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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나경원이 꼭 봐야할 허주·지둘러 30년전 비밀각서

김원기 전 의장이 건넨 30년 전 ‘비밀각서’ 다시 보니
1988년 여소야대 국회시절, 협상을 위해 만난 제1야당(평민당) 김원기 원내총무(왼쪽)와 여당(민정당) 김윤환 원내총무. [중앙포토]

1988년 여소야대 국회시절, 협상을 위해 만난 제1야당(평민당) 김원기 원내총무(왼쪽)와 여당(민정당) 김윤환 원내총무. [중앙포토]

김윤환과 김원기. 가히 국회 협상의 ‘레전드’라 할 수 있다. ‘원내총무’가 국회를 이끌던 시절. 허주(虛舟·빈배)라는 아호의 김윤환, ‘지둘러’(‘기다려’의 사투리)라는 별명을 가진 김원기가 만나면 결과가 나왔다. 두 달간 국회 문조차 열지 못하는 답답한 정국 상황을 보면서 새삼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개인사무실로 ‘끈기와 느긋함’의 상징인 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찾아갔다. 전북 정읍 출신의 김 전 의장은 지난 2008년 정계를 떠났다. 이제 81세지만 정정했다.
 
요즘 국회 얘기를 꺼냈더니 내게 6쪽짜리 문건 사본을 하나 건넸다. 맨 첫 장. ‘覺書’(각서·작은 사진)라는 글자가 또렷했다. 본문은 한글보다 한문이 더 많았다. 2003년 세상을 떠난 허주의 손글씨였다. “국가운명에 대해서 제1차적 책임이 있는 우리 양당은 두려운 책임감과 확고한 신념 아래 오늘의 난국을 다음과 같이 처리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이 각서를 작성하는 바이다”라고 썼다. 바로 뒤에 ‘제반내역, 비공개원칙’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비밀각서였다. 서명란엔 ‘민주정의당을 대표하여 김윤환’ ‘평화민주당을 대표하여 김원기’라고 적혀 있었다.
 
각서 아래에는 합의사항을 쭉 열거했다. ▶전두환·최규하 전 대통령 국회 증언 ▶5공 핵심인사 정호용·이원조 공직 사퇴 ▶5·18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 ▶언론 통폐합 책임 위해 허문도·이상재 2인 중 1인 사법처리… 여기에 ‘공무원 노조 결성 허용’ ‘지방자치제 연내 실시’ 같은 제도개혁안까지 더해졌다. 건건이 굵직한 내용이 20개가 넘었다. 김원기 총무의 요구 사항을 허주가 거의 받은 것이었다. 허주는 딱 한 문장을 챙겼다. “양당은 깊이 숙고한 끝에 현시점은 ‘중간평가’를 실시할 시기가 아니라는 데 합의한다”는. 각서의 서명 일자는 1989년 3월 21일.
 
1987년 12월 대선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집권 후 2년 뒤 재평가받겠다는 ‘중간평가’를 공약으로 내놓고 간신히 승리했다. 하지만 88년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평민당 제1야당으로 부상)가 탄생하면서 항로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야 3당(평민·통일민주·공화)은 ‘5공비리특위’ ‘광주특위’를 발족시켜 청문회를 여는 등 대대적인 5공청산 공세에 돌입했다. 5공청산 정국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약속한 ‘중간평가’ 시점은 다가오고 있었다.
 
비밀각서는 이 무렵 만들어졌다. 88년부터 전개된 5공청산 작업의 출구를 마련하는 성격이었다. 각서에 적시한 내용은 거의 실제 상황이 됐다. 5공청산 정국은 89년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증언을 끝으로 2년 만에 일단락됐다. 야당은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해주면서 5공 실세들을 퇴진시키고, 광주의 명예회복과 보상조치를 얻어내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치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여당은 정치적 난제를 일거에 해결했으니 실로 ‘빅딜’이었다.
 
굵직한 협상이라 쉽지 않았을 텐데.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정호용씨 처리였다. (당시 야권은 5·18 책임자로 정씨를 지목, 의원직 사퇴를 요구) 정호용은 여권 실세 중 실세였다. 각서를 쓰기 전 노태우 대통령하고, 김대중 총재하고 영수회담(3월 10일)을 했다. 발표 안 된 얘기인데, 그때 노태우 대통령이 유독 정호용씨 문제만 간곡히 사정했다더만. ‘당신(DJ)이 앞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와야 할 텐데, 문제가 군부 아니냐. 정호용이 군부 쪽에 세력이 있다. 이때 봐주면 그 사람이 당신하고 군부 사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 역할을 하지 않겠소, 그러니 좀 봐주소’라고. 허주와의 협상 전에 김 총재가 노태우 대통령의 이 부탁을 내게 전하시더라.”
 
그런데 합의각서에 결국은 ‘정호용 공직사퇴’가 들어 있던데.
“그게…. 김윤환 총무도 나한테 제일 간곡허니 사정한 문제가 정호용이었다. 노태우·김윤환·정호용 세 사람은 경북고 동기동창이거든. 더욱이 허주하고 정호용은 같은 빌라 아래 위층에 살았단다. ‘내가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정호용 덕을 많이 봤다. 인간적으로 봐달라’는 사정을 눈물 바람까지 해가면서 하더라. 나에게 김윤환은 제일 중요한 사람인데,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냉정해야 했다. ‘나도 정호용을 인간적으로는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 엄청난 일을 저지른 그때, 부대장(특전사령관)으로 있었던 것에 대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광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 당은 당신들하고 협력하면서 정치할 길이 없다. 그러면 노태우 대통령도 성공할 수 없다. 인간적 고민은 알겠지만, 이 마당에서는 당신도 대통령의 성공을 택하느냐, 친구를 택하느냐 결정해야 한다. 둘 다 선택할 순 없다. 하나를 선택하라. 대통령이냐 친구냐’고 했더니 김윤환도 합의해주더라.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으니까.”( 정씨는 각서합의 열달 뒤인 1990년 1월 5일, 우여곡절 끝에 의원직을 사퇴)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
“신뢰다. 허주하고 나 사이에는 신뢰가 있었다. 그래야 허심탄회 허니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을 툭 터놓고 얘기하는 비공개 협상을 상당히 오래 진행했다. 그 사람은 당내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얘기해줬고, 나도 그랬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로의 사정을 알아야 한다. 나는 (허주 외에도) 그쪽 정보를 알려고 노력했다. 박상천 부총무에게 ‘어이, 자네가 (서울법대 나온 검사 출신이니) 법대 동창 관계일지, 고시 선·후배랄지, 그걸로 여당 접촉을 자주 해서 돌아가는 거 좀 파악해봐’라고 한 적도 있다. 박상천이 ‘그러다 사쿠라로 몰리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길래 ‘내가 책임질 테니 마음 놓고 만나보라’고 했지.”
 
허주와 어떻게 서로 신뢰하게 됐나.
“김원기와 합의한 것은 수용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니까 믿고 협상을 하는 거지. 나는 김대중 총재허고, 중요한 문제는 이야기를 허고, (얘기)허지 않은 문제도 ‘이렇게 합의했습니다’고 허면 총재가 신뢰를 하고 의원총회 같은 데서 딱하니 뒷받침해줬다. 나도 마찬가지지. 허주는 대통령하고는 고등학교 동기동창 아닌가. (서로 합의를 해도)당에 가서 반대에 부딪히면 합의 도출이 어렵거든. 그런데, 당을 설득하려면 어느 정도 협상 상대방 체면을 서게 해야 한다. 준 것이 있으면 받은 것이 있어야 당에 돌아가 설득이 가능하지. 협상이라는 것은 한쪽이 다 차지하려고 하면 안 되고,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해. 자기 것만 챙기려고 해선 협상이 안 되지.”
 
‘오너’(당시는 노태우·김대중)의 신임, 협상책임자 간 신뢰, 상대에 대한 정보와 이해, 주고받기…. 김 전 의장이 말하는 협상 타결의 조건이다. 하나 더 한다면 ‘빈배’(허주)와 ‘지둘러’ 처럼, 마음을 비우고 조급하지 않게 타이밍을 찾는 것 아닐까. 지금 국회는 어디에 결함이 있는 걸까.
 
협상 때 허주와 갈등은 없었나.
“통일민주당(최형우), 공화당(김용채) 총무들하고 네명이 밤샘토론 할 때였다.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는 일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합의를 하는데 문장에 ‘의’냐,  ‘에’냐를 놓고 나랑 허주랑 한 시간 이상 합의 못 하고 부딪쳤다. 그러자 어떤 총무 하나가 김윤환보고 성질을 내면서 ‘대(大)여당 총무라는 자가 글자 하나 가지고 그 짓 하냐’고 하더라고. 그러자 김윤환이가 ‘이 자슥이… 아무것도 모르면서’라고 말하는 걸 보니 (험악한 상황에서) 웃음이 나더라고. 나나 김윤환 총무는 기자 출신 아닌가(김원기 동아일보, 김윤환 조선일보). 글을 써 본 사람이니 토씨 하나가 의미를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 알았던 건 데 두 사람은 아니었지.”
 
30년 전 각서를 자세히 소개한 이유는, 원로 정치인들은 어떻게 난제를 일거에 풀어낼 수 있었는지, 지금의 원내 리더들이 고민하길 바라서다. 빅딜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국회 문을 여는 문제로 두 달 허송하고, 정치 시간표 하나 못 짜고 있는 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원내총무에서 원내대표로 격상된 게 언제인가. 이름값을 하려면, 저런 비밀각서를 세 장은 더 썼어야 했다.
 
각서
우리는 현시점이 자칫하면 6·29선언과 4·26 총선에 의하여 이루어진 민주주의에의 귀중한 국민적 재산이 파탄에 직면할 위기에 있다고 보며 국가운명이 파국 일로에 치달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같이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제 우리 국민의 역량이 평화적이고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본다. 이때를 당하여 국가운명에 대해서 제1차적 책임 있는 우리 양당은 두려운 책임감과 확고한 신념 아래 오늘의 난국을 다음과 같이 처리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이 각서를 작성하는 바이다.(제반내역, 비공개원칙)  
 
※각서 내용은 한문을 한글로 풀어서 옮긴 것. 각서 다음 장에는 정호용 씨 공직 사퇴를 포함한 20여개 항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 담김.

※각서 내용은 한문을 한글로 풀어서 옮긴 것. 각서 다음 장에는 정호용 씨 공직 사퇴를 포함한 20여개 항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 담김.

※각서 내용은 한문을 한글로 풀어서 옮긴 것. 각서 다음 장에는 정호용 씨 공직 사퇴를 포함한 20여개 항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 담김.

※각서 내용은 한문을 한글로 풀어서 옮긴 것. 각서 다음 장에는 정호용 씨 공직 사퇴를 포함한 20여개 항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 담김.

①양당은 이른바 잔여 5공 핵심인사의 공직 사퇴와 전·최 전직 대통령의 국회 증언 등 5공청산과 민주화 추진문제를 지난 3월 10일에 있은 노태우-김대중 회담의 합의 정신에 입각하여 이를 조속한 시일 내 실시한다.
 
②이상의 조치가 처리 또는 실현이 합의되었을 때는 광주 및 5공비리 특위는 신속히 특위의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이의 국회 제출과 더불어 위증자에 대한 고발조치를 한 후 상기 양 특위의 임무를 종결하고 5공청산 문제는 완결된 것으로 간주한다.
 
③양당은 긴박한 국가적 난문제의 해결과 지자제 연내 실시 등 우리 정국이 당면한 중대 과업에 대처하기 위하여 깊이 숙고한 끝에 현시점은 중간평가를 실시할 시기가 아니라는 데 합의한다.  
 
1989. 3. 21
 
민주정의당을 대표하여 김윤환
평화민주당을 대표하여 김원기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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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