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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꽃범호' 이범호 "마지막도 화려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평범한 선수였습니다. 마지막도 화려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피곤하잖아요. 하하하."
 
은퇴하는 KIA 타이거즈 3루수 이범호. [중앙포토]

은퇴하는 KIA 타이거즈 3루수 이범호. [중앙포토]

 
'만루포의 사나이' 이범호(38·KIA 타이거즈)는 끝까지 겸손했다. KBO리그 통산 1995경기를 출전하고 있는 이범호는 5경기를 더 나오고 2000경기를 채운 후, 다음달 13일 광주 홈에서 열리는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은퇴식을 연다. 
 
19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만난 이범호에게 '만약 남은 5경기에서 홈런과 안타를 펑펑 친다면 은퇴 선언을 후회하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그는 씩 웃으면서 "너무 잘하지 않을 것이다. 잘하면 나는 홀가분하게 떠나겠지만, 팬분들이 서운할 수 있다. 안타 한두 개만 치겠다. 너무 화려하게 떠나면 피곤하다. 하하하"라고 말했다. 이범호 특유의 농담이 녹아있는 대답이었다. 
 
이범호는 지난 3월 23일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하면서 은퇴를 고민했다. 스프링캠프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중도 귀국하면서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4월을 제외하고 2군 훈련장이 있는 전남 함평에 머물렀다. 그는 "35~36세부터 스스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야구를 그만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2군에 머물면서 '길어야 1년 정도 더 선수로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제 떠나자'라고 마음 먹었다"고 전했다. 공격과 수비, 주루를 고루 갖춘 박찬호(24)가 3루수 자리를 잘 지켜주면서, 이범호는 안심하고 떠나게 됐다.
 
이범호는 인터뷰 내내 20년 동안 선수 생활한 것에 대해 스스로 놀라워했다. 그는 "나는 프로 세계에 못 들어올 줄 알았다. 2차 신인 지명에서 한화가 1라운드에 지명해준 것이 정말 감동이었다. 은퇴를 앞두고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기록들이 대단하지 않다고 했다. "화려한 선수가 아니었다. 3할도 제대로 못 쳐봤으니. 그저 평범한 선수였다."
 
그러나 이범호가 세운 기록은 훌륭하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2000년 한화에 입단한 이범호는 '펀치력 있는 3루수'로서 가치를 인정 받았다. 2009년에는 김태균(37·한화)과 국가대표팀에서 쌍포를 이루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에 공헌했다. 지난 2010년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 입단한 그는 1년 만에 KBO리그로 돌아와 KIA와 계약했다. 이후 KIA의 붙박이 3루수로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지금까지 1995경기에서 타율 0.271, 329홈런, 1125타점을 기록했다.  
 
2017년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5차전에서 KIA 이범호가 3회 초 2사 만루 좌익수 뒤로 만루포를 터뜨리고 환호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2017년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5차전에서 KIA 이범호가 3회 초 2사 만루 좌익수 뒤로 만루포를 터뜨리고 환호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특히 만루포에 대한 기록은 따라올 자가 없다. 개인 통산 17개의 만루홈런을 쳐 이 부문 역대 1위에 올라있다. 역대 2위는 12개를 친 심정수(은퇴)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강민호(삼성 라이온즈)와 최정(SK 와이번스)이 11개로 최다다. 7개의 만루홈런을 더 쳐야 이범호를 넘어설 수 있는데 사실상 쉽지 않다. 이범호가 포스트시즌에서 친 만루홈런은 1개다. KIA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17년 10월 30일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기록했다. 
 
이범호는 만루포에 대한 기록에도 겸손했다. 그는 "사실 나는 만루홈런을 많이 치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언론과 팬들이 만루홈런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하면서 나 스스로 만루 상황에서도 자신감이 생기더라. 공격적으로 초구와 2구와 승부하자는 생각으로 임했고, 더 부드럽게 방망이를 돌렸다. 그러다보니 '나는 만루에 나가면 홈런을 치는 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흥식 KIA 감독 대행은 "구단에서 (이범호) 은퇴 경기까지 총 5경기를 출전시켜 2000경기 기록을 세우게 배려해줬다. 이범호가 함평에서 경기에는 안 나갔지만 훈련을 계속했다. 만루 상황에서 이범호를 기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범호는 "점수 차가 많이 나는 상황이면 모를까. 중요한 경기에서 그렇게 기용되는 건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어쨌든 앞으로 남은 5경기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는 "엔트리 합류까지 10~15일 정도가 걸릴 것 같은데, 그때까지 몸을 잘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범호는 지도자 과정을 밟을 계획이다. 오는 9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한 뒤 내년엔 미국에서 1년 정도 연수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선수 생활에서 얻은 지식이 맞는 것인지 검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이 배우고 느껴야 좀 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어린 선수들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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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범호'. 기록지에는 잘 안 보이지만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선수, 앞에서 동료를 이끌기보다 뒤에서 묵묵히 밀어주는 선수가 이범호다. 팬들은 그래서 그를 꽃보다 예쁜 '꽃범호'라 불렀다. 이범호는 이 별명을 꺼려했지만 이젠 아니다. 그는 "야구인으로서 계속 야구판에 있을 테니 '꽃범호' 별명과 영원히 함께 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광주=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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