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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전기료 안 올린다”는 정부의 꿈같은 약속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은 ‘평생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연인의 약속보다 허황하다. 연인의 약속은 간혹 지켜지는 경우도 있지만 온 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본 일이 없다. 유사 이래 이룬 적 없는 경지를 약속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을 놓고 ‘약속했으니 지키라’고 다그치는 건 또 얼마나 허무한가. 나라가 국민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권’만이라도 보장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게 최상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달려간 건 지난주 열렸던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공청회와 그 이후 전개된 논란들을 지켜보면서였다.
 
의심할 여지없는 폭염의 여름은 코앞에 다가왔고, 날씨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최소한 폭염이 사람을 해치기 전에 대비해야 할 게 있다면, 바로 전기요금이다. 이제 여름철 에어컨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 됐으니 말이다. 논란의 핵심은 전기요금 누진제다. 한때는 전기를 많이 쓰는 고소득층에게 요금을 더 많이 물린다는 점에서 정당성이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 전제는 무너졌다. 올 초 서울대 전력연구소 조사에선 고소득층이 아니라 가족 수가 많을수록 전기를 더 많이 쓴다는 결과가 나왔다. 집 구할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은 1~2인 가구로 분화되는 데 비해 비싼 주택 값이 버거운 저소득층은 한 집에 여럿이 모여 살다 보니 누진제에 따른 ‘전기료 폭탄’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이런 전기요금의 딜레마를 모르지도 않았고, 해결책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수면 아래에서 툭툭 불거져 나오는 ‘전기요금의 현실화’는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이다. 지금 전기요금체계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갈수록 더할 거다. 탈원전과 화석연료 발전은 줄이고 친환경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에너지 전략은 결국 에너지 생산 비용이 계속 올라갈 거라는 예고다. 물론 에너지전략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지만 전 세계가 삐걱거리면서도 이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우리만 물러설 수도 없는 일이다. 어쨌든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선데이 칼럼 6/22

선데이 칼럼 6/22

진짜 문제는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춘몽(春夢)과 같은 정부의 약속,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말에 발목 잡힌 현실인지도 모른다. 가장 두려운 건 정권의 정략적 언행이 시장의 가격시스템을 무너뜨린 후의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거다. 정권이야 폭탄을 다음 정권으로 돌릴 수 있다 해도 그 폭탄은 결국 터질 것이고, 수습은 국민이 해야 한다. 달콤한 약속을 속삭였던 정치인들이 일 터졌다고 자기 주머니 털어서 구멍을 메워주진 않는다.
 
그럼 전기료 인상에 동의하자고? 맞다. 그 말이다. 다만 그동안의 용도별 차별가격제 같은 불합리한 체계를 뜯어고치고 합리적인 선에서 분담하는 인상안을 요구하고, 에너지 극빈계층을 구호할 수 있는 여분을 만들면서 말이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재정적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기본권을 지키려는 것이기도 하다. 에너지기본권이라는 게 있다. 에너지를 충분히 쓰는 계층은 에너지 양이 늘어난다고 효용이 늘진 않지만 에너지 빈곤계층은 한 단위가 늘어남에 따라 삶의 질이 확 올라간다. 이 시대 폭염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사회적 약자를 공격해 목숨까지 빼앗는 사회문제다. 우리는 누구나 환경의 위해로부터 동등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권리를 지키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공공의식을 가진 시민 공동체가 나서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표 안 되는 일인데 정치인이 나서겠나.
 
한비자(韓非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남에게 기대하면 책망하게 되고, 내 일이라 생각하면 즐겁다. 부자간에는 일하다가도 원망하고 꾸짖지만, 사람을 사서 농사를 지으면 맛있는 국을 끓여낸다.” 여름철 전기요금 조정을 놓고 핏대를 올리며 벌이는 ‘네탓 공방’은 이미 폭염의 불쾌지수를 넘어선 듯하다. 시대도, 날씨도, 가격도 바뀌었는데 누굴 책망한들 답이 나올까. 차라리 내가 먼저 손 들고 나서는 게 어떨까. 어차피 돌고 돌아도 내 문제가 될 일이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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