철되지 않으면 유엔의 초청을 거부한다.”
 
11월 14일 베이징 공항은 환송인파로 들끓었다. 대표단 9명은 소련 민항기로 출국했다. 몽골과 이르쿠츠크 거쳐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대설을 만났다. 비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소련은 "미 제국주의와 대결할 특사들이 탄 비행기”라며 군인 수천 명을 동원해 제설작업을 했다. 모스크바공항에서는 소련 비밀경찰 책임자 베리아에게 간단한 교육도 받았다.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극동의 평화는 중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 미국은 한국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없다”는 묘한 발언한, 바로 그날이었다.
 
우슈취안 일행은 베이징 출발 6일 만에 프라하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체코 부총리와 주체코대사 탄시린(谭希林·당희람), 프라하 주재 유엔대표의 영접을 받았다. 탄시린이 한국 전황을 설명했다. "미군이 중국 국경선 3㎞ 앞까지 왔다. 쑹스룬에게 험한 꼴 당할 날이 머지않았다.” 탄시린은 황무군관학교 시절부터 저우언라이의 측근이었다.
 
프라하의 미국 대사관은 굼떴다. 3일을 기다리라고 했다. 우슈취안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어처구니없어했다.  
 
장진호에서 미군과 자웅을 겨룬 쑹스룬(가운데)의 말년 모습. 오른쪽은 중공 개국원수 예젠잉.

장진호에서 미군과 자웅을 겨룬 쑹스룬(가운데)의 말년 모습. 오른쪽은 중공 개국원수 예젠잉.

"비잔지 뭔지, 별것도 아니었다. 여권에 네모난 도장 하나 찍혀 있었다. 밥은 굶어도 지루함은 참기 힘들었다. 즐거운 일도 있었다. 체코 외교부 부부장이 유엔에 근무했었다는 말 듣고 배움을 청했다. 목소리가 예쁜 미인이었다. 지금도 맑은 시냇물 소리 들으면 그날이 떠오른다. 귀가 간지럽고 부부장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들은 내용은 다 까먹은 지 오래다. 나보고 미남이라고 했다. 23일 프라하를 떠났다. 런던 공항에 잠시 머무는 동안 영국 외무장관이 중국인민지원군의 한반도 철수를 요구했다는 소식 듣고 놀랐다. 남한 대통령 이승만이 유엔의 한국 내정 간섭에 불만 표시했다는 말도 들었다. 1950년 11월 24일, 뉴욕 시간 6시 13분, 전혀 다른 세상에 도착했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우슈취안은 마이크를 피하지 않았다. "중·미 양국의 인민들은 오랜 기간 우의를 다져왔다. 이 기회에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인과 뉴욕 시민에게 경의 표한다.”
 
대표단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스위트 룸 9개와 집무실을 5주간 임대했다. 비용이 엄청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출발 전 저우언라이가 우슈취안에게 한 말이 있었다. "전 세계 인구의 25%가 중국인이다. 세계가 대표단을 주목한다. 외교는 돈이다. 대국 대표답게 가장 비싼 곳에 투숙해라. 밥도 방으로 시켜 먹어라. 도청에 조심해라. 할 얘기 있으면 부근 공원 산책하면서 해라. 지금 미국은 반공과 반중국 분위기가 상상 이상이다. 누굴 만나건 호전적인 용어는 피해라. 한국의 정전 담판이 조속히 열리기를 희망한다는 말만 해라. 유엔에서는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된다.”  <계속>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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