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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반세기 박웅·손봉숙 “광대는 살아 있다”

32년 만에 ‘이름없는 ...’에 출연하는 박웅(왼쪽)·손봉숙.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2년 만에 ‘이름없는 ...’에 출연하는 박웅(왼쪽)·손봉숙.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극단자유의 연극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가 32년 만에 무대에 오른다. 1986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연극제에서 공연한 뒤 이듬해 서울에서 한국 초연한 작품이다. 오는 9월 일본 도야마현 도가무라에서 열리는 제9회 연극올림픽에 초청받았고, 이에 앞서 21, 22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아트홀에서 세 차례 공연할 예정이다.  
 
초연 당시 출연했던 배우 중 박웅(79)과 손봉숙(63), 두 배우는 이번에도 무대에 오른다. 1986, 87년 공연에선 이들과 배우 김금지·오영수·유인촌, 국악인 안숙선, 무용가 국수호 등이 함께 출연했다. 한 세대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작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답을 듣기 위해 지난 17일 오후 서울 동소문동 연습실을 찾아가 두 사람을 만났다. 연기 경력 각각 56년(박), 43년차(손)인 이들의 명료한 발성이 지하 연습실을 쩌렁쩌렁 채우고 있었다.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연습 장면. 박웅(가운데)·손봉숙(오른쪽 첫째)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극단자유]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연습 장면. 박웅(가운데)·손봉숙(오른쪽 첫째)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극단자유]

‘이름없는 …’는 극단자유의 김정옥 예술감독이 극본을 쓰고 연출했던 작품이다. 20세기 초 구한말을 배경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는 사당패의 이야기를 통해 부패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최치림 극단자유 대표가 연출한다. 배우들은 모두 사당패 광대 역할로 등장해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 양반에게 착취당하는 천민의 신세 등 다양한 이야기를 극중극 형식으로 재현해낸다.
 
두 사람은 “혼란스러운 구한말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면서 “작품 속에서 서민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얘기가 바로 시대정신 아니겠냐”고 말했다. 박웅은 “극 초반 광대들이 천지사방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겠다며 ‘양반들 타락한 얘기’ ‘양반들 여염집 여자 욕보이는 얘기’ ‘양반댁 부인들이 젊은 하인 농락하는 얘기’를 하겠다고 밝힌다”면서 “오늘날의 ‘미투’와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손봉숙은 광대들의 역할에 주목했다. “광대들의 춤과 노래, 재담과 연기가 핍박받는 민생들을 위로하고 삶의 윤활유가 돼준다”며 “작품을 초연했던 1980년대나 지금이나 그런 효과는 여전히 먹힌다”고 장담했다.
 
초연 출연진들. 왼쪽부터 박웅·안숙선·국수호·오영수·김금지·유인촌·손봉숙. [사진 극단자유]

초연 출연진들. 왼쪽부터 박웅·안숙선·국수호·오영수·김금지·유인촌·손봉숙. [사진 극단자유]

부질없고 허무한 인생의 속성도 ‘이름없는 …’가 강조하는 요소다. 극중극의 시작과 끝이 모두 ‘광대의 죽음’이다. 장례식장에서 상주를 웃게 하는 ‘다시래기’ 풍습도 보여준다. 박웅은 “죽음을 무서운 것으로 그리지 않고 삶의 한 과정으로 풀어낸다”며 “무대 위 죽음이 현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짚었다.
 
두 사람은 극단자유의 대표 배우들이다. 극단자유는 무대미술가 이병복(1927~2017)선생과 김정옥 예술감독이 1966년 창단한 극단이다. 추송웅·함현진·박정자·김금지·김무생·김혜자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을 중심으로 실험적·혁신적인 작품들을 내놓으며 1970~80년대 한국연극계를 이끌었다.  
 
한국춤과 국악·굿·탈춤 등을 가미, 한국적 색채가 선명한 독창적인 연극 스타일을 정립한 것도 극단자유의 성과다. 한국적 이미지를 형상화한 이병복 선생의 무대의상·무대 장치도 전통 색채를 더하는 데 한몫했다. ‘이름없는 …’ 역시 한국연극으로서 정체성이 선명하다. 이들은 “품바·사물놀이·마당놀이 등의 요소가 고루 포함돼 있다”(박)며 “이런 우리 연극 스타일이 후배 배우·연출가에 의해 이어지고 발전했으면 좋겠다”(손)고 말했다.
 
‘이름없는 …’가 대본으로만 남아있었던 지난 30여년 동안 연극계의 상황은 많이 변했다. 동인제에서 PD시스템으로 극단 체제가 바뀌었다. 단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극단의 일을 함께 나누어 하던 체제에서 작품에 따라 참여하는 배우·스태프가 달라지는 시대가 됐다. 연극계의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박웅은 “연극의 입지가 더 좁아진 것 같다. 연극이 우리 문화 속에 정착하기도 전에 영상·인터넷 매체가 장악해버렸다. 예전엔 초등학교에서 해마다 학예회를 열어 강당에서 연극을 하곤 했는데 그것마저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의욕은 변함없다. “오직 살아있는 무대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소리와 연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끝까지 파고들겠다”는 손봉숙이 ‘이름없는 …’의 대사 한 대목을 읊으며 이들이 추구하는 ‘배우론(論)’을 펼쳤다.
 
“광대란 원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거야. 우선 제 쌍판을 제 것이라고 소유할 필요가 없어. 제 것이 아닌 모든 가면을 갖기 위해 제 것을 가지면 안 되는 거야.”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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