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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분초 다투는 그들 “요점이 뭐야?”랄 수밖에

이멜트 전 GE 회장, 한국 방문 때 30분 간격 일정… 보고 받는 사람 입장에서 보고해야

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15) ‘높은 분’들은 왜 주의가 산만할까?


사진:ⓒ gettyimagesbank

사진:ⓒ gettyimagesbank

사장이나 임원들에게 직접 보고를 해본 이들이 한결 같이 경험하는 게 있다. 보고를 하려고 하거나, 하는 도중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짧게, 본론만 얘기해 봐.” 아니, 두 달 가까이 밤샘하다시피 해서 작성한 내용을 어떻게 짧게 얘기하란 말인가? 중요한 내용이라 전후좌우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는 걸 본인이 잘 알면서. 당황스러운 마음에 잠시 멈칫하고 있으면, 다시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그래 알았어. 대신 좀 빠르게 해봐.” 최대한 간단하게 할 생각으로 설명을 시작하지만 5분쯤 지나면 ‘그분들’의 몸은 자동적으로 뒤로 젖혀지며 의자에 등을 기댄다. 그와 함께 나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요점이 뭐야?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이제 막 배경 설명을 시작했는데 요점을 말하라고? 앞이 캄캄해진다. 할 수 없이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를 마칠 수밖에 없다. 엄벙덤벙했다 싶어 마음이 황량해진다. 뭘 보고했는지, 제대로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확인해 볼 수도 없는 일, 하루 내내 기분이 찝찝하고 멍하다.
 
결재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질문을 해놓고 별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 뭘 좀 얘기하려고 하면 싹둑 잘린다.
 
“그럼, 그게 이거라는 거지?”
 
“예? 아, 예.”
 
“그래. 알았어. 어쨌든 제대로 했겠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제대로 했느냐고 묻는다. 제대로 보면 알 텐데. 무 자르듯 보고하는 사람의 말을 툭툭 잘라버리는 사장이 있는가 하면, 무슨 말이든 귓등으로 흘리는 사장도 있다. 말해 보라고 해놓고 다른 서류를 보고 있거나, 휴대폰 진동이 울리면 그걸 다 확인한다. 걸려오는 전화도 다 받고, 문자도 주고 받는다. 그러면서 계속 얘기하라고 한다. 듣는 사람이 산만해지면 말하는 사람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법. 제대로 듣지 않는데 어떻게 제대로 말할 수 있겠는가. 보고 한 번 하고 나면 시쳇말로 ‘멘탈이 탈탈 털린 듯’하다.
 
더구나 이런 상사들은 꼭 뒤탈을 일으킨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으레 나오는 말이 있다. “이거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 설명할 때는 분명 고개 끄덕끄덕하며 “그래 그래 알았어”라고 해놓고, 왜 그렇게 했느냐니. “저번에 설명드릴 때 그렇게 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라고 하면, 또 으레 나오는 말이 있다. “내가 그랬다고? 언제?”
 
다시 성심껏 설명하면 “그래, 그렇게 얘기했어야지. 대충 설명하니까 나도 그냥 넘어갔지”라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본인 탓은 하나도 없고 무조건 보고한 사람을 탓한다. 이상한 건 직원들에게 주의가 산만하다는 평을 듣는 임원들도, 사장에게 똑같은 불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도대체 제대로 보고를 할 수 없어. 우리 사장님은 왜 저렇게 산만하지?”
 
‘저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사람에게 일어나는 문제의 80%는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를 웃고 울리는 게 사람 사이의 관계다. 그런데 우리를 끙끙거리게 하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상대가 처한 사정이나 상황을 모르기에 일어나는 일이 많다. 이런 걸 알기만 해도 문제가 풀릴 수 있고,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도 있는데 보이는 대로, 또 느끼는 대로 생각하다 보니 서로 속 깨나 끓이는 일이 생긴다. 상대가 무슨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걸 알면 별 일 아닌 게 될 수도 있다. 날마다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상사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건 업무 못지 않게 중요할 수도 있다. 회사라는 시스템 자체가 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그들을 위한 변명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알아서 나쁠 것도 없다.
 
세상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원래 성향 자체가 ‘주의 산만’인 사람이 있다. 스스로는 멀티플레이어라고 하지만, 본인만 그렇게 생각할 뿐, 사실은 주변 사람들을 동시에 ‘멀티(multi)로’ 괴롭히는 유형이다. 또 마음 가득한 권위의식으로 아랫사람을 하인인 듯 부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성향이 아니어도 높은 자리에만 가면 주의가 산만해지는 임원이나 사장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또 왜 그럴까?
 
회사가 클수록 수도 없는 이유가 있지만, 한마디로 ‘그들은 바쁘다’. 임원이 되면 보통 하나의 사업단위를 맡게 되는데, 주요 프로젝트만 해도 5~6개, IT업체는 8~10개나 된다. 요즘 같은 시장상황에 발등에 불 떨어지지 않는 곳이 있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일은 터지고, 가야 할 곳은 많고, 참석해야 할 회의가 수두룩하다. 오라는 곳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
 
임원이 이런 상황이니 완전히 업무 내용이 다른 부서들을 이끌어야 하는 사장의 하루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져오는 안건을 해결하다 보면 아침은 금방 저녁이 된다. 사안도 가지각색, 천차만별이니 내용을 이해하는 시간도 부족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조직은 결정하기 애매하거나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있으면 거의 무조건 위로 올리는 속성이 있다. “중요한 일이기에 사장님이 직접 결정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결재안에 담는다. 말이 좋아 ‘중요한 일’이지 사실은 사장에게 미루는 것이나 다름 없다. 중요한 사람이 중요한 결정을 해달라는 말로 결정과 책임이라는 멍에를 사장에게 씌우는 것이다. 그러니 뭐 하나 쉬운 일이 없고 허투루 넘어갈 일이 없다.
 
오래 전이지만, GE의 제프리 이멜트 전 회장이 한국에 왔을 때 그의 하루 일정표를 본 일이 있다. 물론 보안 문제로 하루가 지나서 본 것이지만, 그의 하루 일정은 오전 7시15분부터 저녁 9시까지 30분 단위로 빽빽했다. 고만고만한 일들이 아니었다. 장관을 만난 다음에는 세미나에 참석해야 하고, 공장을 방문한 다음에는 한국에 몇 백만 달러를 투자하는 결정을 해야 했다. 세 끼 식사 또한 모두 공식적인 행사라 마음 편한 시간이 아니었다. 도대체 생각할 시간이나 있는지 궁금했다. 휴식시간은 오후 6시 30분에서 7시까지 단 30분이었다.
 
세계적인 규모의 회사를 이끄는 회장이니 그렇겠지만, 사실 중소기업 사장이라고 해도 바쁜 건 매 한가지다. 큰 회사의 사장, 회장은 분야별로 맡아서 해줄 사람이 많은 반면, 중소기업 사장은 모든 걸 다 혼자 뛰어야 한다. 성격 급한 사람이나 리더십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장들은 이럴 때 마치 로봇처럼 사람들을 부리려 한다. 자기 팔 다리처럼 사람들이 움직여주었으면 싶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실수하기 쉽다.
 
어쨌든 어떤 사장이든 바쁘지 않는 하루는 없다. 자신도 모르게 “요점이 뭐야?”라고 하게 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그래서 보고를 하건, 결재를 받건 꼭 명심해야 할 게 있다. 10분이 주어지건, 30분이 주어지건, 무조건 5분만 내게 주어졌다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5분 만에 보고를 마치고 나오는 게 아니다. 첫 5분을 무사히 통과하면, 다음 5분이 주어지고, 그 5분을 또 통과하면, 다시 또 5분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5분 단위로 자르되, 우선순위에 맞춰 내용을 배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까?
 
배가 고파 죽어가는 사람에게 차(茶)를?
ⓒ gettyimagesbank

ⓒ gettyimagesbank

기준은 명확하다. 보고자의 중요도가 아니라, 보고 받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궁금해 하는 순서로 배치하는 것이다. 배가 고파 죽어가는 사람에게 세계 최고의 차(茶)를 주면 고마워할까? 이런 사람에게는 먹을 걸 먼저 주어야 한다. 이런 순서로 배치하되, TV 드라마처럼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어 또 한 번의 5분을 계속 확보하도록 설계하는 게 핵심이다. 준비는 몇 배 힘들겠지만 대가는 누구보다 풍성하게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상품 프로젝트를 맡은 팀장이 임원이나 사장에게 경과 보고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사장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게 뭘까? 성공 가능성일 것이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면 여기에 맞춰야 한다.
 
“사장님. 이번 신상품 프로젝트가 어제 기준으로 90%쯤 진척됐습니다. 5%쯤 더 진척시키면 성공 가능성을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시점은 한 달 후로 잡고 있는데, 그때가 되면 가능성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 하나 남긴 했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어떨까? 간략한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90%쯤 진척이 되었는데, 5%를 더 하면 될지 안 될지 알 수 있다고?
 
“그래, 그 어려운 일이라는 게 뭔가?”
 
“이건 기술적인 문제라 설명이 좀 필요한데 3~4분 정도 걸립니다. 괜찮겠습니까?”
 
길지 않은 시간을 수치로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누구나 어려운 설명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한다. 더구나 마지막 관문이라지 않는가?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일도 잘할 것이고, 알고 있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귀에 들어오지 않아도 이해하려고 한다. 더구나 자신이 하라고 했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5분씩 늘려가면 순식간에 30분이 지난다. 흥미가 생기면 다음 일정을 스스로 접기도 하고, 보고를 한 번 더 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중요도 순으로 일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사람들이라 항상 중요도에 따라 행동을 달리 한다. 보고 잘하는 사람이 승진가도를 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희귀한 인사권자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데 승진이 안 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을 눈으로 읽으면 굉장히 쉬울 것 같지만, 막상 이 상황에 속하면 결코 쉽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은 자신이 노력한 일에 갇히기 쉽다. 자신이 정보를 수집하고, 애써 내용을 작성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빠지면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순으로 말하고, 그걸 강조한다. 이런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일을 시작하기 전, 초점과 관점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가설을 세우듯, 탐험대가 도달할 목표와 경로를 미리 설정하듯 그렇게 말이다. 그런 다음, 또 다른 경로나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는 게 효과적이다.
 
가장 중요한 건 시작을 잘하는 것이다. 특히 지시를 받을 때 확실해야 한다. 무조건 “예” 해놓고 나서 다른 일을 하다, 막상 일을 시작하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 받았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중심적 성향 때문에 자기 방식대로 일하기 쉬운데, 시작점이 확실하지 못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혼은 혼대로 나는 일이 생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음 단추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조직처럼 권력거리가 멀면 되묻기가 힘들어 더 그렇다. 하지만 나중에 질책 듣는 것보다 어려워도 한 번이라도 다시 묻는 게 차라리 낫다.
 
권력거리 먼 한국 조직에서는 되묻기 어려워
다른 방법도 있다. 상사가 지시할 때, 그 내용을 상사가 들을 수 있도록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몇 가지를 슬쩍 넣어서 말이다. 예를 들어 신제품을 준비 중이니 중국 시장에 대해 좀 알아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면, 보고 시점까지 넣어서 복창한다.
 
“예, 요즘 중국 시장에 어떤 경쟁제품들이 있는지 두 달 정도 탐색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상사도 자신이 추가하고 싶은 내용을 덧붙여준다. 뭔가 빠진 게 있으면 바로잡아 줄 수도 있다. 시작이 좋아야 결과가 좋은 법이다.
 
다음으로 필요한 게 보고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임원이고 사장이라면 뭐가 궁금할까? 뭘 알고 싶어할까? 이렇게 말이다. 예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창 정력적으로 일하던 시절, 삼성 제품이 2류라며, 매년 정기적으로 자사 제품을 진열하게 한 후 직접 점검한 적이 있었다. 이때 한 사장이 기지를 발휘해 회장의 마음을 아는데 성공했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한 직원에게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되, 특히 회장의 시선이 어느 제품에 얼마 정도 머무는지, 초 단위로 재라고 한 것이다. 흔히 그렇듯 마음에 든 것에는 시선이 끌리고, 오래 머물게 마련 아닌가. 그런 다음, 시선이 오래 머문 순서대로 보고 순서를 잡았고 지원책도 병행했다. 회장이 관심 있는 걸 먼저 말하니, 회장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고, 지원책까지 병행하니 미주알고주알 더할 말이 많지 않았다. 회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고 받는 사람이 궁금할 만한 내용으로 시작
보고 받는 사람의 궁금증으로 시작하되, 문장이 길어지지 않게 하는 게 또 하나의 핵심이다. 판사들의 판결문처럼, 마침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라면 듣는 사람은 지치고 만다. 판결문이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것이니 그야말로 어쩔 수 없지만, 지루한 보고를 마냥 듣고 있을 상사는 없다. 가장 좋은 건 짧고 핵심적인 문장이 화살처럼 머리에 콕콕 박히게끔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신문의 제목처럼 말하는 게 좋다. 신문을 펼치면 큰 제목들이 나오고, 이런 제목만 읽어도 대체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관심이 있으면 본문을 읽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걸 잘 하려면 실제로 신문 제목을 뽑아보는 연습을 해보는 게 좋다. 종이 신문이든, 인터넷 신문이든 어느 정도 긴 기사들을 선택, 제목을 보지 않고 기사 내용만 읽은 다음, 혼자서 제목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진짜 제목과 비교해 본다. 가장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을 선별하고 만드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그런데 임원들이나 사장들이 가진 문제가 이뿐일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또 왜 그럴까? 어제는 이렇게 하라고 했다가, 오늘은 또 저렇게 하라고 한다. 강아지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건 또 왜 그럴까? 날이면 날마다 위기를 강조하는 건 또 무슨 이유에서일까? [계속]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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