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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싱가포르 1주기에 보는 북핵 협상의 앞길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전 주 러시아 대사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전 주 러시아 대사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1주기가 지났다. 기대 속에 출발한 정상외교는 좌초 위기에 처했다. 좌초되면 협상은 물 건너가고 격한 도발과 대결의 악순환이 닥친다. 정상외교가 잘못되면 파장이 심대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싱가포르 합의가 북한에 준 과잉기대가 주 이유이다. 북한은 초유의 미북 정상담판에서 북한 식 비핵화 접근을 설득시켰다고 인식한다. 비핵화는 북한만이 아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이를 위해서는 미북 신뢰가 필요하니, 신뢰구축에 따라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본다. ‘최고존엄’이 얻어낸 성과다. 그래서 북한은 줄기차게 싱가포르 합의대로 하자는 것이다.
 

북, 싱가포르에서 기대 키워
자칫 협상 파탄 위기를 재현
모두 물러서 협상 살려내야
과잉 기대로 협상 유인 금물
준비없는 정상회담 곤란하고
이를 위해 정상들의 결단 필요

미국이 이런 합의를 해준 배경에 트럼프가 있다. 그는 합의문보다 김정은과 신뢰관계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문구를 양보하여 마음을 사려고 했다. 북한의 사고와 행태에 대한 몰이해의 소치라 할 것이다. 아직도 트럼프는 싱가포르 합의문이 북한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듯하다. 트럼프의 참모들은 싱가포르 합의의 문제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북한이 언급한 ‘완전한 비핵화’를 걸고 들면서 이를 이행하라고 했다. 북한은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했다.
 
교착상태가 오자, 북한은 트럼프와 만나 풀어보려 했다. 그래서 하노이 회담이 열린다. 그러나 북한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는 참모의 조언에 따라 핵, 미사일 일괄포기를 제안하고, 북한의 ‘영변폐기 대신 제재해제’안을 거부한다. 북한의 제안이 싱가포르 합의에 따른 단계적 방식인 반면, 미국의 제안은 싱가포르 합의와 결이 다른 일괄타결 식이었다. 회담은 결렬되었다. 이후 북한은 미국의 자세전환을 전제로 연말 시한부로 3차 정상회담을 하자고 나왔다. 그러면서 볼턴과 폼페이오를 맹비난하고, 트럼프에만 기대를 표하였다. 트럼프는 김정은에 호의를 표명하고 있으나, 자세전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 중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의 입지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 앞일이 어떻게 되겠는가? 일단 미북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가운데 연말시한은 다가오고 상호비난은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양측이 대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므로 시한 전에 실무접촉이 생길 여지는 있다. 실무접촉이 잘되면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전 없이 시한을 넘기면 북한은 도발을 고려하면서 내년 중 마지막으로 미국입장을 타진하려 할 소지가 있다. 거기서도 여의치 않으면 도발할 것이다. 그러면 협상은 파탄나고 후폭풍이 올 것이다.
 
이상의 시나리오를 기본 얼개로 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자. 첫째, 정상 간 협상의 좌초를 막는데 주력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협상에 매달릴 것 없이 제재를 강화하여 굴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중국이 북한의 뒤에 있는 한, 제재만으로 길이 열리지 않는다. 또 협상은 제재와 배치되는 수단이 아니다. 모두 외교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종의 수단이다. 문제는 어떻게 배합하느냐일 뿐이다.
 
둘째, 협상을 살리려면 미북 모두 자세를 조정해야 한다. 북한은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집착을 완화해야 하고 미국은 하노이 제안에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 한국은 미북 간 접점을 찾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실무협상이 재개되면 이를 흘려 보내지 않아야 한다. 어렵사리 복원된 협상기회를 놓치면 일은 돌이키기 어렵다.
 
셋째, 그렇다고 협상 재개에 집착한 나머지 북한의 기대를 부풀리지는 말아야 한다. 지금은 북한의 과잉기대를 만류할 때다. 예컨대 지금 미북 간에는 친서가 교환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고의든 아니든 미스커뮤니케이션이 생길 소지가 있다. 싱가포르 합의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트럼프가 싱가포르 합의를 이행할 것처럼 말하면, 북한은 이를 미국의 입장변경으로 해석하고 실무협상에 응할 수 있다. 물론 진상은 실무협상에서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정치적 이유로 3차 정상회담을 갈망한 나머지 미스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하면 진상은 정상회담에서 드러날 것이다. 과잉기대에 기초한 회담이 어찌되는지는 지난 1년이 보여 준 바 있다.
 
넷째, 그러니 졸속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가식 없고 정교한 사전준비를 통해 성과가 담보될 때 해야 한다. 또다시 결렬되면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정상차원의 협상기회가 무산되는 일은 누구에게도 득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유연성을 발휘하여 협상을 복원해야 한다. 복원된 협상에서는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헛된 기대를 부풀려 가식적인 협상을 하거나 정치적 편의로 졸속 회담을 해서도 안 된다. 모두 어려운 주문이고 통과하기 좁은 문이다. 그러나 정상들이 공감하고 결단하면 가능하다. 그것이 정상외교의 장점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전 주 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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