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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연잎 같은 마음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새 산문집을 내고 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질문을 받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시를 쓰는 공간에 여러 사물들을 놓아둔다고 썼던데, 예를 들면 말린 꽃, 만년설을 찍은 사진, 그림엽서, 조개껍질, 과일 등을 놓아둔다고 썼던데, 요즘은 무엇을 두고 있나요”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받고 떠올린 것은 솔방울이었다. 주워온 갈색의 솔방울이었다. 솔숲에서 온 솔방울을 보고 있으면 솔방울 속에 바람, 볕과 낮, 빗방울, 별과 밤, 새의 울음소리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과거의 시간이 쌓여있는 솔방울로부터 어떤 향기를 맡게 된다고, 또 어떤 신선함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요즘은 솔방울이 나의 내면에서 활동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바깥 세계는 우리들의 내면으로 들어와 작용을 한다. 시를 쓰는 나는 내면이 활동하도록 애쓴다. 내면에 고유한 사물, 만났던 사람, 작고 큰 자연, 세계의 일면(一面)이 들어와 살도록 노력한다. 특히 언어들이 내면에서 움직이는 상태에 있도록 하려 한다. 이들은 나를 신선한 상태에 있도록 도와준다.
 
최근에 나는 두 가지의 일로부터 마음에 신선함을 얻었다. 하나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였다. 그는 수녀원에 들렀다가 햇살이 좋은 날에 수녀님이 하얗게 세탁한 빨래를 탁탁 털어서 널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수녀님이 고개를 살짝 돌린 채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에서 문득 싱그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것이 아마도 영혼의 신성성일 것이라고 말했고, 그 장면을 내 내면에도 받아들였다.
 
또 하나는 후배로부터 매일 받아보고 있는 사진에 관한 것이다. 후배는 내게 매일 강릉 송정의 바다를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준다. 아침에, 해 떨어지는 때에, 혹은 밤에 그는 바다의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그래서 나는 맑은 날의 바다는 물론 높은 파도가 있는 바다, 어선이 지나가는 바다, 수평선이 걸린 바다, 비가 내리는 바다 등을 본다. 바다는 매일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그러면 그 바다들은 내 가슴속에서도 어느 날은 잠잠하고, 어느 날은 거세게 출렁인다. 나는 바다의 다양한 풍경이 우리 삶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싱싱한 바다의 사진을 기쁘게 받아본다. 바다는 내 내면을 매일 신선한 상태에 있게 한다.
 
강릉 송정 바다의 사진들이 삶의 풍경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삶도 잠잠함, 일광과 기쁨, 흐림과 흔들림, 바람과 흘러듦, 격랑과 분노, 해무와 모호함, 폭우와 비탄, 해안선과 가까운 곳, 수평선과 먼 시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를 친밀하게 대할 때가 있고, 또 세계를 가혹하게 대할 때가 있다. 심드렁해질 때가 있고, 또 격렬해질 때가 있다. 이 모두가 일상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일상의 변화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는가에 있지 않을까 싶다. 텔레비전에서 한 원로 배우가 당신의 가훈이 ‘낙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았다. 절제와 균형을 당부하면서, 즐거워도 그것에 휩쓸리지 말고, 슬퍼도 비통함에 빠지지 말라는 이 문장을 소개했다. 악사였던 우륵이 남겼다는 이 문장은 기쁨에도 슬픔에도 과하게 잠기지 말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살다보면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넘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이 말씀을 접할 즈음 만난 또 다른 문장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였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것을 경계한 말씀으로 이해했다.
 
“오래/ 걸어온 것들은/ 모가/ 닳아 있다// 이윽한/ 눈빛// 연잎 같은 마음// 안으로/ 향기가 스며/ 단단하고// 은은하다” 권갑하 시인의 시조 ‘인사동’ 전문이다. ‘낙이불류 애이불비’나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마음은 이 시조에서의 표현대로라면 “연잎 같은 마음”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온함을 지키고 너그럽게 감쌀 줄 아는 마음일 것이다.
 
물론 은근하게 마음을 갖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을 가꾸는 일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바깥의 신선함이 마음에 들어와 살고, 그리하여 내면이 물 흐르는 듯 하고, 과잉에 이르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꾸어야 할 영혼의 한 면모가 아닐까 한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육체라는 수단을 빌려서 영혼을 발전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여야 합니다”라고 했듯이 가꾸어야 할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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